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16 (수)
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16 (수)
■ 민수기 31:25-54
[ 순종에 따르는 큰 기쁨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수령들과 더불어 이 사로잡은 사람들과 짐승들을 계수하고, 그 얻은 물건을 반분하여 그 절반은 전쟁에 나갔던 군인들에게 주고 절반은 회중에게 주고, 전쟁에 나갔던 군인들은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 떼의 오백분의 일을 여호와께 드릴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25-28). 또한, "군인들의 절반에서 가져다가 여호와께 거제로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고 또 이스라엘 자손이 받은 절반에서는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 떼나 각종 짐승 오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성막을 맡은 레위인에게 주라"고 명령하십니다(29-30). 전쟁에서 나간 자들과 남아 있던 회중들이 절반씩 전리품을 나누어 갖도록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에게는 불합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회중들은 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똑같이 나누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의식에서 오는 것입니다. "네가 받은 것은 곧 내가 받은 것과 다름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불합리한 생각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러한 명령에는 큰 의의가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은 한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쟁에 나간 자나 전쟁에 나가지 않는 자나 모두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한 운명공동체이며, 이것에는 어떠한 차별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손과 발이 부지런히 일하여 거둔 수확물을 손과 발만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한 몸 안에서는 모든 연결된 신체기관이 함께 누려야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둘째, 이스라엘과 미디안의 전쟁은 철저히 하나님의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분배의 원칙'이 전쟁에서 싸운 군사들이나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지도자들에게 나오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뜻에 따라 배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에 의한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한 승리이며,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군사들이나 회중이나 그 은혜를 모두가 골고루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셋째, 전리품을 균등하게 분배하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결코 영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것까지 포함하며, 실제적인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돌보시는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십니다. 넷째, 전리품을 분배받으므로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가 얻는 승리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를 맛보게 하셨습니다. 즉, 순종이 희생과 강요된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갑절로 누릴 수 있는 은혜 중의 은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숨걸고 최일선에서 사역하는 사람들을 후원하는 일도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일입니다. 기도와 후원은 "그들을 위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하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군인들에게는 자기 몫의 오백분의 일을 제사장에게 바치도록 하셨고, 회중들에게는 자기 몫의 오십 분의 일을 레위인들에게 바치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전쟁의 승리가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진 것을 인정하는 믿음으로 나오도록 촉구하신 것입니다. 내 힘으로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백분의 일이 아니라 천분의 일이라도 아까운 마음에 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반을 드려도 기쁨으로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수입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십일조의 성격도 아닌 '오백분의 일'과 '오십분의 일'을 정하신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할 수 있으며, 분배받은 것 중에 일부를 드린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의 성격을 지닌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군인들이 분배받은 것 중에 오백분의 일을 거제로 드리도록 하고, 이것을 제사장에게 돌리도록 한 것은 거제로 드려진 것은 다시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가는 규례를 적용하신 것입니다(18:28-30). 이는 노획물을 자신의 능력이나 힘으로 얻은 것이라 생각하거나, 혹은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제사장을 돕는다는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재물의 공급을 받는 제사장은 하나님이 아닌 그 사람에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도움을 준 사람도 제사장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제를 통해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것을 제사장의 몫으로 돌리도록 한 것은, 제사장이 어떠한 사람의 물질이나 권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회중들의 몫에서 오십 분의 일을 성막을 맡은 레위인들에게 주도록 하셨습니다(30). 그리고 모세는 이와같은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합니다(31, 47). 이는 레위인들이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성막에서 '하나님의 것'이 되어 일생을 봉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레위인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것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대신해서 희생하며 봉사하는 레위인들에게 마땅히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3:12-13). 헌금을 내어서 교회를 돕고 목회자를 돕는다는 생각은 성경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오히려 헌금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나의 신앙고백이며, 생명을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행하여야 할 성도의 의무입니다.
막대한 양의 전리품의 목록을 짐승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숫자를 계수하고 나열하여 기록하셨습니다(32-46). 이는 미디안과의 전쟁에서의 승리가 이스라엘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증거한 것입니다. 또한 그 승리가 얼마나 큰 승리였는지를 모든 이스라엘이 보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내 삶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하나 헤아려보지 않으면 그 받은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기 어렵습니다. 광야라는 제한적인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얻은 전리품은 이전에 맛보지 못한 큰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입성을 앞둔 시점에서의 이러한 기쁨은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 누리게될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무리 크고 풍부하다하여도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릴 것이 비하면 '맛보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러한 전리품의 분배는 가나안 입성을 위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전쟁을 치러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기를 높이는 일이었고, 철저한 순종 뒤에 따르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장차 지속적인 전투를 치러야할 이스라엘에게 담대함을 주었을 것입니다. 삶 속에서 끊임없이 영적인 전쟁을 치러야 할 나에게 필요한 것은 스펙과 인맥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내게 가장 필요합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희생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49). 군대의 지휘관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자신들이 받은 분배물, 즉 금 패물들을 하나님 앞에 가져왔습니다(50). 이는 그들이 진멸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임의로 여자들과 아이들과 짐승들을 살려 온 것에 대한 속죄의 의미였으며, 마땅히 희생이 없을 수 없는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도 희생하지 않게 하신 하나님께 자신들의 희생대신 드리는 예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 중에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노획물과 비교하여 볼 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그들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셨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물론, 전투가 미디안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기습한 것이라 할지라도 희생이 없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출애굽 1세대는 가나안을 눈 앞에 두고도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 전투에서 패배하여 큰 희생을 치러야 했지만, 출애굽 2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므로 한 사람도 희생되지 않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우리 삶의 승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므로 얻어집니다. 말씀이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면 누구나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는 사람은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이기적인 인생이 되지 않게 하시고 모든 믿는 자들을 한 지체로 여기며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사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앙고백이 되게 하시고, 순종하므로 더 큰 은혜와 복을 맛보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