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접신잡] 흰 옷을 입은 남자

in #dclick6 years ago (edited)

다음 날 자려고 누웠는데 밖에 이거 비슷하게 생긴 놈이 서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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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문 지방 너머에 있었다.

굳이 렉터 박사를 넣은 것은 「양들의 침묵」 특유의 그 공포 분위기를 내 개인적인 경험담에 넣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이 인간이 입은 옷이 이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아닌가? 어쩌면 아래 쪽 흰색 쫄쫄이와 더 흡사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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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느낌?

근데 얼굴은 선명하지 않았고 무슨 군 부대 보안 사진마냥 흑검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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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의 이끼에 등장한 이 귀신과 얼굴이 흡사했다. 근데 이 얼굴에 흰색 쫄쫄이를 입고 있었다. 하, 기껏 쓰는 공포물에 쫄쫄이라니. 직접 본 게 이러니 이렇게 설명할 수 밖에.

그는 내게 나와 함께 어딘가로 가겠냐고 물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순순히 알겠노라고 답했다. 그러자 천장이 열리더니 회색 빛 창자나 가스 따위들이 방 안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들을 비집고 뜬금 없이 위로 승천하기 시작했다. 한 번에 휙 올라간 것이 아니라, 마치 큰 풍선에 가스를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는 것처럼 내 몸은 반복되는 오르락 내리락 속에 장난감처럼 조종되고 있었다. 몸 안에 들어온 공기에 부피감이 느껴졌고 그대로 나는 빙글빙글 하늘을 돌았다. 시선이 아래로 향했을 때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보았다.

지금 이런 일이 내게 생긴다면 아마 임사체험이나 외계인으로 가닥을 잡고 상황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겠지만 당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나는 닥친 그 현실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생각했다. 맨 처음 나온 가설은 이 흰색 쫄쫄이가 신형 천사복이고 즉 이 정체불명의 사내가 천사라는 것이었다. 원래 성경에서 묘사한 천사라는 것도 꼭 미형만은 아니니까. 내가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니 하나님이 그 삶의 괴로움에 대한 유희로서, 이런 자이로드롭 같은 놀이를 제공한다, 그게 그 시점 나의 상황 인식이었다.

만약 당시 10대였던 내가 세월호에 갇혔다면 나는 제일 먼저 하나님에게 감사 기도부터 올렸을 것이다. 이 물이 차는 방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기회를 주는구나, 설마 내 삶에 비젼을 준 그 신이 이곳에서 나를 죽일 리는 없겠지. 예전 샘물교회 피랍 사태 때 피랍자 가족 중 한 명이 '기대가 크며 신나고 재미난다'라는 간증을 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 말이 어떤 현실 인식에서 나왔을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는데 신이 내 눈 앞에서 기적을 펼칠 거라는 그 산만한 확신이 점차 물이 가득차면서 두려움이 되고,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지려다 겨자씨만한 콧구멍에 물이 차 그대로 퉁퉁 불은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사이비' 기독교 재단에서 운영한 그 더러운 배에서 희생된 아이가 죽기 전 핸드폰에 남긴 음성 메시지를 들었다. 나는 꿈이 있노라고, 정말 죽기 싫노라고 말했다. 한 번 들은 적 없는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울었다. 훌륭한 아이다. 나였다면 필히 신에 대한 애원과 원망만 반복했을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자주 듣고 읽던 말이다. 얼마 전 본 영화 <공작>에는 북한 보위부 요원에 의해 자백에 용이한 마약이 주사된 상태에서도, 남한 쪽 간첩인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데 성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린 나이에 신에게 감사하라는 말에 거진 세뇌가 되어, 그 상황에 감사부터 했던 게 지금 생각하면 불쾌하다. 인간 존엄에 반한다. 뭔 감사야. 태어났으니까 맨날 가위에 눌려도 사는거지. 맨날 감사하라고 가르치는 놈 치고 손해보며 사는 놈 없더라.

지난 십 년에 감사한다. 그렇게 죽지 않고. 진심으로 살았음에. 그 아이처럼 꿈을 울부짖는 아름다운 사람은 아니었을지 모르되 적어도 종이책 속 이방신 때문에 현실을 부정하며 살지는 않을 수 있게 되어서 말이다.

여하간 나는 조금씩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위로 올라갔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며 아래에 보이는 내 몸에서 나는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거진 하늘 끝까지 갔는데 거기서 나는 환상에서 깨고 말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냥 침대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근데 문 지방에는 여전히 흰색 쫄쫄이 아저씨 서 있었다.

겹 환상일까? 하늘로 올라간 것은 가짜이고 이건 진짜인가? 저 자의 존재는 진짜인가?

그 날 이후 다시 하늘로 올라간 적은 없다. 높은 곳에서 내 모습을 바라본 것도 그때가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그 흰색 쫄쫄이를 입은 검은 얼굴의 남자는 그 날 이후 매일 문 지방에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머리를 벽 쪽으로 돌렸다. 한동안은 그러면 괜찮았다.





[귀접신잡 시리즈]



서문
1화 : 미형의 귀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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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Actifit Report Card: 10월 11 2018

오늘은 1만번 도전 실패네요. 1만원 채우려고 밖에 나가려다 너무 추워서 저녁 산책은 포기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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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를 기다립시다. 형제님!

하하 그러고보니 휴거와도 흡사 ㅋㅋㅋㅋ

곰돌이가 @kiwifi님의 소중한 댓글에 $0.012을 보팅해서 $0.011을 살려드리고 가요. 곰돌이가 지금까지 총 987번 $14.627을 보팅해서 $12.764을 구했습니다. @gomdory 곰도뤼~

으으...잠 어릴적에 가위 많이 눌렸었어요

저는 지금도 많이 눌려요 ㅋㅋㅋ 그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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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글을 읽고 타나토노트가 생각나네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인가요? ㅎㅎㅎ

때묻지 않은 순수함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느덧 없어져가는게 이런건가 싶기도 하고

자신의 객관화하면서 분석해가는 모습이
참 인상깊네요

객관화하면서 분석이라... ㅎㅎ
하나의 사관이자 그냥 ssul이겠지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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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적당히 살다가 가장 화려할 때 죽고 싶어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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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 d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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