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4 파트리스 루뭄바 탄생 101주년: 어금니 한 개로 돌아온 주권의 무게, 정태현
- '콩고'라는 이름은 보통 콩고공화국을 지칭하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콩고민주공화국(DRC)을 줄여서 부르며, 조금 더 넓은 의미로 원래는 하나였던 콩고 두 나라 모두를 함축한다.
어제 콩고민주공화국과 잉글랜드의 월드컵 32강전을 시청했다. 이미 이변을 만들었던 콩고민주공화국이었으나 강호 잉글랜드를 상대로 1-0으로 앞서나가며 더 큰 이변을 예고하는 듯 했다. 경기 막바지 해리 케인의 놀라운 2점 연속 득점으로 패하기는 했으나 콩고민주공화국은 전후반 모두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며 축구가 원래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사실 경기 내내 축구장보다는 관중석을 주의깊게 살폈다. 화제가 된 '살아있는 동상' 미셸 쿠카 음볼라딩가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알고보니 그는 미국에 의해 비자가 거부당해 잉글랜드전에 참가하지 못했다. 서방은 콩고의 땅속에 묻힌 자원은 거리낌 없이 가져가면서도, 그 땅의 주인인 콩고인들에게는 '이동의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냉혹한 지정학적 위계이자 차별의 본질이다.
축구장 밖의 현실은 더욱 참혹하다. 콩고는 지금도 자원과 권력을 둘러싸고 외세에 의해 내전이 진행 중이다. 동부의 요충지 고마가 르완다의 지원을 받는 M23 반군에 의해 점령당하며 분쟁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수십만 명의 피란민이 발생하고 여성과 아이들이 유린당하는 참사는 광물 자원을 둘러싼 이권 다툼이며 서방의 불법 광물 유통망을 묵인하는 지정학적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대리전이다.
오늘로부터 정확히 101년 전 태어난 파트리스 루뭄바를 다시 소환해야 하는 필연성이 여기에 있다. 그의 비극은 박물관의 박제된 기록이 아니라, 우리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위해 파헤쳐지는 콩고의 지층 속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스포츠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콩고의 피눈물은 사실 아주 오래전, 한 벨기에 국왕의 탐욕에서 시작되었다.
1876년 브뤼셀에서는 '지리 컨퍼런스'라는 기만적인 이름의 모임이 열렸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트 2세는 이 자리에서 아프리카를 "이 거대한 케이크의 한 조각"이라 부르며 사유지로 삼으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후 1884년 베를린 회의를 거쳐 '콩고 자유국'이라는 역설적인 이름의 식민지가 수립되었다. 주인 없는 땅(terra nullius)이라는 서구의 논리가 수천 년을 이어온 콩고의 공동체 질서를 단숨에 파괴했다.
이 시기 콩고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착취의 실험장이었다. 레오폴트 2세의 용병 부대인 '공공군(Force Publique)'은 천연고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콩고인들의 손목을 절단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1903년 어느 날에는 식민지 관리에게 무려 1,308개의 잘린 손목이 보고되기도 했다. 이 참혹한 과정에서 학살당하거나 기아로 사망한 콩고인은 1,000만 명에서 최대 2,1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구는 이 학살을 '문명화'와 '복음 전파'라는 담론으로 포장하며 자원 수탈을 정당화했다. 심지어 벨기에는 독립을 불과 1년 앞둔 1959년까지도 브뤼셀에서 콩고인들을 울타리에 가두어 전시하는 '인간 동물원'을 운영했다. 콩고인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규정했던 이 인종주의적 시각은 오늘날 자원 약탈을 묵인하는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이 지옥 같은 암흑의 시대에 콩고의 자존심을 세우며 등장한 청년이 바로 파트리스 루뭄바였다.
1925년 카사이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루뭄바는 선교 학교를 다니며 스스로의 의식을 깨웠다. 맥주 판매원과 우체국 서기를 거쳐 노조 활동에 투신하며 민중의 고통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1958년, 그는 콩고민족운동(MNC)을 창립하며 본격적인 독립 투쟁의 기치를 올렸다. 같은 해 가나 아크라에서 열린 '범아프리카 인민회의'에서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 운동의 근본적인 목적은 콩고 인민을 식민지 체제로부터 해방시키고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대륙을 불안과 공포, 그 어떤 종류의 식민지 지배로부터도 자유롭고 행복한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공유한다."
루뭄바는 협소한 민족주의에 매몰되지 않았다. 아프리카 전체의 연대를 통해 제국주의에 맞서고자 한 범아프리카주의 전략가였다. 특히 안드레 블로앵(Andrée Blouin)과 같은 여성 운동가와 손잡고 한 달 만에 45,000명의 여성 당원을 조직하는 등, 사회의 가장 소외된 이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세우는데 앞장섰다. 그가 외친 자원 주권과 진정한 해방은 제국주의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이권 구조를 무너뜨리는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1960년 6월 30일, 독립 기념식장에서 루뭄바는 벨기에 국왕 보두앵 1세의 면전에서 80년의 압제를 조목조목 고발하는 연설을 단행한다. "우리는 더 이상 당신들의 원숭이가 아니다"라는 그의 일갈은 제국주의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미국과 벨기에는 즉각 그를 제거하기 위한 공작에 착수했다. 당시 미국이 콩고에 집착한 이유는 명확했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원료인 우라늄이 바로 콩고의 신콜로브웨 광산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승인 아래 CIA는 '프로젝트 위저드'라는 이름으로 루뭄바 암살을 주도했다. 이는 CIA가 해외에서 벌인 최초의 대규모 정치 공작이었다. 공작의 내용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잔인했다. CIA는 나치 과학자의 도움을 받아 루뭄바가 사용하는 치약 튜브에 치명적인 보틀리눔 독을 주입하려 했다. 비록 이 독살 계획은 실패했지만, 그들의 추적은 멈추지 않았다.
1960년 11월, 루뭄바는 가택 연금을 탈출했으나 얼마 못 가 체포되었다. 전 세계는 그가 머리채를 잡힌 채 폭행당하며 트럭에 실려 가는 비참한 사진을 목격해야 했다. 1961년 1월 17일, 루뭄바는 벨기에 용병들에 의해 총살되었다. 제국주의자들은 그의 존재 자체를 지우기 위해 시신을 토막 내 산성 용액에 녹여 용해시켰고, 남은 뼈조차 가루로 만들어 흩뿌렸다. 벨기에 경찰관 제라르 소에테가 전리품으로 훔쳐 간 그의 '금 도금된 어금니' 한 개만이 그가 이 땅에 존재했음을 알리는 유일한 증거가 되었다. 이 어금니는 61년이 지난 2022년에야 비로소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루뭄바 사후 콩고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모부투 세세 세코의 30년 독재가 시작되었다. 씁쓸하게도 이 독재자 모부투는 1980년대 한국의 전두환과 긴밀한 외교 관계를 맺고 서로의 독재 권력을 정당화하는 외교적 성과로 활용했다. 멀게만 느껴지는 콩고의 비극이 우리 현대사의 그늘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루뭄바는 사라졌지만, 그가 지키려 했던 콩고의 지층 아래에는 여전히 24조 달러 가치의 비극이 잠들어 있다.
믿기 힘들겠지만 오늘날 콩고는 4차 산업혁명의 시작점이다. 전 세계 코발트 생산량의 71%, 콜탄의 35%가 이 땅에서 나온다.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전기차 배터리는 콩고의 희생 없이는 결코 성립될 수 없다. 서방이 부르짖는 '녹색 에너지'와 '에코'라는 단어는 사실 남반구의 노동력 착취와 환경 파괴를 전제로 한 기만적 표현이다.
코발트 광산에는 8세 아이들을 포함한 4만 명의 아동 광부들이 '살아있는 지옥' 속에 갇혀 산다. 야닉 칼룸부와 같은 생존자들은 "아이들이 보기에 너무나 처참한 폭력과 강간이 일상적이며, 몇 프랑을 위해 목숨을 잃는 곳"이라고 증언한다. 독성 분진으로 인한 폐질환과 무너지는 갱도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팔아 서구의 청정한 공기를 만든다. 충격적인 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아이폰에 들어가는 광물을 생산하는 콩고 노동자의 착취율은 19세기 영국 직물 노동자보다 무려 25배나 높다.
그리고 자원을 둘러싼 전쟁은 이제 서방과 중국의 새로운 패권 다툼으로 번졌다. 지금 콩고와 르완다 전쟁의 본질적 배경이 이것이다. 중국은 콩고에서 직접 광물을 채굴 및 가공하는 기업들을 운영하면서 아프리카에서 독립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려 하는 상황이다. 반면 미국과 서방은 르완다를 통해 불법적인 광물 유통망을 유지해 중국의 독접적 지배를 방해하려 한다. 콩고는 자본주의 생산 체인의 가장 낮은 곳에 고립되어 폭력이 방치되어 있다.
2002년 세계은행의 권고로 만들어진 콩고 광업법은 외국 기업에만 유리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이에 콩고 정부는 2018년과 2024년,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자치권을 강화하는 법 개정을 시도했다. 전략 광물의 로열티를 인상하고 국가의 몫을 늘리는 방향이었다.
이 과정에서 콩고는 중국과 '자원-인프라 교환' 계약인 시코마인스(Sicomines) 협정을 맺었다. 미국은 즉각 방해 공작을 펼쳤다.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은 직접 킨샤사를 방문하여 계약을 축소하도록 압박했고, IMF는 이를 부채 탕감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2024년 1월에야 갱신된 시코마인스 계약은 70억 달러 규모의 도로 인프라 자금을 확보하고 콩고 국영 광업공사(Gécamines)의 로열티 1.2%를 확보하는 등 진전이 있었으나, 미국은 여전히 '부패 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운 전문가 파견 등 교묘한 감시를 통해 콩고의 자율성을 억제하는 상황이다.
미국이 최근 추진하는 '로비토 회랑(Lobito Corridor)' 프로젝트 역시 콩고를 돕기 위함이 아니라, 중국의 공급망을 차단하기 위한 지정학적 카드일 뿐이다. 강대국들이 콩고라는 바둑판 위에서 이권 다툼을 벌이는 동안, 콩고 인민들은 루뭄바의 유언을 통해 강대국의 원조가 결코 공짜가 아니며 진정한 해방은 자원 주권의 회복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루뭄바 탄생 101주년을 맞는 오늘, 콩고의 활동가들은 그가 못다 이룬 꿈을 다음 8가지 해방의 유형으로 구체화한다.
- 토지: 자본의 상품이 아닌 선조의 가치로 되찾고 식량 주권을 세우는 것.
- 경제 자율성: 국제 금융기구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국 제조업을 육성하는 자립 경제.
- 사회 관계: 상호 존중과 평등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계약의 재구성.
- 국가 정의: 헌법과 민중의 기대에 부응하는 공정한 통치 기구의 확립.
- 존엄성: 콩고인 스스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과 자긍심의 회복.
- 비판적 사고: 아프리카적 지식 체계를 재건하고 과학적 사고를 교육하는 것.
- 애국적 문화: 현지 언어로 된 예술과 스포츠를 통해 공동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
- 시민 공동체: 국내외 어디서든 민주적으로 토론하고 협력하는 공동체 조직.
프란츠 파농은 "콩고의 운명이 우리 모두의 운명이다"라고 말했다. 콩고의 비극을 외면하는 것은 제국주의가 휘두르는 폭력에 묵묵히 동조하는 것과 같다. 루뭄바의 어금니 한 개가 61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사건은 부서진 주권을 하나하나 다시 이어 붙이겠다는 콩고 인민들의 숭고한 의지를 상징한다.
당신은 지금 무엇으로 이 글을 보고 있는가. 그 매끄러운 스마트폰 화면 뒤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피눈물이 묻어 있었을까. 콩고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팔려 나가는 '케이크'가 아니어야 한다. 루뭄바가 꿈꾸었던 '자유롭고 행복한 아프리카'는 바로 우리 주머니 속에 하나씩 가지고 있는 콩고 땅 한 조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