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in zzan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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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의 통치 체제 > 삼국 초기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5부나 신라의 6부가 중앙의 지배 집단이 되었음. 각 부는 중앙 왕실에 예속되었으나, 각 부의 귀족은 각자 관리를 거느리고 자신의 영역을 지배하였음. 왕은 여러 귀족 중에서 가장 힘 있는 존재였음. 따라서, 국가의 중요한 일이나 여러 부의 힘을 통합하여 국가의 동원력을 강화하는 일은 각 부의 귀족으로 구성된 회의체에서 결정하였음.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관등제가 정비되어 각 부의 귀족과 그 아래에 있던 관리들은 왕의 신하가 되었음. 이로써, 왕의 권한이 강화되고, 각 부의 부족적 성격이 행정적 성격으로 바뀌어 중앙 집권 체제가 형성되었음. 삼국의 관등제와 관직 체계의 운영은 신분제에 의하여 제약을 받았음. 신라는 관등제를 골품 제도와 결합하여 운영하였음. 즉, 개인이 승진할 수 있는 관등의 상한을 골품에 따라 정하고, 일정한 관직을 맡을 수 있는 관등의 범위를 한정하였음. 고구려와 백제에서도 신라와 비슷하게 운영.
삼국의 중앙 정치는 고구려의 경우 대대로를 비롯하여 10여 등급의 관리들이 나누어 맡았음. 백제는 왕 밑에 좌평을 비롯한 16등급의 관리가 있어 나랏일을 맡아 보았는데, 그 중에서 상좌평이 최고 책임자. 신라는 국가가 발전해 감에 따라 병부와 집사부 등 여러 관서를 차례로 두었음. 또, 귀족 세력을 대표하는 상대등은 귀족 회의를 주관하면서 왕권을 견제하였음. 삼국의 중앙 지배층은 정복 지역을 세력의 크기에 따라 성이나 촌 단위로 개편하여 지방 통치의 중심으로 삼고, 지방관을 파견하여 지방민을 직접 지배하였음. 그러나 지방에 대한 중앙 정부의 지배력은 강력하지 못하였고, 원래 성이나 촌을 지배하던 지방 세력가의 자치가 오랫동안 유지.
삼국은 뒤에 최상급 지방 행정 단위로 부와 방 또는 주를 두고 지방 장관을 파견. 그 아래의 성이나 군에도 지방관을 파견하였으나, 말단 행정 단위인 촌에는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고 토착 세력을 촌주로 삼음. 삼국의 지방 행정 조직은 그대로 군사 조직이기도 하였으므로 각 지방의 지방관은 곧 군대의 지휘관이었음. 따라서, 삼국 시대 국가의 주민 통치는 본질적으로 군사적 지배의 성격을 띠고 있었음. 백제의 방령은 각각 700~1200명의 군사를 거느렸고, 신라의 군주는 주 단위로 설치한 부대인 정을 거느렸음. 신라에는 정 외에도 서당이라 불리는 군대가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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