소설) 별을 쫓는 해바라기 2
길은 더럽고 지저분했다.
담벼락에 버려진 쓰레기더미에서는 썩는 냄새가 진동했고, 거기서 흘러나온 오물들이 좁은 길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쥐새끼들은 희미한 외등을 조롱하며 경주하듯 골목을 내쳐 달아났고, 쓰레기들을 뒤지던 더러운 개들이 사타구니 사이로 꼬리를 말아 넣으며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꺼져!”
나는 송곳니를 드러나며 적의를 보이는 비루한 개 한 마리를 째려보며 낮지만 강하게 윽박질렀다.
하지만 개들은 그런 나를 철저히 무시하며 계속해서 으르렁댔고, 개들의 위세에 눌린 나는 슬금슬금 옆걸음으로 그들을 지나쳤다.
“이 더러운 소굴에 내가 또 오더니...”
나는 그것을 소굴이라 불렀다. 형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의 부모가 낳은 형의 소굴. 박윤도의 소굴. 형은 작은 소굴에서 왕초가 되어 있었다. 강 형사가 교주라고 부르는 절대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형은 어둡고 칙칙한 산동네의 맨 꼭대기에 두꺼운 철문을 꼭꼭 닫아걸고 거만한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내가 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거구의 청년 둘이서 내 앞을 막아섰다. 다부진 체격에 온 몸으로 힘이 넘쳐 나는 녀석들이었다.
그들을 밀치고 들어가려다가, 그 중 한 놈이 떠미는 바람에 나는 휘청거리며 뒤로 조금 밀렸다.
"이 새끼! 뭐야?"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던 또 한 녀석이 양미간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섰다. 놈의 굵은 눈썹은 가장자리가 위로 잔뜩 치켜 올라가 잠자리 날개처럼 파르르 떨렸다. 수틀리면 주먹이라도 한 방 날려 올 태세였다.
"나, 박윤도의 동생, 박현수야. 비켜! 이 거지새끼들아! 박윤도 안에 있지?"
그제야 녀석들이 주춤대며 길을 조금 터주었다.
나는 예전에 형을 한 번 따라왔을 때, 사무실이라고 안내되었던 곳의 문을 거침없이 밀고 들어갔다.
형은 그 사무실에서 무엇을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고, 물론 나도 묻지 않았다. 형이 이런 종류의 사무실을 차린 것으로 치면 무려 십여 번도 넘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그 사무실이라는 것도 형식적으로 책상과 의자만 가져다 놓았을 뿐, 실상은 어수룩한 사람들을 유혹하는 구실로 쓰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사무실을 옮길 때마다 나를 찾아와 사무실을 보여주며 장황하게 사업구상을 떠벌리고는 얼마간의 돈을 요구하기 일쑤였다.
나는 번번이 형에게 속는 것을 알았지만, 부모님의 재산으로 장사를 하고 있어서 얼마 정도의 돈을 내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형과 형의 졸개들이 무언가 논의를 하다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향해 따가운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모습이 부엌에서 음식찌꺼기를 훔쳐 먹다가 들킨 쥐새끼들 같아, 나는 실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 너? 너... 여긴 웬일이냐?"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형이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마치 병정놀이를 하는 것처럼 한 놈 두 놈 형을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었다. 놈들의 표정은 영락없이 쥐새끼의 그것이었다.
"흥. 쥐새끼들! 온갖 시궁쥐들이 다 여기 모였네. 이번에는 무슨 사기를 치려고 작당들을 하고 있나?"
나는 그곳에 모인 사내들의 면면을 천천히 둘러보며 이죽거렸다.
“뭐하는 자식이야?”
그러자 꼭 반달곰같이 생긴 녀석이 핏대를 세우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는 사무실로 들어올 때 보아두었던 대걸레를 침착하게 집어 들었다. 그리고 걸레가 달린 부위를 탁자모서리에 대고 발로 눌러 분질러버렸다. 그러자 훌륭한 목검 대용품이 되었다. 나는 그것을 꼬나 쥐고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야! 야! 가만있어! 저 녀석, 검도 유단자야."
형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반달곰처럼 생긴 놈을 황급히 제지했고, 기세 좋게 다가서던 놈이 갑자기 움찔하며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나는 놈에게 경멸이 가득 담긴 미소를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소란피우지 말고 용건만 간단히 이야기하고 돌아가라. 우린 지금 많이 바쁘단 말이야. 의논할 것도 많고..."
형이 권위를 세우기 위해 제법 위엄을 갖추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권위를 찾은 형을 보고 싶어 않아 직선적으로 파고들었다. 형을 무너뜨리는 데는 그것 이상 더 적절한 방책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박윤도. 너 이 새끼! 이제는 사람까지 죽였더라?"
"뭐라고? 내가 사람을 죽여? 누가 그래?"
"조금 전에 강 형사가 가게로 찾아왔었어. 네가 살인용의자라며 네 거처를 묻더라. 내가 알려줬을까?"
"미쳤군. 미쳤어. 알려준 건 아니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그래도 너 박현도와 나는 피를 나눈 형제잖아? 비록 네 피가 악마처럼 검어졌다고 하지만, 어떻게 내가 너를 파냐?"
나의 말을 들은 형은 다소 마음을 놓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그를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사실 강 형사랑 같이 왔어. 조금 있으면 강 형사하고 경찰들이 들이닥칠 거야."
"뭐라고?"
"왜 이리 놀라지? 강 형사 말대로 정말 살인이라도 저지른 모양이네."
"너, 정말 강 형사와 같이 왔냐?"
"여전히 겁은 많군. 넌 그게 약점이야. 지나치게 놀라는 거. 하하하... 농담이야."
"놀랐잖아. 장난해? 그리고 내가 살인 같은 거 안 하는 거 네가 더 잘 알잖아. 도대체 여긴 왜 온 거야?"
나는 조금 전부터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대걸레자루를 프로펠러처럼 빙빙 돌리고 있었다. 그 바람에 형광등 하나가 그것에 맞아 박살나며, 그 파편이 밀가루처럼 책상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구석에 영문을 모르고 서 있던 어린 여직원이 깜짝 놀라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두 가지 때문에 왔는데, 하나는 어머니가 너를 찾아. 왠지 몰라도 요즘 들어서 너를 계속 보고 싶어 해."
"뭐라고 말도 안 되는... 십 년 전에 이미 우린 모자의 인연을 끊었어. 그것도 일방적으로 어머니에 의해서... 그런데 이제 와서 어머니가 나를 찾는다고?"
"제발 이유 좀 달지 마. 보고 싶으니까. 죽기 전에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 몰라? 비록 말씀은 모자의 인연을 끊었다고 하셨지만, 그 당시에 네가 먼저 용서를 빌었으면 어머니는 너를 다시 받아주었을 거야. 말썽만 일으키는 아버지를 늘 받아주셨듯이."
"그만해. 아버지 얘기까지 들먹이고 그래? 그런데 왜 어머니가 갑자기 나를 보고 싶어 하는 거냐고?"
"말했잖아. 어머니는 아프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아프다고. 아마 곧 돌아가실 것 같아.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 보고 싶은 거겠지. 비록 자기 자식이 악마의 피를 받아 태어났다고 해도, 천사인 어머니는 그 악마의 새끼를 자기 새끼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법이니까."
형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지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내 말이 형의 자존심을 건드렸음에 틀림없었다. 희멀건 하게 잘 생긴 형의 얼굴이 쭈그러진 냄비처럼 우습게 변형되었다. 지금껏 나는 형의 표정이 그렇게 처참하게 변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계속 대걸레자루를 휘둘러 한 쪽 벽에 놓인 대형수족관을 박살냈고, 물과 함께 관상어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나와 퍼덕거렸다. 그것을 본 한 졸개 한 놈이 열대어를 잡으러 앞으로 나섰다.
나는 놈을 위협하기 위해 대걸레자루를 그 놈 쪽으로 휘둘렀다.
놀라 뒤로 몸을 빼던 녀석이 바닥이 미끄러워 엉덩방아를 찧고 수족관에서 흘러나온 물 위에 넘어져 뒹굴었다. 갑작스런 소란에 밖에 있던 녀석들이 사무실 문을 열고 뛰어들었다.
나는 그제야 대걸레자루를 거둬들였다.
"명심해. 빠른 시일 내에 어머니를 찾아오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거야. 내 말 흘려듣지 마. 이제 시간도 별로 없을 것 같으니까. 내 말을 우습게 여기다가는 진짜로 강 형사를 만나게 될 거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대걸레 자루를 형에게 겨누었다.
“그리고 난숙이를 데려갔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거 아냐? 네가 데리고 놀다가 버린 그런 여자들처럼 난숙이를 생각한다면 넌 내 손에 죽어. 그때처럼 살려달라고 빌어도 절대 안 살려 줄 거야. 진짜로 죽여 버릴 거야. 이번에는...”
형이 내가 아끼는 진검들을 모두 들고 나가 팔아버린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목검을 들고 형이 노는 곳으로 찾아갔었다. 그리고 목검으로 형을 때리기 시작했었다.
내가 너무 거칠게 나가니까 형의 친구 어느 누구도 말리지 못했고, 내가 생각해도 무자비하게 목검을 휘둘렀고, 비명을 지르며 얻어맞던 형이 살려달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울며 빌지 않았으면 숨통을 끊어 놓았을 것이다.
내가 스승님으로부터 하사받은 진검들도 소중했지만, 형이 그간 저질러 놓아 나와 어머니가 감수해야 했던 일들에 대한 처절한 응징이기도 했다.
“난숙이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너랑 그런 사이인 줄 정말 몰랐어. 걔가 먼저 나한테 접근했어...”
“닥쳐! 난숙이가 지금 내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데, 얼른 데려가. 너하고 난숙이는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둘 다 오늘 이후로 내 눈앞에 얼쩡대면 진짜로 죽여 버린다.”
“전에도 말했지만 정말 미치겠네. 내가 보낸 게 아니고, 지가 갔다니까. 너 만나러 간다는 걸 내가 어떻게 말리냐?”
“변명 들으려고 온 건 아니니까 그만 해. 교주님께서는 권위를 지키셔야지.”
“교주?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우린 그냥 공동체 일원이야.”
“시끄러. 듣고 싶지도 않아. 두 번째를 말하고 나는 간다. 사람 속여서 사기 치면 목숨이라도 건지지만 신을 팔면 그 끝은 죽음이야! 새겨들어. 이 사이비 새끼야!”
나는 그렇게 일갈하고 밖으로 나가다가 아직까지 열대어를 대야에 주워 담고 있는 여자를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마디 했다.
“아가씨도 목숨 걸고 온전하게 살고 싶으면 한시 바삐 이 작자들과 인연 끊는 게 좋을 거야. 잘 모르는 거 같아서 충고하는 거니까, 새겨듣는 게 아가씨 앞날에 이로울 거야. 혹시 박현도랑 잤으면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 그게 아가씨도 아가씨 가족도 살리는 길이야."
나는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는 여자에게 한 마디 던지고는 사무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계단 아래에서 대문을 지키던 두 놈이 굳은 표정으로 나를 막아섰다. 나는 놈들에게 대걸레자루를 겨누며 계단을 천천히 내려섰다.
"야! 그냥 가게 놔 둬."
사무실 문고리를 잡고 선 형이 어느새 따라 나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두 놈이 멀찍이 물러섰다.
나는 대걸레자루를 던져버리고, 대문을 밀어제치고 밖으로 나섰다.
길을 내려가는데 위에서 누군가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어이, 칼잡이! 이번에는 그냥 곱게 보내주지만, 다음에 또 까불면 허리가 부러질 거야! 알았어?"
나는 어두운 골목길을 더듬거리며 걸어 내려왔다. 올라올 때는 아주 낯익은 길이었는데, 왜 그런지 자꾸만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미로 같은 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그런 나의 등짝을 가을바람이 매섭게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