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노트] 아일라 페스티벌은 가지 못해도 아일라 위스키

in #stimcity3 years ago

5월 마지막주, 스코틀랜드의 서남단에 있는 조그만 섬 아일라에서는 매년 축제가 벌어진다.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인 킬트를 입은 파이프 밴드의 흥겨운 연주가 아일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아일라에 있는 모든 증류소는 그 문을 활짝 열고 저마다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아일라의 위스키를 마음껏 맛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아일라의 음악, 춤, 문학까지 어우러져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다. 위스키를 모르는 이들에게 '아일라'는 생소하기 그지 없는 곳이지만 위스키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면 절대 모를 수 없는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일라는 하루키가 위스키 성지순례를 한 섬이기도 하고 땅속에 퇴적된 토양인 피트를 태워 볶은 보리로 소독약 냄새와 해초를 태운 듯한 독특한 냄새와 맛이 나는 위스키를 만들기 때문이다. 아일라의 위스키는 이 독특한 향과 맛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아일라의 피트 위스키에 푹 빠진 사람 중의 하나이다.

언젠가는 꼭 가고 싶은 아일라섬이고, 아일라 페스티벌이지만 2020년에는 코로나로 페스티벌 자체도 취소되어 언제 갈 수 있을지 더욱 요원해졌다. 그러던 와중 취소된 아일라 페스티벌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열린 아일라 시음회를 참여할 수 있었다. 작년 5월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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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아스카이그 25년 45.8%

​예전에 우연히 먹은 포트아스카이그 10년 CS를 먹고 반한 적이 있어서 라인업을 보자마자 가장 기대를 했던 위스키이다. '10년'이 맛있으니 '25년'은 얼마나 맛있을까? 하는 단순한 기대였는데 철저히 깨졌다. 짭짤하고 약간의 비누맛이 입 안에서 미끌어지며 부드럽고 바디감은 굉장히 가볍다. 숙성년도가 높아서인지 피트도 강하지 않은데다가 그렇다고 인상적이거나 깊은 맛도 아니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컸다. 포트아스카이그 10년 CS는 내가 먹어본 피트 위스키 중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로 내 마음에 쏙 들었기에 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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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나하벤 2001, 아일라페스티벌 2019 보틀, 소테른 피니시 54.2%

​소테른 캐스크로 피니쉬를 한 부나하벤의 경우는 달달한 소테른 와인의 캐릭터가 잘 입혀져 달달하다. 또 그 와중에 스치듯 가볍게 피트라기 보다는 스모키에 가까운 맛이 맴돈다. 약간의 쓴맛이 짠맛과 단맛과 이루는 조화도 좋고 바디감도 적절하게 느껴졌다. 54.2도 라는 높은 도수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던 걸로 보면 맛있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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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라디 마이크로 프로베넌스 세컨드필 프랑스 리브잘트 캐스트 숙성, 10년 63.1%

​프랑스 주정강화 와인인 리브잘트 캐스트를 사용했다던 브룩라디는 굉장히 낯선 맛이었다. 달달하면서 묘하게 거슬리는 맛이 있었다. 향수랄까 허브 계열의 낯선 맛이랄까 정확히 그 느낌을 짚어내지는 못했는데 그 맛이 거슬려서 입에 맞지 않았다. 궁금함에 리브잘트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리브잘트는 비산화타입과 산화타입으로 나뉜다는데 비산화의 경우는 공기와 접촉시키지 않고 과실과 꽃 향기를 최대한 유지한 와인에다 브랜디를 섞어 만든 타입이고, 산화의 경우는 공기와 접촉시켜서 만드는 타입으로 말린 과일, 볶은 호두와 땅콩, 아몬드 향 등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타입이라고.

전자의 경우가 꽃 향기를 최대한 유지하고 호불호를 타는 타입이라는 데서 아무래도 전자의 리브잘트가 아닐까 싶었다. 피트도 전혀 없었으며 그 거슬리는 향과 맛에,,,이 날 5위에 랭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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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불린 아일라 페스티벌 2019,쉐리 시즌드 아메리칸 오크 캐스크 53.8%

​한 입 머금는데 그윽한 피트가 입 안 전체에 은은하게 퍼진다. 어떠한 거슬림도 자극도 없이 기분 좋은 맛이다. 늘 라가불린을 먹으며 느끼는 점은 그 무엇하나 강하게 튀지 않는 조화로운 맛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것 또한 그렇다. 잔잔하게 밀려드는 피트의 파도가 지나가면 짭짤함과 달달함이 번갈아가며 입 안에 여운을 만든다. 평소에 쉐리 피트를 좋아하지만 쉐리 피트 위스키에서 쉐리가 강한 것은 오히려 피트의 맛을 헤친다는 생각을 하는데 쉐리의 맛이 강하지 않게 조화를 이루는 것 역시 좋다. 은은하면서도 결코 가볍거나 힘이 없지 않은 그 강단있고 조화로운 맛에 이날 내 1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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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벡 블랙 커미티 버전, 뉴질랜드 피노누아 캐스크 50.7%

​아드벡 특유의 강하고도 단단한 느낌의 피트는 역시 좋다. 피노누아 와인을 몰라서인지 피노누아 캐스크의 특성이 살아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강하게 치는 피트에 기죽지 않는 달달한 과실의 맛과 짭짤함이 공격적으로 만나 맛있었지만 비싼 가격에 비하면 가성비는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 날의 2위에 랭크 되었다.

​피트충은 피트를 마실 때 제일 행복하다. 이번 아일라 페스티발로 피트 위스키의 지평을 한뼘 넓힌 느낌. 처음 피트 위스키를 좋아할 때는 "내가 피트요!!!" 하고 외치며 피트가 단독 주연인 위스키가 좋았다. 좀 더 먹으면서는 셰리나 버번 캐스크가 강하게 주장하는 피트 위스키가 좋았다. 이제는 피트만 돋보이는 게 아니라 다른 요소들이 피트를 단단히 받쳐주고 어우러지며 캐스크의 성격 역시 강하지 않게 은근히 녹아드는 피트 위스키가 내가 추구하는 피트 위스키의 이상향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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