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 사랑!

in #stimcity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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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초등학생이 쓴 시를 읽으면 왈칵 눈물이 난다. 뒤늦게 한글을 익힌 할아버지 할머니가 쓴 시를 읽을 때도 그렇다. 그들은 온통 사랑하는 것에 관해 쓰는데 그렇게 쓰여진 글에서는 똥 이야기를 해도 향기롭고 빛이 난다. 열 살배기가 아닌데 열 살배기의 가슴에서 터져 나온 말들을 갖겠다는 것은 욕심이다. 다만 그 빛과 향기를 기억하고, 삶이 글을 배신하는 일만은 피하고 싶다. 내게서 나온 말과 글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을 느끼며 말이다. 물론 글이 삶을 배신하는 일도 되도록 없어야 한다.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수십 년을 말과 글을 휘두르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들은 닳을 대로 닳았다. 이만큼 살았으니 힘이 빠진 말과 글을 대신할 것은 오로지 삶이다. 애초에 말과 글은 삶을 보충 설명하기 위해 있는 것인데 요즘엔 둘의 관계가 완전히 뒤바뀌어 우스꽝스러운 꼴을 보이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그러고 보면 세상엔 온통 삶을 배신하는 글, 글을 배신하는 삶들뿐이다. 그럴싸해 보이는 가치들을 액세서리 삼아 두르고 사랑을 위장하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지! 그 무시무시한 위장술!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은 위선인데, 요즘엔 그런 우스꽝스러운 위선을 접하면 혐오스럽다 못해 좀 애잔해진다. 있는 힘껏 위장했지만, 사람들이 그걸 알면서도 속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단 달콤하니까 삼켜 버리는 걸까? 아니면 귀찮아서 모른 척 넘어가는 걸까? 내가 그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 사랑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을 알아차리고 느끼고 나누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어쩌면 속이는 사람보다 알면서 속아 주는 사람이 더 나쁜지도 모르겠다.

말과 글은 모래성이다. 삶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너무나도 쉽게 무너진다. 그러니까. 글이 삶 전부를 담아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이 쓴 글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있는 힘껏 살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사실 아주 간단한 문제다. 말과 글을 가벼이 여기지 않으면 된다. 쉽게 다루지 않으면 된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면 된다. 그럼 삶으로 증명해야 할 일도 줄어든다.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어려운 글이든 쉬운 글이든 말이다.

이곳에 쏟아진 글들을 좋아했다. 사랑하며 쓴 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과 대화하며 쓴 글, 읽히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 말하기 위해 쓴 글, 그 비명, 탄성, 아우성, 읊조림을 이곳에서는 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사랑으로 서로의 소리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랑이, 이곳에 넘친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무언가를 쏟아내고 있는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사랑했다. 그들의 진짜 삶이 어떤 모양인지 잘 모르면서 사랑에 빠졌지만, 조금씩 다가가 그 모양을 확인하는 중이다. 사랑의 경험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으며, 금방 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쏟아낸 말과 글에, 그 속에서 피어난 사랑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시간과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이 끝까지 그것을 붙들고 있는 한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이해하는 스팀시티는 그 사랑을 이루는 곳이다.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더 이상의 설명은 없다. 사랑, 사랑, 사랑이다. 오로지.

젠젠의 <어쩌다, 크루즈>가 마침내 출간되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었고 뒤늦게 발견된 크고 작은 실수들이 자꾸 내 마음을 괴롭게 하지만, 젠젠이 사랑으로 이 책을 썼기 때문에 그것이 오롯이 전해져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녀의 아름다운 삶을 보충 설명할 이야기들이 춘자를 통해 하나둘 쌓이고 있다는 것이 나를 전율하게 만든다. 그리고 당분간 내가 해야 할 일은 오로지 그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의 아름다운 삶을 보충 설명할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만드는 일.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내어놓는 일.

그러니 당신은 그저 쓰라. 이 세상을 전쟁터로 여기고 싶지는 않지만, 가짜와 위선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당신의 사랑을 품고 태어난 글이, 스팀과 스팀달러가, 그리고 여전히 아리송한 이 애증의 시스템이 결국 우리들의 검과 방패가 되어 줄 것이다.

쓰다 보니 지나치게 비장해졌지만,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까지 전부 진짜의 말이다.




젠젠의 <어쩌다, 크루즈>는 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 인터파크 등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미 수십 번 읽었는데 종이책으로 읽으니까 더 재밌네요. 진짜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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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디라운드님 오랜만이네요!! ㅎㅎ 어쩌다 크루즈!! 내용이 궁금하네요!! 한번 1독해봐야겠습니다~ ㅎㅎ
몸은 건강하시지요!! 하시는일 항상 잘 되시길 바래요!! 레알!! ㅎㅎ

우왕 느낌표들과 ‘레알’에서 해피베리보이님 진심이 느껴져요. 고맙습니다! :-)

힘껏 살고, 힘껏 쓰는 삶을 함께 이어가요!

"우리는 쏟아낸 말과 글에, 그 속에서 피어난 사랑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

하. 감탄 중입니다. 훔치고 갑니다. :)

q님의 우주에 먼지처럼 쌓이길! :-)

여왕님이 잠을 몇 시간 못자는 이유를 이제 알았습니다🤍🖤💙

보얀님 덕분에 이 겨울이 더 설레어 져서 오늘 새벽에도 이렇게 깨어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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