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zan-event] 제부도와 참외

in zzan •  10 day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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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가져온 제부도 입구 풍경

스팀잇 생활을 한지 일 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인가, 스팀짱 운영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공지문이 게시되었다. 응모라면 하다못해 마트 오픈 기념 바가지라도 타야 직성이 풀리는 근성으로 독서와 농사를 앞세워 지원했더니 덜컥 선정이 되었다.
국민학교 줄반장 이후 그 얼마만의 감투던가. 스팀잇의 시스템이나 코인 관련 용어 하나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좋아했다. 그런데 막상 운영위원 활동을 하려고 보니 그저 바가지나 받아들고 좋아하는 게 나을 뻔 했다. 지금도 그렇거니와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남들처럼 호기롭게 이벤트도 개최했으나 들어온 작품은 딱 한 편. 말하기도 창피하다.
그렇다면 @jjy님 마당을 빌어 내가 주체했던 행사의 뒷풀이나 해보자는 생각이 났다. 객 없는 잔치에 혼자 추는 춤이 좀 어색하긴 하지만 자기애 충족에는 그만 아닌가.


선친께는 고모님이 한 분 계셨다. 우리는 그분을 왕고모 할머니라고 불렀는데, 흰머리를 곱게 쪽 짓고 늘 한복을 입으셨다. 왕고모 할머니는 일 년에 한 두 차례 우리 집에 오셔서는 가난한 조카(선친)의 살림살이를 걱정하셨다.
내가 열 살, 동생이 여덟 살 쯤 되던 그 해 여름에도 밭에는 노란 참외가 두둑 가득히 열렸었다. 그 동네는 집집마다 참외를 심어 서울 농산물센터로 올려 보냈는데 노련미가 부족했던 부모님의 상품은 도맡아 하등값이었다.

"애덜아. 말 만한 것들이 놀면 모하냐? 제부도 가서 참외나 팔고 와라.“

왕고모 할머니는 볼이 홀쭉해지도록 담배를 빠시면서 우리 자매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어느 집 아이가 제부도 가서 얼마를 벌어왔더라고, 세상 그렇게 잘 팔리더라고, 어디선가 듣고 온 이야기를 늘어 놓으셨다. 우리의 귀가 솔깃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당장 참외가 박스 안으로 옮겨졌고, 제부도는 우리 참외를 기다리는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작은 상자 안에 몇 개의 참외가 들어갔는지는 기억에 없다. 머리에 이고 걸을 수 있을 정도였을 것이고, 동생이 달랑거리며 따라 왔고 제부도 입구까지 붉은 흙먼지 폴폴 날리는 땡볕 아래를 걸었다. 당시 우리 집에서 제부도 입구까지는 어른걸음 한 시간 거리였다.
마침 썰물이라 지체없이 '모세의 기적'이라고 소문난 길을 사람들 틈에 섞여 들어갔다. 예나 지금이나 제부도는 도시에서 가깝기에 관광객이 많은데, 그때는 모래가 고왔고 해변에 텐트가 빽빽했었다.

"하나에 얼마에 팔까?“

동생과 나는 200원 아니 먼 길을 왔으니 300원은 받아야 해, 신이 났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백사장의 피서객들은 우리 참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들의 텐트 안에는 이미 노란 참외와 줄무늬 짙은 수박이 보란 듯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영복을 입은 도시 아이들이 뽀얀 얼굴을 내밀고 새까만 원주민 자매를 내다보았다. 무엇보다 난처한 것은 ‘참외 사세요.’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박스를 끌어안고 멍하게 앉아 있었더니 한 아저씨가 '그러고 있으면 어떡해? 팔러 다녀야지.' 혀를 끌끌 차고 지나갔다.
물이 들어오기 전에 팔고 나가야 하므로 용기백배하여 일어섰다. 사주기로는 역시 우리만한 아이를 데리고 온 아빠들이었다. 마지막 한 개까지 떨이하고 난 우리 손에는 이천 몇 백원이 쥐어졌다.

“이제 갈까?”

할미 바위 사이로 기우는 해를 등지고 '모세의 기적' 길로 왔을 때 아뿔싸, 낭패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을 알려나주듯, 길이 없어졌다. 참외 파는데 정신이 팔려 밀물 때를 깜빡한 거다. 물이 하얗게 철렁이는 바다와 그 건너 육지를 망연자실 바라보다가 텐트가 많은 솔밭쪽으로 되돌아 왔다.
울었던 기억은 없다. 동생도 담담했던 것 같다. 배가 무척 고파 간이매점에서 샤브레 과자를 300원 주고 사먹었다. 그리고 모래톱을 희롱하는 파도에 옷을 적시며 둘이 깔깔대며 잠시 놀았던 기억도 난다.
문제는 밤이었다. 소나무 옆에 나란히 쭈그리고 앉아 있노라니, '니들이 여긴 왠일이냐?'는 목소리가 들렸다. 반갑게 올려다보니 우리 동네 어귀에 있던 막걸리 집 아저씨였다. 아저씨도 장사를 하러 왔던 모양이었고 약간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자기네 모기장으로 데리고 갔다. 하루가 길었던 우리는 바로 잠들었고, 새벽이슬이 모기장 새로 들어와 추웠던지라 염치도 없이 아저씨네 담요 속으로 기어들었다. 뺨에 닿았던 그 담요의 촉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다음 날 물때에 맞춰 우리는 무사히 귀가했고 이천 원을 자랑스레 왕고모 할머니 앞에 흔든 다음 허겁지겁 밥을 퍼먹고 매미가 악을 쓰는 마루에 곯아 떨어졌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논에 피사리(피를 뽑는 일)를 가서 상황을 몰랐던 부모님은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해안 초소로 달려가 아이들을 찾아야 한다고 하소연을 했지만 우리의 국군 아저씨들은 보트를 띄우면 건너편 초소에서 발포할지도 모른다고 남 얘기 하듯 했단다. 왕고모 할머니의 자책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어른들과는 달리 정작 우리는 그다지 무섭지 않았는데 사실 해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바닷가를 둥둥 흔들던 스피커의 노랫소리가 무서움을 데려갔던 것 같다. 또한 아무개네 자식임을 다 알아보는 시골 정서도 어린 여자아이들을 지켜주었고 무엇보다도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독특하고 엉뚱한 왕고모 할머니의 피가 흐르는 우리였기에 그 정도의 모험은 대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

단순한 가사와 리듬이면서도 묘하게 여름바다로 달려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을 만드는 이 곡이 내겐 여름 대표곡이다. 이 곡을 들으면 제부도 바닷가의 해지는 풍경 속 어린 두 자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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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의 풍경과 도잠님 어린시절 추억이 고스란이 전해져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헉 묘사 하나하나, 그리고 문장이 모두 탄탄해서 흡입력 가지고 한번에 주르륵 읽어내렸습니다. 새벽이슬이 모기장 새로 들어와 염치도 없이 담요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_+

에잉.... 몬 과찬을 그리...
리얼이라서 그래요. ㅎㅎ

도잠님 글 참 잘 쓰시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어이쿠... 별말씸을 다.... 감사합니다. ㅎㅎ

제부도가 예전부터 사람이 많았군요!
어렸을 적 부터 돈의 소중함을 익히셨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