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흙비
흙비가 분무기 뿌리는 것 처럼 왔다.
우산 쓰기도 애매하고 그냥 맞자니 흙을 뒤집어쓰고...
비가 오면 괜히 센치해지고 분위기 잡는 부류의 인간형이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 보편적인 정서랑은 아무 관련 없이 비가 오면 기분이 쳐진다
날이 흐리면 햇빛을 받지 못해 기분이 좋아지는 호르몬을 만들지 못하고
기압이 낮아져서 눌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그렇다고
괜히 자연현상에서 이유를 찾으려고 든다
핑계가 아니라 정말 그런 것 같다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오늘은 정말 힘들었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눈물 쏟아질 것 같고
우울은 마음의 감기라 하던데
편의점에서 우울감을 완화시키는 약이라도 팔았으면 자주 사먹을거야
자주 사먹는 정도가 아니라 없으면 못 살 정도로 달고 살았을 거야
먹어본 적도 없는 약을
괜히 먹어보면 어떤 상태이든지 지금보다 나아질거라 바라면서
뭘 찾는지도 모르게 주섬주섬 찾다가
일 하러 가는 길에 스타벅스에 들려 따뜻한 녹차라떼를 샀다
한 모금 마시고 조금 못 기다리다가 또 한 모금 마시고
계속 홀짝거리면서 미친거처럼 중얼거렸다
하...그래 이거라도 마시니까 조금 낫다. 진짜 쪼~금 낫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의견을 조율해가면서 일을 한다
그냥 보는 것 만으로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괜찮은 척 아무 감정도 없는 척 말을 이어간다
나한테는 감정도 많고 말도 엄청 많은데 한 마디도 끄내질 못한다
그 받아들여지지 못함이 고통이다
연주를 할 시간이 됐다
오랜만의 연주라 불안했다
시간은 계속 가고 누가 내 할 일을 대신 해주진 않는다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이 공간을 소리로 채워야 하는 건 나다
끌어가야 하는 것도 나고 틀리지 말아야 하는 것도 나고
여러 가지 일들을 동시에 처리하느라 복잡하다
손가락도 눈도 머리도 핑핑 돈다
우울감이 있어서 그랬을까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한 곡이 끝나고 숨을 자꾸 몰아서 쉬고 눈을 자꾸 꽉 감았다가 떴다
또 약 생각이 난다 이럴 땐 신경안정제라도 있으면 좋겠어
손이 차갑게 식어갔다
건반 위는 매정하게 차가워서 손을 올려놓으면 손이 자꾸 식는다
누군가 내 이름으로 생미사를 신청해주었다
누구와 누구와 내 이름..과 누구와.. 를 위해 이 미사를 봉헌합니다
마음에 조금 위안이 되는 듯 했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며 이 시간을 잘 견디길 기도해주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차분해지려고 애썼다
오늘 이 시간을 잘 넘기고 잘 연주할 수 있길
그 사람 덕분이었을까 오늘은 크게 이상한 것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끝나니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밖은 아직도 흙비가 부슬부슬
사람들 사이에 섞였다 섞인듯 섞이지 못한 듯
내 존재의 어색함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무기력하다
사람들 사이에 내 표정이 궁금하다
난 미소짓고 있을까? 또 맛이 간 표정을 하고 있을까?
맛이 간 미소를 짓고 있을 지도 모른다
시간은 또 가서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입에서 자꾸 '심난하다' '짜증난다' '에휴' 하고 씨발 등등의 욕이 딱히 의미도 없이 계속 나온다
집에 가려고 나온 길에 누가 문을 잡아주다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걔가 의미도 모르게 씩 웃는다 난 정말 의미를 모르겠다
'왜~? 왜 웃엉?'
'ㅎㅎㅎ 그냥요'
'웃음이 나와..?'
'....네?'
'내가 웃기게 생겼엉?'
'아녀 ㅎㅎㅎ'
불법주차한 차를 빼다가 '끡' 하는 불길한 소리가 났다
'아 씨발, 박았나봐'
조심스럽게 차를 빼서 확인해봤는데 앞 차는 멀쩡하다
'그냥 갈래. 어차피 박았어도 그냥 가려고 했었어'
동승자들이 도란도란댄다
'요즘엔 블박이 많아서 그래도 확인 해야지' '안박았으니까 다행~'
'아냐 블박 있어도 진짜 박았어도 난 그냥 가려고 했었어'
집에 와서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려서 보니 차가 온통 흙투성이다
차를 쳐다보기도 싫고 손끝 하나도 닿기가 싫다
그러나 차 문을 닫으려면 손을 대야 하고 차를 쳐다봐야 한다
쳐다보되 내 차가 아닌 양 주차장에 내버려두고 올라가기로 한다
언젠가 맑은 날 내가 세차를 하겠지 그 때까진 내 차라고 생각하지 말자
엘리베이터 거울로 나를 본다
화장은 안 번지고 그대론가
표정은 맛이 갔는가
눈빛속에 뭐가 들어있는가
화장은 멀쩡했고 표정은 맛이 갔고 눈빛 속에는 허무랑 무기력함이 있었다
아 아주 평소와 같은 나구나
흙비는 미세먼지에이은 또다른 충격이었어요ㅜㅎ 차사고는 당황하셨겠어요
재미있는 분이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