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은비가 왔다

in #kr8 years ago (edited)

오늘 은비가 왔다

초등학생 적의 일기였다. 4학년 때 일기에 은비가 왔다고 적혀 있었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고, 그 다음엔 설렜다. 그런 여자친구가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었지만 알 수 없었다. 은비가 누구인지 찾아보려 애썼다. 이상했다. 내 기억 어디에도 그런 예쁜 이름의 여자애는 없었다. 여자애가 우리집에 놀러왔을 가능성도 극히 낮았다. 그런데 은비에 대한 언급은 달랑 한줄로 끝이었고, 이후 내용은 아무 상관없는 말만 잔뜩이었다.

결국 깨달았다. 띄어쓰기 오류였다. ‘오늘은 비가 왔다’를 잘못 쓴 것이었다.

내 못난 작문 실력이 가공의 그녀 은비를 만들었고, 나는 깜빡 속았다. 어린날의 나에게 속았고, 잠깐이나마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다. 그 상황이 재밌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해당 일기가 부모님 댁에 있는 것이 아쉽다. 사진을 찍어 올릴 수 없으니까.

아무튼 오늘은 비가 왔다. 이 비를 바라보며 나는 있지도 않은 은비를 떠올린다. 허구의 그녀가 왠지 그립다. 비가 내리면 마음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차분하게 옛날 생각을 하게 된다. 일기는 그 자체로 추억이지만, 일기를 보고 놀랐던 일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추억에 대한 추억이다.

일기를 쓰는 초등학생인 내가 있고, 그걸 읽고 있는 대학생인 내가 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30대의 내가 있다. 이 셋은 같은 사람일까?

추억은 미화된다. 소소한 사건도 영웅담처럼 기억된다. 허세나 허풍이 아니라 기억 그 자체가 오류일 때도 있다. 기억이란 확실하지 않다. 없었던 일을 기억하거나 있었던 일을 기억 못해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진짜 은비가 있었다고 믿어도 괜찮을 것이다. 은비가 왔다는 기록이 존재하니까. 기억이 없는 건, 내가 그저 잊었을 뿐 아닐까. 조금 슬픈 접근이긴 할 테다.

은비가 나타나길 기다린다. 봄비처럼 필요한 때에 나타나주길, 혹은 예보되지 않은 소나기처럼 갑작스레 등장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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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봤습니다!! 추억이 미화되긴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하진않을까요??ㅎㅎ

넵ㅋㅋ 실제와는 별개로 아름답게 미화되고 포장되죠~ 그것도 의미가 있을테고요. 방문 감사드립니다.

어린시절 추억 재미있는글 잘보았습니다.

넵. ㅎㅎ 방문과 댓글 감사드립니다~~

추억 거리 가끔 꺼내어보면 정말 재밌죠 ㅎㅎ
저도 가끔 꺼내보는데 너무 재밌습니다 ㅋㅋ

내가 이랬나 싶어 당황하기도 하고..
전혀 기억 없는 사건을 마주하는 것도 재밌죠ㅎㅎ
그래서 기록을 남기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으어어~ 엄청난 반전과 애환이 느껴지는 현재진행형 이야기입니다...T.T

인생은 반전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아직 현재진행형이니 좋은 결말을 바랄 수도 있겠지요. ㅋㅋㅋ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네요

오늘 은비가 왔다
오늘은 비가 왔다

띄어쓰기 하나일 뿐인데 한 줄이 주는 추억의 힘이 강력합니다 ㄷ ㄷ

띄어쓰기가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저렇게나 다른 의미가 되는것도 놀랍구요.
가짜 추억이지만 잠시나마 행복했습니다. ㅎㅎㅎ

진짜 은비가 있었다고 믿어도 괜찮을것 같다.... 읽다가 소름이 오내요.. 우리 주변에도 자신이 보고싶은것, 듣고싶은것만 보고 자기 좋을데로 정론화 하시는분들에게 읽게 해주고싶은 글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미화하거나 심지어 창조한 기억 속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자신을 속이는 건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은비가 실재했다고 믿고 가짜 기억을 만들어내면 저도 같은 부류가 되겠죠. 그렇게 안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ㅠ ㅎㅎ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

짱짱맨 태그 사용에 감사드립니다^^
짱짱 레포트가 나왔어요^^
https://steemit.com/kr/@gudrn6677/3zzexa-and

늘 감사드립니다~~

ㅎㅎ 맞습니다... 그런 경험이 누구나 있는거 같습니다... 오늘 은비가 왔다... 저는 이사하면서 어릴때 쓴 일기가 모조리 없어져 버려서... 대학교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쓰면서 모아보고 있네요... ^^

저런 실수들을 찾아내는 것도 재미난 일 같아요ㅋㅋ 지금부터 쓰신 일기가 분명 나중엔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뭐 이런건가요...? ㅎㅎㅎ
저도 두근 했습니다.
은비라니... 이름 참 예쁘다... 하면서... ㅎㅎㅎ

그런셈이죠ㅋㅋ 예쁜 이름은 참 사람을 설레게 하는 것 같습니다. ㅎㅎㅎ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음 더 행복한 결말이었을텐데..ㅋㅋ

아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크흡...

저도 폭풍 오열의 상태에서 글을 썼습니다.. 크리넥스 한통을 다 썼네요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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