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98. 운運 없는 존재들이 자신들의 업業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낸 세상에 없던 어떤 형식

in #stimcity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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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이어 온 조직



아이작 : 그러니까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멀린 : 아 맞다. 제가 질문을 했었죠? 이런, 몰타 기사단 이야기에 심취하다 보니 질문이 뭐였는지 잊어버리고 있었네요.



아이작 : 그러신 것 같더라구요. 그니까 멀린은 개인화되는 사회에서 국방/치안/안보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가 물으셨던 거죠?



멀린 : 네 맞아요. 아이작 말대로 중앙화된 권력이 무력으로 버티면 모든 게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거죠. 아무리 새로운 시스템이 발달한다 해도 말이에요.



아이작 : 그래서 제가 몰타 기사단을 예로 든 겁니다. 중세의 사람들 중 누구도 왕이 없는 사회를 예측할 수 없었듯이 지금의 사람들 역시 국가가 없는 사회를 상상할 수 없지만, 왕이 없는 사회를 우리가 살고 있는 것처럼 국가가 없는 사회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 아니죠. 아, 저는 왕이 있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요. 군사력을 갖춘 개인화된 커뮤니티라.. 어쩌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몰타 기사단도 처음부터 군사조직은 아니었으니까요.



멀린 : 필요에 의해서 군사력을 갖추게 된 거죠. 게다가 영토도 없이 천년을 존속하고 있어요. 11세기에 설립된 조직이 21세기에도! 심지어 음모론의 숨은 주인공이 될 만큼 영향력을 잃지 않은 채로 말이죠.



아이작 : 대단하지 않습니까? 어떤 조직이 천년을 이어올 수가 있죠?



멀린 : 실은 저도 관심이 그 부분에 있어요. 천년을 가는 조직, 단체, 이념이 가능한가 말이죠. 심지어 현대 인류가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자본주의조차 몇백년의 역사에 불과한데 말이에요. 그런데 이름도 명성도 가려진 단체가 천년을 존속하다니.. 저는 2천년 교회의 역사에 주목했었는데, 그것은 종교의 영역에 있는 것이어서 어떻게 새로운 시스템에 접목할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몰타 기사단은 확실히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것 같습니다. 천년을 이어오는 영토 없는 국가라..



아이작 : 오히려 영토가 없었던 것이 그들을 천년 동안 지속 시켜 온 동력이 아니었을까요? 모두가 영토에 집착할 때, 영토보다 역량과 실력, 실체로 자신을 증명한 조직이었죠. 몰타 기사단은.



멀린 : 그것참 아이러니하네요. 영토, 땅은 대표적 한정 자산이잖아요? 희소성의 상징인데, 정작 그걸 소유하려던 이들은 사라지고 그것에서 배제된 이들은 천년을 존속하고 있으니.. 영토가 주어지지 않은 점은 그들에게는 매우 한스러운 부분이었을 텐데, 대신 정신을 묶어주는 신념이 무척 강했겠죠? 마치 앞을 볼 수 없거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장애인의 다른 감각이 더 발달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제가 좀 더 주목하게 된 부분은 그들이 참으로 운運이 없던 이들이었다는 점이에요. 그간의 공성전이나 자신들의 존재를 지켜오는 과정에서 이렇다 할 운運이나 외부의 도움이 작용한 부분이 없어 보이는 거죠. 운칠기삼運七技三이 아니라 운일기구運一技九 같단 말이죠. 물론 기사단의 역사를 세세히 들여다본 건 아니지만, 외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환경이 오히려 자신들 내부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 올릴 수 있게 했다는 거죠.



아이작 : 그랬으니까 실력과 역량에 더 집중하지 않았을까요? 결사적이었던 이유도..



멀린 : 기사라는 업業 자체가 소멸의 위기를 맞았던 환경이 오히려 동력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하던 일을 더이상 할 수 없는 이들이 영토도 없이 떠돌면서 더 간절해지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그들은 자부심을 잃지 않은 이들이었으니까요.



아이작 : 상속받을 유산이 없는 신분, 그러니까 보장된 자산이 없는 이들의 운명 결사체였다고 볼 수 있죠. 계속되는 삶의 도전이 그들의 목숨 곁에 바로 붙어서 따라왔으니까요. 전장에 내몰린 삶이 오히려 생명력을 강화시킨 셈이죠.



멀린 : 사람들은 종종 착각하는데, 생존을 위협하는 건 도전과 위험이 아니죠. 심장을 뛰게 만드는 위험은 우리의 생존력을 더 강화하고 살아있게 만들지만, 도전과 위험을 제거한 안정된 삶은 그대로 생을 말라 죽게 만들어요. 그럼에도 다들 그리로 들어가지 못해 안달 나 하는 건 왜일까요?



아이작 : 멀린, 저는 과거의 세기들을 오가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나름 찾은 것 같아요. 그것은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서 오히려 더 치열한 생의 스트레스? 에너지가 흘러넘친다는 아이러니에요. 그 안정이라는 것은 좀처럼 주어지지 않고 손에 들어오지 않는 매우 짧은 순간 같은 것이거든요. 오히려 생의 도전과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이들은 점점 자극이 무뎌지는 경향이 있어요. 평범한 사람에게는 심장이 터질 것은 같은 순간도 그들에게는 반복되는 일상처럼 느껴지죠. 오히려 단단해진 가슴이 생을 지루하게 느끼게 된다고 할까요?



멀린 : 하하 그래서 심지어 지구 밖으로 뛰쳐나가려 드는 거 아닙니까? 간이 배 밖으로 뛰쳐나와서 말이죠.



아이작 : 네 맞아요. 그것 역시 인류에게 주어진 사명이죠. 지루함을 떨치기 위해 우주 끝까지 뻗어 나가기 말입니다.



멀린 : 그런 걸 보면 몰타 기사단의 삶은 참으로 쫄깃쫄깃했겠네요. 그만한 보상 역시 충분히 획득한 것 같고 말이죠.



아이작 : 네. 어떤 의미에서 보람 넘치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삶이라고 볼 수 있겠죠.



멀린 : 그런데 그러면 개인화되는 사회에서, 결국 개인들이 그러한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제 질문에 대한 아이작의 답은 아직 못 들은 것 같네요.



아이작 : 음.. 결국 새로 도래하는 시스템은,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게 될 거라는 답을 드리는 게 맞을 것 같군요. 16세기로 돌아가서 공성전을 벌이고 있는 기사단원들에게, 내가 미래에서 왔는데 당신들은 21세기에도 존재할 거라고, 심지어 영토도 없이 국가로 존재할 거라고 말하면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멀린 : 하하하 아이작, 역시 마법사다운 답변이네요. 그러니까 결국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국방과 안보, 치안의 문제를 해결하고 개인 스스로가 국가가 되는 사회를 맞이하게 될 거라는 말씀이죠?



아이작 : 물론 기사단처럼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할 겁니다. 권력의 중심, 도전과 위험의 한복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말이죠.



멀린 : 음.. 그러니까 헤게모니 전쟁에서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이신 거죠?



아이작 : 네 도망치면 미래는 없는 거죠. 그리고 한정된 것이 아닌 영원한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몰타 기사단은 여전히 영향력을 잃지 않았지만 대제의 제국은 사라진 것처럼 말입니다.



한때 맹위를 떨치던 제국들은 모두 사라지거나 이름을 바꾸고 소멸했습니다. 그러나 몰타의 기사들은 천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신들의 업業과 소명을 잊지 않고 여전히 생존하고 있으며 인류 사회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신념과 세계관에 따라 다르겠으나 어떤 조직이 천년을 이어오며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신비로운 비의를 스스로 이룬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없던 어떤 형식



멀린 : 저는 역사란 '자중지란自中之亂에 의한 어부지리漁夫之利'로 발전해간다고 보고, 그 동력을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원리에서 찾는데요. 그러니까 스스로 개혁할 수 없다면, 자중지란이 일어나도록 한쪽 방향의 힘을 극단까지 몰아붙여 극단에 이른 힘이 반전되도록 하는 것이 역사가 진화하는 메커니즘이라고 보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나폴레옹이라는 존재가 매우 흥미롭네요. 절대왕정과 봉건체제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한 프랑스 시민혁명의 정신을 세계에 보급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황제 나폴레옹 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아이작 : 그게 역사의 아이러니죠. 아니 멀린 말대로면 역사의 메커니즘이라고 해야겠네요. 왕을 끌어내린 시민들에 의해 투표로 선출된 황제라.. 그래서 총수를 찾으신 건가요?



멀린 : 직관을 따랐을 뿐입니다만, 변화의 힘은 날카롭고 뾰족하며 선명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안정된 힘의 분배를 원하지만, 또한 변화를 열망하죠. 나누어진 힘이 합해져서 변화를 일으키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그리고 그것이 과연 우주의 방식인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의문이 들어요. 우주가 하나의 점이 폭발하며 시작되었듯이 변화는 변화를 일으키는 강력한 하나의 의지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죠. 그 의지가 이타심이든, 숭고한 신념이든, 열등감이든, 트라우마든, 시기, 질투든 상관없어요. 힘은 근원의 의도를 구분하지 않으니까요. 결국, 그 하나의 의지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떠한 혁명도 찻잔 속 태풍으로 사라지고 말죠. 그런 일이 세상에 늘 일어납니다. 물길을 변화시키는 것은 태풍이지, 연평균 강수량이 아니거든요.



아이작 : 세상을 변화시키는 단 한 사람이라.. 메시야 네요.



멀린 : 수많은 단 한 사람의 영웅들이죠. 일론 마법사는 단독으로 인류를 우주로 내몰고 있지 않습니까?



아이작 : 아아, 그이는 마법사가 그렇게 직접 나서도 되나요?



멀린 : 하하하 뭔가 불편하신 점이라도?



아이작 : 아니 뭐.. 저는 언제나 뒤로 숨겨져 있는 요원의 삶에 익숙해져 있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너무 나서는 경향이..



멀린 :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좀처럼 엑스칼리버를 뽑아 들려는 기사들이 없으니 말이죠. 심지어 국가도 예산 때문에 중단한 일을 개인이 밀어붙이고 있잖아요. 저는 개인화된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국방과 안보의 문제를 해결할까에 대한 구체적인 모델을 그에게서 얻은 부분이 있어요.



아이작 : 그게 뭐죠?



멀린 : 뭐겠어요? 예산 부족과 여론의 반대로 국가가 추진할 수 없는 혁신적인 무엇을 먼저 해내는 것이죠. 몰타 기사단이 한 일도 그것이 아니었나요? 유럽 국가들이 막아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오스만 군대를 홀로 막아냄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하게끔 만든 거잖아요. 개인화된 사회의 역량이 그 정도에 이를 수 있다면 사회 시스템에 국가의 개입을 넘어서는 변화를 이루어 낼 수도 있지 않겠어요?



아이작 : 하지만 어쨌든 다수의 여론이라는 것이 장벽으로 있고 국가 시스템 자체의 저항도 대단할 텐데요.



멀린 : 위기가 기회가 되겠죠.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위기에 개인화된 시스템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다면 말이에요. 인류가 이룬 혁신의 대부분은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었어요. 수많은 반대를 극복하고서 말이죠. 최초로 하늘을 난 이들도 국가가 아니며 전구와 자동차를 발명하고 보급한 이들도 국가가 아니죠. 오히려 국가는 전통산업에 위해가 될까 봐 주저하고 방해가 될 뿐이었죠. 모두 한 사람의 혁신가에 의해 인류 진화의 방향이 결정된 거예요. 그리고 그러한 결사체가 존재한다면 그들은 인류의 운명을 소유한 것이나 마찬가지죠. 16세기의 지중해처럼..



멀린은 16세기 지중해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머리에 떠올리고 있습니다. 대제국의 침공에 사분오열되어 있던 유럽 사회에 구세주 같이 등장한 몰타 기사단의 존재감. 그것은 이 시대에 점점 쇠락해가는 국가주의 시스템의 한계를 대체할 새로운 커뮤니티 사회의 등장을 예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계에 내몰린 어떤 운運 없는 존재들이 자신들의 업業과 사명,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전하여 만들어 내는 세상에 없던 어떤 형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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