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그리다) 산티아고 길에서는 후진이나 유턴이란 있을 수 없다.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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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에서 가지고 온 과일이 힘이 됐는지 오늘의 목적지가 보이는 언덕까지 큰 어려움 없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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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에 십자가가 있고, 저 아래 도시가 보인다.
제법 큰 도시이다.
이틀 전 우리와 다른 길을 선택한 동규씨가 이 마을에서 만나자고 인사했었는데, 우리는 오늘도 이 마을을 지나서 다음 마을까지 갈 생각이다.
사실 선두를 놓치지 않겠다고 오르막길을 조금 무리해서 걸었더니 다리가 너무 아파서 이 도시에서 머물까 말까 많이 고민이 되었다.
마을이 저렇게 크면 숙소도 많고 편의시설도 많을텐데...
저렇게 마을이 시야에 들어오지만 걸어보면 그리 가깝지도 않을텐데...
어제 산 양말이 너무 얇아서 발도 불편해서 오늘은 일찍 쉬고도 싶은데...
오늘 걷는 내내 친구들을 거의 못 봤는데, 또 뭐가 잘못되어 친구들을 잃어버린 건 아니어야 할텐데...
우리의 생각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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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들어서는 초입에 있는 현대판 순례자 조형물이다.
배낭을 매고 요가 매트까지 싸들고 등산화를 신었고 등산 모자를 썼다.
며칠 전 레옹에서 본 순례자 조형물은 옛날 순례자의 복장이었는데, 우리랑 같이 걷는 많은 순례자들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 이 조형물도 참 재미있었다.

오늘은 바람도 꽤 많이 분다.
길 옆으로 밀밭이 있는데 바람에 한쪽으로 살랑이는 모습이 바다에 이는 파도 같다.
밀밭 옆으로는 꽃도 보기좋게 심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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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순례자들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지만, 산티아고 길도 자꾸 대체 길이 생기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이 길을 종교적인 의미에서 많이 걸었을 것이다.
요즘은 전적으로 내 생각이지만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여행의 의미로 이 길을 사람들이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관광지화되어 산티아고 길이 갖고 있는 매력이 퇴색될 수도 있다.
그때가 되면 또 사람들은 나름의 의미를 찾으며 이 길을 걷겠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랫동안 지금의 우리처럼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길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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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 마을을 들어서는 초입에 나름 유명한 육교가 있다.
일반적인 육교는 계단을 오르고 차도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 계단을 내려오면 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육교는 계단을 대여섯 번을 꺾어가며 걸어 오르고 차도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 다시 계단을 대여섯 번을 꺾어가며 걸어 내려오게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겨우 차도 하나 건너는 것인데 이렇게 계단을 여러 번 올라야 하니 많이 불편해 하지만, 이 육교가 이렇게 생긴 이유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 걸어 지친 순례자들에게는 쌩쌩 달리는 자전거를 위해 서너배를 더 올라가야 하는 계단이 야속한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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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를 건너고 다리가 너무 아파 육교 아래 걸터 앉아 쉬고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순례자가 힘차게 인사를 한다.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을 보면 언제나 그런 생각이 든다.
오르막에서는 온 다리에 힘줄을 세우고 힘들게 패달을 밟고 가는 그들이 딱해 죽겠고, 내리막에서는 자전거에 편히 앉아 바람을 가르며 쌩 달리는 그들이 부러워 죽겠다고...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자전거 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힘들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걷는 순례자 옆을 자전거를 타고 쌩하고 지나가는 것이 매우 미안하다고 한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순례를 하는 것이니 누가 더 힘들고 누가 더 미안할 건 없지만, 그들의 입장이 어떤지 알고 싶어서 나도 꼭 한번 자전거로 순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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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토가에 도착해서 우선은 순례 길을 따라 마을에 들어섰다.
가파른 길을 올라가서 처음 만나는 알베르게는 공립 알베르게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알베르게에서 묵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고민 중이라 슬쩍 알베르게 분위기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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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는 꽤 큰 규모였고 꽤 깔끔해 보였다.
하지만 오래된 건물이었고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였다.
우리가 지금껏 베드버그에 물린 알베르게가 모두 성당에서 운영하는 깔끔하지만 오래된 알베르게였다.
그래서 여기는 사진 한장 찍고 패스하고 계속 걷다가 괜찮은 사립 알베르게가 있으면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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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알베르게 옆에 공원이 있어서 잠시 앉아서 간식을 먹는데,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더니 점점 쌀쌀해지고 있었다.
공원에서 오늘 아침부터 바에 들릴 때마다 만나는 외국 아주머니가 하나 있었는데 또 만났다.
나중에 친해졌지만, 이날 우리가 본 아주머니의 모습은 바마다 들려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담배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인 듯하다.
우리나라는 요즘 모든 음식점에서 흡연이 금지되어 있지만, 유럽은 실내에서는 금연이지만 길에 있는 테이블에서는 흡연이 가능하다.
음식을 먹으면서 이것저것 구경하기에는 밖에 있는 테이블이 좋지만, 담배 연기를 싫어하는 우리는 그건 좀 불편하다.
그래서 담배를 너무 열심히 피우는 그 아주머니가 인상에 남았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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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마을은 큰 마을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도 필요한 물건은 쇼핑을 좀 하고 가야했다.
우선 어제 산 양말이 너무 얇아서 좀 두꺼운 트레킹 양말을 사야했다.
남편 양말은 이미 구멍이 나서 버렸고, 내 양말도 오늘 내일 구멍이 나게 생겼기 때문에 두툼한 양말이 필요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열심히 발에 바르는 바세린 로션을 우리는 구할 수가 없었다.
약국에서 ‘피곤한 발’에 바른다는 로션을 하나 샀는데 성능이 아주 좋았다.
그 약을 바르고 쉬고 있으면 마치 누군가 뜨거운 타올로 찜질을 해주면서 주물러 주는 것처럼 시원하고 피로가 풀린다.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며칠만에 우리는 이 약에 마치 중독이 된 듯했다.
쉴 때마다 발에 바르니까 벌써 다 떨어져서 그것도 하나 사야했다.
약국에서 발에 바르는 로션은 쉽게 샀는데, 양말은 여전히 적당한 것을 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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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재래 시장도 열렸다.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관광객과 순례자들까지 시장 구경을 하고 있어서 길이 아주 복잡했다.
안타까운 것은 여기에서도 우리는 양말을 사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에 우리가 산티아고에 또 오게 된다면 양말은 꼭 여분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번에도 여분의 양말을 챙겨왔었는데, 정말로 걷다가 구멍이 날 거란 상상은 하질 못해서 출발하고 며칠 있다가 여분의 양말을 버렸었다.
스페인의 태양이 너무 뜨거워 그날 신은 양말을 빨아 널어놓으면 한두시간이면 말랐기 때문에 두개씩이나 가지고 다닐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양말에 구멍나게 신어본 경험이 없어 몰랐는데, 이번에 확실히 안 것은 평균 25킬로를 매일 걸으면 2주일이면 양말은 바닥에 구멍이 난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알아야 쓸데 없는 잡학 지식일라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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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시장을 지나니 마을의 중심가가 나왔다.
여기도 사람이 많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여기도 가우디가 지은 건물이 있었다.
관광객이 많이 있는데, 일본 여자분이 자기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해서 찍어주니까 우리 사진도 찍어주셨다.
산티아고 길에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본사람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일본사람을 만난 김에 어떻게 산티아고를 걷고 있는지 물었다.
그런데 그들은 걷는 게 아니고 그냥 관광 버스를 타고 단체로 산티아고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산티아고에서 출발해서 몇몇 유명한 곳을 들러보는 여행 코스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진을 부탁했던 분은 단체 관광객을 인솔하고 다니는 가이드였다.
자기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산티아고는 매우 아름다운 도시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아마도 일본 사람들은 걷지 않고 이렇게 차로 산티아고 순례를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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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 건물 건너편에는 오래된 궁전도 있었다.
고풍스럽고 장식으로 많은 조각상들도 있어서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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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꼭대기에 있는 조각상이 인상깊어 줌으로 당겨서 사진도 찍어 보았다.
사전 정보가 없어도 산티아고는 길에서 모든 것을 다 만날 수 있어서 왠만한 것은 다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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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 건물과 궁전을 구경하고 화살표를 따라 계속 마을 길을 걸었다.
하지만 마을 끝에 있는 바에 갈 때까지 사립 알베르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오늘은 오후가 될수록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었다.
산티아고에 와서 이렇게 추위가 느껴질 정도로 쌀쌀한 날은 처음이다.
약간 감기 기운도 있는 것 같아 바에 앉아 맥주 한잔을 마시면서 많이 고민했다.
그렇다고 공립 알베르게가 있던 초입까지 되돌아갈 수는 없다.

산티아고 길에서는 후진이나 유턴이란 있을 수 없다.ㅜㅜ
날씨가 그렇게 추워지고만 있지 않았으면 그렇게 많이 고민할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한 마을 더 가보기로 했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lager68)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산티아고를 그리다) 산티아고 길에서는 후진이나 유턴이란 있을 수 없다.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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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밀밭이 바람에 술렁거리는 모습이
많은 얘기를 들려주는거 같네요
넘 인상적이예요

세월이 흐르면 세속도 바뀌느 거죠 그러나 넉넉한 인심은 바뀌지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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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메트는 피레네 넘으면서 열명중에 열한명은 버리더라구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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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도 이야기인데 마치 지금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말씀해주시는거같아요~
전 기억을 못할꺼같은데~^^

처음 사진의 자전거는 여행객의 것 인가 봅니다.

그래도 뿌듯하시겠어요. 해냈다는 그 느낌..

그러고 보니 일본과 기독교가 좀 어색하긴하네요. 불교색체가 강하군요. 유럽여행 준비중인데 베드버그 퇴치약도 사가야겠네요... ㄷㄷ 무셔워용

십자가가 구름을 떠받치고 있는것 같네요. 멋진 사진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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