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16 자본주의의 연속이란 점에서 패권적 질서와 다극적 질서의 한계, 서구적 가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해야 할때.

역사는 관점의 전쟁이다. 어떤 관점을 가지는가가 어떤 역사적 경로를 밟아갈 것인가를 결정한다. 지금 한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세상과 역사 그리고 오늘날의 국제정치를 읽어가는 자신 스스로의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수준에서 보아도 과연 소위 패권국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합리적이고 합당하며 인류의 미래를 위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필자는 어제 신자유주의와 다극적 질서의 지평을 넘어서라는 글을 썼다. 여기에서 굳이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쓴 것은, 중국과 러시아가 지향하는 다극적 질서라는 것도 결국 현재 역사적 자본주의의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중러가 추구하는 다극적 질서도 큰 범주에서 보면 서구 자본주의의 변용과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미국 중심의 집단 서방과 중러 중심의 글로벌 사우스의 대립과 갈등이 종국에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국과 러시아의 체제가 사적 유물론의 정-반-합의 합에 해당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었다. 테제가 자본주의라면, 안티테제가 사회주의이고, 신테제는 중러의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아닐까 추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동향을 보면서 필자가 본 그런식의 문제의식은 지나치게 도식적인 사고방식에 불과했다는 자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단순하게 미국의 제국주의 질서가 중러의 다극적 체제로 전환되어 해소될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도 상당수의 진보인사들이 사회주의를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순과 문제 그리고 갈등을 잠재울 수 있는 방안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미 변혁의 주체로서 노동계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계급도 극도로 분화되어 버렸다. 노동계급끼리 서로를 착취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특히나 최근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노동자들의 천문학적 수익은 그들은 더 이상 노동계급이라고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최근 한국의 노동운동이 극도로 위축된 것도 바로 노동계급의 분화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

어떤 변혁도 변혁의 주체가 없으면 달성하기 불가능하다. 더구나 사회주의라는 것도 생산관계의 문제일뿐 자본주의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자본주의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가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파괴적 경향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자기파괴는 여러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크게는 국가와 사회의 기능을 파괴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며, 종국으로는 인간 그 자신의 내면을 파괴한다. 필자는 자본주의의 이런 파괴적 측면은 고스란이 사회주의에도 내재된다고 본다. 자본주의의 자기파괴적 경향의 기저에는 비약적인 생산력 증가와 확대가 바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내면의 자기파괴적 경향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정신적 심리적 상태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를 한마디로 하자면 ‘불안’이 아닌가 한다. 불안에 대해서는 많은 철학자들이 언급한 적이 있다. 키에르케고르이후 사르트르 그리고 정신과학의 프로이트에 이르기까지 불안을 언급했다. 그러나 그들이 직면했던 ‘불안’은 오늘날 대다수의 대중이 겪고 있는 ‘불안’과 그 궤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면의 불안이 아니라 외부에서 강요된 그리고 조건지어진 빠져나가거나 회피할 수 없는 불안인 것이다. 이 문제는 언젠가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해보아야 할 내용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고도로 발전된 생산력을 바탕으로 가능한 체제다. 그렇다면 결국은 사회주의도 자본주의가 지니고 있는 자기파괴적 경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주장하고 추구하고 있는 다극적 질서라는 것도 자본주의의 변용에 불과하며, 오히려 사회주의보다 퇴보한 역사적 경로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가장 심각한 자기파괴적인 결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 자체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기후과학자들이 생태환경의 파괴를 경고한지 한참은 지났다. 인류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다가는 인간종이 멸종할 것이라는 경고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자본주의는 당장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이익을 극대화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고려해보건데 지금과 같은 자기파괴적 행위는 결코 줄어들거나 완화되지 않을 것이다.

중러의 다극적 질서도 이런 점에서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인간이 지금 해야하는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삶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은 자본주의적 역사적 경로에서 벗어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시대담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서구적 방식의 역사발전 경로는 실패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발전 경로를 만들어내야 한다. 서구는 실패했는데 여전히 중국과 러시아는 서구적 역사발전 경로에 서 있다. 필자가 그동안 주장했던 것도 결국은 서구적 역사발전 경로의 연장선상에 있다.

필자는 지정학적 대격변은 기존의 모든 사고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현재 오늘의 모든 역사적 진행경로와 가치를 모두 재검토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인간이 삶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 단순히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삶의 방식을 완전하게 바꾸어야 한다. 결국은 동양적 삶의 방식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유난히 덥다고 한다.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면, 그리고 이익을 포기하지 않으면 인간이 삶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황에 왔다.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자칫잘못하면 종이 멸망하여 모두가 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국제정치적 갈등도 한가한 소리가 아닌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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