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obituary] 거창 양민 학살 사건(사망자 719여명)
- 피카소 massacre en Coree 1951
거창양민 학살 사건, 명칭은 낯설지 않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이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조정래씨의 태백산맥에서 언급되었던 것 같기도 한데 구체적으로 떠오르는게 없어 일단 위키피디아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The Geochang massacre was a massacre conducted by the third battalion of the 9th regiment of the 11th Division of the South Korean Army between 9 February 1951 and 11 February 1951 of 719 unarmed citizens in Geochang, South Gyeongsang district of South Korea. The victims included 385 children
1951년 오늘부터 삼일동안 자국민의 군대가 적군의 진영에 점령되어 있었던 지역의 비무장 양민 719명을 집단 사살합니다. 그 중 어린아이가 무려 385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massacre의 정의가 간단 명료하게 들어옵니다.(롱맨 인터넷 사전입니다) 비무장 양민의 무참한 처형이나 살육 그 자쳅니다.
The 11th Division also conducted the Sancheong-Hamyang massacre two days earlier. The general commanding the division was Choe Deok-sin.
11사단은 이틀전 산청, 함양에서도 대량학살을 저질렀습니다. 11사단을 지휘했던 장군은 최덕신입니다.
이 사람은 박정희 정권하에서 외무장관까지 지낸 후 월북한 최고위급 남한 인사로 기록됩니다.
ago가 아니고 earlier가 쓰였습니다. 그 차이점은 이러합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는 ago, 과거의 시점에서 더 과거의 시점이라면 earlier를 씁니다.
The Geochang massacre was conducted 69 years ago.
The Sancheong-Hamyang massacre had been conducted 2 days earlier.
In March 1951, Shin Chung-mok, a leading assembly lawmaker from Geochang reported the massacre to the National Assembly against South Korean Army cover up.
그해 삼월 신중목 국회의원이 남한 군대의 조직적 은폐와 방해를 뚫고 국회에서 이 사실을 폭로합니다. cover up과 비슷한 말이 whitewash군요. 뭔가를 하얗게 바른다는 의민가 보네요.
물론 이땐 밝혀지지 못하지만 세 지역에서의 자국군대에 의한 학살은 우발적인 것이 결코 아니였습니다. 후에 한 조사관에 의해 밝혀진 공식 문서 속에서 미수복지역의 주민들을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After the investigation, Major Han and Colonel Oh Ik-gyun were sentenced to life in prison by a military court. President Syngman Rhee subsequently granted clemency to criminals.
국회의 진상 조사 후에 연대장 오익경과 대대장 한동석은 군사법원에 의해 종신형을 선고 받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 이승만에 의해 모두 사면 받게 됩니다.
In 2001, a local court ordered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o pay reparations to the victims' families. On 18 May 2004, a general court ruled that a charge of massacre against the South Korean governmental was barred by limitation.
2001년 지방법원은 유족들에게 국가 배상을 판결합니다. 하지만 2004년 고등법원은 소멸시효를 이유로 배상 판결을 뒤집습니다. 이후 국가의 책임소재와 배상 그리고 명예회복을 놓고 유족의 주장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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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진속의 사람도 많은 변신을 거듭했던 사람이지요.
외무장관 어느 종교의 교령이라는 자리까지
그리고 월북이라는 선택까지했던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천도교의 교령이였지요/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