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 - 아가타

in zzan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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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전승에 따르면, 성녀 아가타는 시칠리아(Sicilia) 섬의 카타니아 혹은 팔레르모(Palermo)의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할 결심을 하고 스스로 정결 서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리스어로 ‘선(善)’ 또는 ‘좋음’을 뜻하는 ‘아가토스’에서 유래한 이름만큼이나 착하고 아름다웠던 그녀의 미모에 반한 그 지방 총독 퀸티아누스(Quintianus)가 그녀에게 청혼하는 일이 일어났다. 당시는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한창일 때였다. 청혼을 거절당한 총독은 그녀를 소유하려는 계략으로 박해를 이용하였다. 성녀 아가타가 끝까지 그의 제안을 거절하자 퀸티아누스는 온갖 무자비한 고문을 가하고 그녀를 매음굴에 보내는 등 협박과 회유를 그치지 않았다.
그 어떤 고통에도 성녀 아가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퀸티아누스 총독은 그녀의 가슴을 도려내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성녀 아가타는 “내 육체는 도려낼지라도 내 영혼을 도려낼 수 없을 것이오.”라고 당당히 말했다. 잔혹한 고문을 당한 후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하고 감옥에 갇혔을 때, 성녀 아가타는 환시 중에 성 베드로(Petrus)를 보았고, 성 베드로는 천사와 함께 나타나 성녀 아가타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결국 총독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이글거리는 석탄불에 돌리면서 구워 죽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보통 교회 미술에서 성녀 아가타는 한 쌍의 집게나 접시에 담은 자신의 가슴을 들고 있거나 함께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는데, 훗날 이것이 잘못 전해져 접시 위의 빵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래서 성녀 아가타 축일에 빵을 축복하는 관습이 내려오고 있다. 성녀 아가타를 공경하는 신심은 일찍부터 시칠리아 전역으로 퍼졌고, 나아가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에 의해 로마 미사 경본 감사기도 제1양식(로마 전문)에서 기억하는 7명의 성녀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공경을 받아왔다. 특별히 성녀 아가타는 출생지이자 순교지인 시칠리아 섬의 수호성인으로서 큰 공경을 받고 있고,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인 에트나 산(Etna) 인근 지역에서는 화산 폭발로 유황과 돌들이 분출했을 때 성녀의 무덤에서 나온 베일이 마을 사람들을 위험에서 보호해주었다는 기적 이야기도 전해져온다. 성녀 아가타는 처녀, 양치는 여자, 종 만드는 사람, 유리 제조공, 광부, 알프스 등반 안내자, 유방 관련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 간호사들의 수호성인이자 불과 날씨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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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고종희 저, 명화로 읽는 성인전(알고 싶고 닮고 싶은 가톨릭성인 63인) - '아가타', 서울(한길사), 2014년, 311-316쪽.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52-54쪽.
마리아 토리시 저, 윤종국 역, 성녀 아가다, 서울(바오로딸), 2002년.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8권 - '아가타',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1년, 5602-5603쪽.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50-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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