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표기법을 옹호하며 ― 호날두와 살라흐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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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ft & Right)

해외 축구 관련 기사를 보다 보면 이따금 생소하고 특이한 표기가 눈에 띈다. 살라흐, 코치뉴, 차차… 그것은 축구 팬 커뮤니티나 이전 다수의 기사들에서는 다르게 표기되었던 것들이다. 살라, 쿠티뉴, 자자… 이 익숙하고 친숙한 표기 대신 등장한 우습고 기괴한 표기들에 사람들은 쉬이 반감을 품고 조롱을 퍼붓는다. 이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이다. 마르시알(마샬)이나 더 브라위너(데 브루잉) 등도 한때 거센 조롱의 대상이었다. 이제는 원래의 마샬이나 데 브루잉이 어딘가 촌스럽게 느껴지지만.

사람들은 왜 반감을 품을까? 물론 인간은 자기와 다른 것, 다수와 다른 것, 익숙하지 않은 것에 자연스레 적대감을 품곤 한다. 「왜 하던 대로 안 하고?」 「왜 튀고 난리야?」 「웬 유난이야?」 「피곤하게 굴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 따를 줄도 알아라」는 인류가 역사 내내 유지해온 근본적인 판단과 감정의 형식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분명 유효하고 많은 것을 설명해주되, 동시에 많은 것을 묻어버린다. 예를 들어, 이런 설명은 '튀는 측'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전형적인 논리가 아니던가?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은폐하면서. 따라서 사람들이 느끼는 반감을 좀 더 파고들 필요가 있다.

예컨대 그것은 기자의 자의적 표기로 보인다. 요즘 기자들을 믿을 수 있나? 별것도 아닌 주제에 별 시덥잖고 정확하지도 않은 이유로 뭔가 있어 보이는 표기를 쓰는 거겠지? 예컨대 정확한 발음에 대한 자부심. 오렌지가 아니라 오륀지라는 거지. 그런데 굳이 한국인이 외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따라해야 하나? 영국 애들은 Ronaldo를 그냥 편하게 로날도라고 불러버리는데!

기자들에 대한 불신은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고, '해외축구' 기자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그것들도 기자인가?). 그들이 뭔가 다르고 새로운 것을 할 때는 어딘가 의심스럽고 심지어 사기꾼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약 존경받는, 존경받을 만한 '국제적' 커리어를 쌓고 딱히 사고를 친 적도 없는 신뢰성 있는 전문가가 일반적인 표기와는 다른 무언가를 쓴다면, 사람들은 좀 더 호의적인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 표기는 좀 더 정확해 보이고 좀 더 세련되고 고급스러우며 심지어 어딘가 친숙하고 혀에 촥촥 감기기까지 한다! 한국인들이 계몽(선진 문물)에 대한 강한 반감과 강한 환상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기자들은 그리 대단한 허영심이나 사명감, 선민의식 따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그저 '외래어 표기법'을 따를 뿐이다. 이것은 '정확한 발음 흉내'와는 다르다. 한국인이 외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 한글로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은 외래어 표기법의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외래어 표기법은 자칫 난립할 수 있는 정확한 발음'들' 대신 하나의 일관된 표기를 확립하려 한다. 관건은 일관된 규칙과 체계지 정확한 발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수도 とうきょう는 토우쿄우, 토오쿄오, 도오쿄오, 토쿄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될 수 있다. 무엇이 정확한 발음이고 표기인지는 정말로 사람마다 다 다르게 생각한다. 외래어 표기법은 심지어 정확한 발음을 희생시키고서라도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는 표기를 찾는다. 그래서 답은 도쿄다. 그리고 언론이 이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는 것은, 다른 이유를 생각해볼 것도 없이, 당연한 것이다. 살라흐, 코치뉴, 차차 등은 외국인들의 발음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규정된 외래어 표기법을 충실히 따른 결과일 뿐이다. 외국어 실력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국어 맞춤법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다. 맞춤법이다. 「외래어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는다.」(한글 맞춤법 제1장 제3항)

사실 이런 표기에 반감을 품는 이들 중 상당수는 외래어 표기법이라는 것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 것이다. 그렇기에 살라흐, 코치뉴 등이 어륀쥐류의 발음 자랑이라고 생각하고 조롱했던 것이리라. 이 글은 외래어 표기법의 존재를 알고도 그에 반대하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는 것을 조롱하고 냉소하는 사람들을 위해 계속된다.

외래어 표기법? 그런 게 굳이 필요한가? 그냥 편하게 읽히는 대로 쓰면 안 되나? 영국애들은 Ronaldo가 브라질 혹은 포르투갈에서 어떻게 발음되는지에 대해 관심 없이, 혹은 별도의 포르투갈어 표기 규정 없이, 그냥 편하게 자기식대로 로날도라고 읽어버리잖아? 그러나 이들은 한국의 독특한 조건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다. 로마자 문화권에 속한 나라들은, 입으로는 어떻게 읽든, 표기 자체는 원래의 철자를 그대로 가져오면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오랜 로마자 사용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로마자가 아닌 한글을 사용한다. <방한을 취소한 Ronaldo>라고 기사를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기에 한국인들에게는 다른 문자로 표기되던 것을 한글로 표기할 때 어떤 원칙에 근거해야 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입으로 내는 발음이야 같은 문자 표기 가지고도 다 다르지만, 문자 표기가 제각각일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한국은 고유의 로마자 사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당연하면서도 절대적으로 간과되는 사실이다. 한국인들은 고유의 로마자 사용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마자가 뭐야? 아, 영문(영어, 알파벳)?

한국인들은 미국인인 걸까? ― 영국인은 아닐 것 아닌가? 실제적으로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하기야 국제화란 곧 앵글로색슨화인 것이다. 하여간 자존심이고 기개고 원칙이고 다 버린 채 무조건 영어식으로 표기할 때, 적어도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재, 영어식으로 표기하는 게 오히려 더 큰 이질감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정말로 Ronaldo를 로날도로, Paris를 패리스로, Argentina를 아르젠티나로 표기하기 시작하면 살라흐나 코치뉴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비난과 조롱이 쏟아질 것이다. 물론 축구계에서는 예전에 널리 쓰이던 방식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비일관적인 규정은 참아도 시계를 거꾸로 감는 것은 도저히 참지 못한다. 둘째, 영어식 표기라는 게 뭔지부터가 문제다. 맨체스터와 만체스터 중 무엇이 '자연스레 읽히는' 영어식 표기인가? 외래어 표기법을 영어식 표기로 대체하면, 그때는 영어식 표기가 외래어 표기법처럼 똑같이 욕을 먹으리라는 예상은 지나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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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표기의 상태와 로사키의 표정은 저리도 잘 어울리는 걸까?)

물론 한국 일반인 사이에서 널리 통용되는 외래어 표기 방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처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의 로마자 사용 방식(YuBi, JangBi, MaCho)에, 피파로 배운 외국어 어휘(헨리가 아닌 앙리, 빌라가 아닌 비야, 오질이 아닌 외질)가 곁들여진 듯한 형태다. 그렇지만 이것이 '원칙'으로 삼을 만큼 일관성이나 체계성을 갖추고 있나?

원칙이 무슨 필요냐고? 일관성과 체계가 무슨 필요냐고? 그냥 사람들이 쓰고 싶은 대로 쓰자고? 골이따분하게 굴지 말고? 뷔페미… 아니, 뷔표기즘. 그런데, 그러면 왜 살라흐나 코치뉴, 차차는 안 되는 걸까? 그대는 골라야만 한다. 「그럼에도 언어는 사회적인 것이기에, 사회적 약속이기에 무작정 자의적일 수 없다」고 하려면, 외래어 표기법이라는 공식적 기준이자 약속을 (무조건 따르지는 않더라도) 존중해야 하며, 최소한 외래어 표기법을 따른다는 이유로 조롱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언어가 사회적 약속이라는 이유로,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는 사람들을 조롱해온 것이 또한 한국의 풍경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머릿수만이 약속을 구성하는 요소일 뿐, 공식적 규정 역시 약속의 요소라는 당연한 상식은 철저히 망각되어 있는 것이다. 일종의 무법 민주주의? 반대로 사회적 약속이고 뭐고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쓰자는 입장이라면, 남이 살라흐라 하든 코치뉴라 하든 뭔 상관인가? 아마도 사람들은 꼰대 같은 규정 없이도 대중이 자연스레 언어를 선택하거나 도태시키는 언어의 정글, 일종의 보이지 않는 손, 보이지 않는 손의 민주주의를 암암리에 전제하는 것이리라. 카오스 속에서 맨 처음 나오거나 가장 널리 퍼진 것이 곧 옳은 것일지니. 그러나 그런 전제는 이렇게 명시적으로 지적되지 않는 한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규정 없는 언어의 정글이라는 말을 직접 들으면,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자신의 견해를 취소할 것이다.

사실 오늘날 너무나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는 표기들 역시도, 처음에는 지금의 살라흐나 코치뉴처럼 조롱과 비난을 받았었다. 예를 들어 2006년 즈음 축구 기사 등에서 각종 단어들을 외래어 표기법에 맞춰 물갈이했을 때. 당시 최고의 선수였던 호나우딩요는 호나우지뉴가 됐다. 맨유의 밉상 댄서였던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크리스찬 호나우두)는 호날두라는 우스운 이름이 되어버렸다. 네덜란드어권 역시 통째로 뒤집혔다. 「세계 최고의 축구 명문가」라던 반씨는 판씨가 되었다. e를 무조건 에로 표기하던 직관적 방식 대신, 2음절 이상의 단어 중 마지막 음절의 e나 어말의 e는 어로 표기하게 되면서 고급스럽게 혀를 꼬는 듯한 아니꼬운 모습이 되었다(로벤 → 로번). 이런 대대적인 변화에 대한 반감과 비난과 조롱은 엄청난 것이었다. 딩요가 아니라 지뉴라니! 호나우두도 아니고 로날도도 아니고 호날두?ㅋㅋ 판 니스텔로이ㅋㅋ 카윗은 또 누구야?ㅋㅋ 그리고 이 표기들은 오늘날 너무나 당연하게, 심지어 경외를 담아 사용되는 것들이다. 오히려 호나우딩요나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 등의 표기는 얼마나 올드하게, 덜떨어지게 보이던가? 딕 쿠이트는 또 누구야? 그런데 호날두를 자연스레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라흐를 욕하는 풍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똑같이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결과라도 어떤 것은 대중에게 수용되고 어떤 것은 수용되지 않는지에 대한 다양한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성. 호나우두 → 호날두와 달리 살라 → 살라흐는 (불필요한) 한 글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어떤 민족이던가? 전생에 말이 길어 죽기라도 한 마냥 단어를 줄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민족이 아니던가? 살라흐의 h 같은 희미한 성분의 경우, 학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 요소를 보존하려 드는 반면, 대중들은 어떻게 해서든 지워버리게 마련이다. 마르시알이나 더 브라위너가 무사히 자리 잡은 것이 한결 더 기특해 보이지 않는가? 물론 반대의 사례도 있다. 요소를 제거해버리는 외래어 표기법의 방침에 맞서 원음의 요소를 꿋꿋이 보존하며 긴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다. 장음을 별도의 한 음절로 보존하는 일본 문화 오타쿠들이 대표적이다. 아마도 그들 대부분이 일본어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도쿄나 오사카는 토오쿄오나 오오사카라고 안 쓰는 걸까? 일본어는 2D 세계에서만 사용되는 언어인 걸까?

그러나 언어의 보급에 대한 이론은 제쳐두자. 중요한 것은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다. 한때 조롱당하고 비난당하던 호날두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면서 살라흐를 조롱하고 비난하다니? 불편하거나 와닿지 않아서 자기가 사용하지 않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표기(맞춤법!)를 사용하는 사람을 조롱하고 비난하다니? 심지어 축구 기사에서는 살라흐를 비웃으면서 역사 관련 글에서는 살라흐 앗딘을 운운하는 놈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죄다 하틴의 뿔로 보내버려야 한다. 너무나도 쉽게 사회적 약속을 운운하면서도, 정작 약속의 진지함에 대해서는 어떠한 고민도 의식도 없는 사람들. 오로지 자신의 익숙함과 눈에 보이는 머릿수만을 절대적 규범으로 삼으며 다른 표기를 사용하는 이들을 비웃는 사람들. 그렇게 과거마저 잊어버린 개구리들. 정말로 오만한 것은 누구인가?

대충과 유도리의 민족은 대충과 유도리가 초래하는 근본적 불편 및 문화적 타격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감각하고 무관심하다. 그들 대부분은 국뽕에 차 있고 한글의 '과학성'을 찬양한다. 그러나 한국어 문화 생활을 보다 타당하고 아름다우며 과학적으로 가꾸어가는 데에는 무관심한 수준을 넘어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들이 기자의 '맞춤법' 오류에 대해서는 득달같이 달려들리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외래어 표기법에도 당연히 한계는 있다. 외래어 표기법만큼, 심지어 그 이상으로 타당한 이유를 가진 여러 표기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이유와 근거만 충분히 댈 수 있다면 관용하고 즐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토티와 또띠, 바이에른 뮌헨과 바이언 뮌셴, 디오니소스와 디오뉘소스, 살라흐와 살라, 가가와와 카가와를 모두 인정할 수 있다. 심지어 이것을 문화적 풍요라고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외래어 표기법이 가진 공인된 신뢰성 및 일관된 표기 기준 확립이라는 명분은 사회에서 우선적으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으며, 적어도 언론은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야 마땅하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진지한 고민 없이 공식적 원칙 자체의 폐기를 함부로 운운하는 것은 물론, 적반하장으로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는 표기를 잘못되거나 오만한 것이라고 비웃지 않던가? 여기에는 이유와 근거만 없는 것이 아니다. 자유와 관용조차도 없다. 후자는 전자의 필연적 결과일 것이다.

물론 언어들의 순수한 관용과 공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에든 권력과 싸움과 위계는 있고 그것들이 세계를 움직인다. 디오뉘소스는 디오니소스와 평화롭게 상호 공존하지 않는다. 디오뉘소스는 점점 더 정확하고 전문적이고 세련된 단어가 되어가며, 디오니소스는 점점 더 부정확하고 조야하고 초라한 단어가 되어간다. 마르크스를 공부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마르크스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처럼. 인간은 자기가 무식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인간은 자기가 무식했었다는 사실을 두려워한다. 두렵지 않은 것은 자기가 무식하다는 사실뿐이다. 그렇기에 불쾌감을 안겨주는 '경쟁' 단어의 입점을 경계하고 훼방을 놓고 텃세를 부린다. 사실 외래어 표기법이야말로 이런 권력 다툼과 감정 소모를 줄일 수 있는 길인데도. 진정으로 외래어 표기법을 널리 보급하고 싶다면 답은 간단하다. 수능 등의 '진지한' 평가에 비중 있게 집어넣으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아니, 기자가 외래어 표기법도 모르나?」라며 유세를 부리리라. 내가 아는 것은 상식이고 내가 모르는 것은 잘난 척이기 때문이다. 다수나 대중은 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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