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소년 창업史] #01 바누아투행 비행기

in #stimcity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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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바누아투행 비행기





불운은 늘 예측을 불허한다. 2020년의 불운도 그렇게 찾아왔다. 하지만 그건 서막에 불과했다. 뒤이은 불운, 더 큰 불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호주 브리즈번 행 비행기를 탄 2월 28일에는 미처 예측할 수 없었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브리즈번 국제공항의 2월 말 날씨는 포근했다. 계절이 북반구와 반대인지라 늦여름 날씨와 기온이었다. 나는 바누아투행 비행기로 환승하기 위한 게이트로 향했다. 리조트 사업의 첫발을 딛는 행보.



3개월 전 나는 다큐멘터리 '섬으로 떠난 한인들'을 취재하기 위해 바누아투라는 나라에 처음으로 당도했고, 마치 지상 낙원과도 같은 자연과 사람들의 넉넉한 표정에 매료되었다. 호주의 북동부, 비행기로 2시간여 거리에 있는 이 천혜의 섬나라는 내가 그때까지 가본 모른 나라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이었다.



자연 속의 곡물과 열매, 부족이 공동 사육하는 가축으로 영양분을 얻는 사람들은 굶을 걱정이 없었고, 햇빛은 더없이 찬란했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도운 현지 한인 가이드는 거기서 리조트 사업을 일구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고 귀띔해주었고, 나는 그에게 한국에서 펀드를 만들어올 테니 소박하게나마 리조트 사업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한국에 있는 몇 명의 지인들에게 의사를 타진한 결과, 대개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와 나는 꿈에 부풀었다. 나는 구좌당 5천만 원씩의 펀드를 모집해 5억 원 정도 규모로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다. 인건비가 워낙 싸고 건축비가 저렴해 부지만 있다면 그 정도 규모로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바누아투의 한인 동업자도 내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원주민들과의 관계가 좋았던 그는 그들이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10만 평 규모의 바닷가 땅을 제공 받는 대가로 리조트 수익을 나누는 딜을 막 추진하고 있었다. 나는 아티스트 빌리지를 조성할 꿈을 꾸었다. 거기서 디지털 노마드의 천국을 만들자는 야심을 구체화시켰다.



펀드를 모집해야 하는 나로선 바누아투 현지답사와 사전 조사 작업이 필요했다. 펀드를 현실화시키기 위해선 현지 상황에 대한 면밀한 사전 검토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다. 2월 28일, 바로 그 작업을 위한 첫 방문길에 오른 날 불운이 시작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브리즈번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바누아투행 비행기가 대기 중인 게이트에 당도해 환승 티켓을 받기 위해 여권을 내미니 항공사 직원이 어딘가로 통화를 한참 한 뒤 내게 당혹스러운 소식을 전했다. "한국에서 오신 건가요? 한국인은 바누아투 입국이 불허되었습니다. 몇 시간 전에 결정되었습니다." 신천지 사태 이후 한국인의 입국을 막은 바누아투 정부의 결정이 하필, 내가 비행기를 타고 오고 있는 시간에 이뤄진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한참을 게이트 앞에서 서성거렸다. 그러나 바누아투로 들어갈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다. 불운의 서막이 올랐다.





_ written by 영화평론가 최광희 / @twentycenturyboy


[20세기소년 창업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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