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기술한 한국전쟁) 23, 부산교두보에서 미군의 대응과 작전결과

in #zzan5 years ago

미군의 대응

미군은 부산교두보 지역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했다. 예비대를 효과적으로 운영했고 공군과 해군의 화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병력과 장비를 효과적으로 운용하면서 적은 위험지역을 적시에 강화하였고 미 공군의 집중포격과 포병의 지원하에 강력한 역습을 실시하였다. 부산교두보 확보를 위해 미 공군은 지상군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하루에 1500회의 비행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전투수행과정에서 미군사령부는 해안을 방어하는 육군의 역습을 지원하기 위해 함포사격을 폭넓게 사용하였다. 적의 군함은 청진, 성진, 함흥, 인천 등 해안과 후방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사격으로 인민군 집결지와 시설물을 파괴하였다. 적의 해군과 공군의 항공대는 도시들을 체계적으로 공습하면서 인민군의 전투대열에 타격을 가하였다.(78)”

작전결과 평가

소련은 9월 8일이후 더 이상 공세가 무의미하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인민군의 공세는 미미한 성공만을 얻었을 뿐이며 자의적인 철수하여 부대를 이탈시키는 것이 적절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9월초에 시작한 부산 교두보를 정리하기 위한 공격에서 인민군은 미미한 성공을 거두었다. 인민군은 전선의 장애물로 넓게 펼쳐진 낙동강 도하를 강행하였고 일부 방향에서는 15-25km를 전진하였으나 공격을 확대하여 주어진 임무를 완수할 수 없었다. 이 전투에서 인민군은 적에게 큰 손실을 입혔지만 자신들도 병력과 장비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8월 20일에 비해 인민군의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주어진 상황에서 방어로 전환하거나 적의 계획된 타격에서 자신의 부대를 이탈시키기 위해 자의적인 후퇴를 실시하는 것은 적절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투수행 과정에 대한 분석결과에 따르면 9월 8일후에 인민군사령부는 공격을 계속하려고 했다(78)”

당시 인민군사령부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을 것이다. 부산이 바로 눈앞인 상황에서 공세를 중지하고 자발적으로 전선을 이탈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그 어떤 작전가나 전략가도 그런 결정을 하기 어렵다.

부산 교두보 상황과 중공군 개입당시 맥아더 원수의 철수명령은 서로 비교할 부분이 많다, 맥아더 원수는 중공군의 개입이 예상을 넘는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자 마자 바로 철수 명령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철수명령을 지체없이 내릴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다.

맥아더의 철수결정을 마치 트루먼 대통령에 대한 항명 비슷하게 평가하는 시각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느끼면 지체없이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국가의 운명을 운에 맡겨선 안되기 때문이다.

군사작전가로서 맥아더 원수의 능력이 가장 뛰어난 순간은 인천상륙작전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중공군의 개입을 인식하는 순간 지체없이 철수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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