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사 연구) 6.25 전쟁 기습 남침론의 함의 대한 참고

기습남침론의 함의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정리해 보았다. 아직은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널뛰는 것 처럼 논지가 왔다갔다하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이승만과 백선엽 및 유재흥과의 관계

한국전쟁을 기습남침으로 규정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한 바 있다. 한국전쟁을 기습남침으로 규정하는 것은 당시 집권세력인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에게도 매우 유리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승만은 국정최고 책임자로서 기습남침론을 이유로 전쟁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당시 패전한 지휘관들도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 특히 제1사단장 백선엽과 제7사단장 유재흥이 한국전쟁이후 이승만의 후원으로 승승장구 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승만과 백선엽 그리고 유재흥은 초기 전투패배의 책임을 같이 져야 했던 인물이었기에 운명공동체와 같이 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우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쟁초기 한강선 방어선을 구축해서 북한군의 한강선 도하를 1주일 이상 막아냄으로써 미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었던 김홍일 장군은 그 이후 석연찮은 이유로 이승만으로 부터 전역을 당하고 만다. 김홍일 장군에 대한 전기 소설을 쓴 바 있는 박경석은 이승만이 자신의 후계자로 김홍일이 최고라는 이야기를 백선엽에게 듣고서 김홍일을 바로 전역시켰다는 것을 필자에게 증언한 바 있다. 물론 백선엽이 중국계 출신인 김홍일을 몰아내기 위한 간계인지 모르나 그것도 이승만과 백선엽간 모종의 공감대가 없었으면 쉽지 않았을 일이다.

미국의 한국전 참전 결정과정에서 북한의 남침기습의 의미

한국전쟁 남침기습론은 미국의 조야에도 매우 의미있는 담론이었다. 트루만 대통령은 북한의 기습남침을 부도덕한 전쟁으로 규정할 수 있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은 일본이 선전포고 없는 진주만 폭격으로 전 국민이 단결하여 전쟁에 임할 수 있었다. 비슷한 이유로 미국은 북한이 선전포고 없이 남침하는 것을 정의롭지 못한 전쟁으로 규정할 수 있었고 즉각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독소전에서 스탈린 과오론의 의미와 한국전 남침기습론의 함의

독소전에서 소련은 초기에 심각한 패배를 당했다. 당시 소련은 독일이 공격해오리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미국과 영국은 독일의 소련 공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으며 소련의 간첩 조르게는 독일군의 공격시간까지 정확하게 보고했다. 소련은 독일의 공격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제공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스탈린은 독일이 공격해오리라는 정보를 정확하게 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후 소련은 자신들의 초기 패배에 대한 원인을 모두 스탈린의 잘못된 상황판단으로 돌렸다.

스탈린의 잘못된 상황판단으로 초기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주장은 초기 전쟁의 패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스탈린 혼자 뒤집어 쓰는 결과를 초래했다. 과연 스탈린 혼자 책임을 모두 지는 것이 온당할까 ? 아무리 스탈린 1인 독재국가라고 하더라도 그 책임을 스탈린 혼자 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기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 물론 거기에는 스탈린 당시의 어마어마한 숙청이라는 상황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스탈린의 심기를 건드리면 살아 남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의 판단을 재고하기 위한 의미있는 시도가 없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모든 것을 스탈린에게 책임을 묻고 나자 역사학자들은 당연히 해야할 질문마저 하지 않았다. 왜 스탈린은 독일이 공격해 올 것이라는 정보를 믿지 않았을까 ? 스탈린은 루즈벨트와 처칠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스탈린은 히틀러는 믿을 수 있어도 루즈벨트와 처칠은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억이다. 우리는 처칠을 위대한 인물로 추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처칠은 그이전부터 소련에 대해 매우 강력한 대응을 주장했던 사람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처칠이나 루즈벨트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처칠은 독일과 소련이 서로 싸워서 망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스탈린은 서방에서 들어온 정보가 독일과 소련이 서로 싸우게 만들고자 하는 공작으로 보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독일의 공격에 의해 당한 소련의 패배는 스탈린이 서방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한국전과 독소전에서 한국과 소련이 초기에 당한 패배의 이유는 다르다. 그러나 남침기습론과 스탈린 오판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매우 비슷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전혀 다른 듯 닮은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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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article,i really admire your works sir @wisdomandjustice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서방에 대한 불신으로만 보기에는 다른 라인으로 전해진 정보도 무시하긴했죠....

얼마전 본 자료에 의하면 김홍일장군의 강제전역은 신성모 국방장관의 모략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홍일 장군을 그의 능력에 비해 한직에 머물게 한 것은 이승만임에 분명합니다. 다만 이승만이 자신이 경계하는 이범석과 가까운 이유로 그를 푸대접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자료를 한번 올려 주시지요. 김홍일 장군을 제거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예 기회가 되면 올려보겠습니다.

매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이승만이나 백선엽이나 유유상종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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