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쉽지 않다.
나들이 한 번 나서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집안의 문턱을 넘어 멀리 가본 지가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2024년 2월, 한 달 일정으로 인도네시아로 향했던 길이 기억에 선하다. 자식 걱정 마라던 아버지가 낙상하셨다는 비보에 서둘러 짐을 쌌고, 결국 20여 일 만에 쫓기듯 돌아왔다. 그것이 기나긴 간병의 시작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곁을 지키며 살았던 시간들. 하지만 세월은 야속하게도 붙잡을 틈을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넘어지신 지 15개월 만에 먼저 먼 길을 떠나셨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아버지가 못내 그리워 매일 아리랑만 부르셨다. 그러다 6개월 뒤, 어머니마저 그 아리랑 고개를 넘어 아버지의 뒤를 따라나서셨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7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슬퍼도 괴로워도 무심히 흐르는 게 세월이라더니, 정말 그렇다.
나이 칠십이 넘어 부모를 잃었어도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이 기분은 무엇일까. 천하에 고아가 된 것만 같고, 사실 고아나 다름없다. 그동안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산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부모님이라는 커다란 그늘 밑에서 늘 편하게 응석 부리며 살았던 모양이다.
문득 군대 시절 생각이 스친다.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 바로 위로 2, 3개월 선임들이 줄줄이 있으면 전역하는 날까지 만년 쫄병 노릇을 해야 했다. 군대 운이 없는 친구는 내내 고생만 했고, 운 좋은 친구는 고참 노릇만 하다가 제대하기도 했다. 요즘 젊은이들이야 18개월만 복무하면 다음 해에 째깍 전역 날짜가 찍혀 나온다지만, 35개월을 꽉 채워 군 생활을 하던 우리 때는 달랐다.
그때는 전역을 한두 달 앞두고 ‘특명’이라는 게 내려와야 나갈 날을 알았다. 운이 좋으면 일주일 앞서 나가고, 재수 없으면 하루 차이로 일주일 넘게 군대 밥을 더 먹어야 했다. 그때는 일주일 더 갇혀 있는 게 재수 옴 붙은 일 같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일주일의 기억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 역시 일주일을 더 군대에서 보낸 축이었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다.
오랜만에 나들이를 준비하려니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늘 다니던 길이라면 그냥 문을 열고 나서면 그만일 텐데, 며칠 전부터 조목조목 챙긴 것도 아니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나서려니 예전 같지가 않다. 왜 이리 챙길 게 많고 마음이 무거운지, 참 묘한 기분이다.
그렇다고 아주 멀리 가는 것도 아니다.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듯 몸을 푸는 워밍업으로 제주도에 다녀오기로 했다. 어제 점심때 문득 ‘이대로 집에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어 무작정 편도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저녁 시간대의 제법 저렴한 표가 눈에 띄어 일단 지르고 본 것이다. 돌아오는 표는 끊지 않았다. 가서 하루이틀 묵을지, 열흘을 머물지, 혹은 그 이상이 될지 나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은 제주 땅에 발을 디딘 후에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 가볍게 짐을 싸서 집을 나선다. 가는 길에 중랑센터에서 교육에 참여하고, 오후 3시쯤 공항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명색이 제주도 여행이건만 마음에 설렘이 별로 없다. 엊그제 서산에 스티미언을 만나러 갈 때는 제법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그때는 혼자가 아니어서 그랬을까. 사실 이번에도 센터장과 동행하려 했으나 교육 일정이 겹쳐 결국 무산되었다.
혼자 가는 길, 마음 한구석이 묵직하다. 실은 내일이 결혼 47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결혼기념일에 아내를 두고 혼자 제주도로 떠나는 남편이라니. 남들이 보면 ‘이 노부부가 황혼에 크게 한판 싸웠나’ 하고 수군거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백 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살아오다 보니, 평생 처음으로 결혼기념일에 서로 떨어져 지내는 날도 다 생긴다.
설렘 대신 묵직한 그리움과 서글픔을 배낭에 채워 넣고 공항으로 향한다. 이 무거운 마음도 제주도의 푸른 바람을 맞으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까. 부모님을 떠나보낸 고아의 처량함도, 홀로 맞는 결혼기념일의 미안함도 그곳에 잠시 내려놓고 올 수 있기를 바라본다.
2026/06/09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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