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탈환 전투
이 작전에 주공 임무를 띤 제26연대장 서정철 대령은 사단 전차 공격대대를 통합 지휘하여 2월 3일 옥계면 현내리(ES035620)에 전진 집결 완료하자, 제2대대를 피래산(DS882658)으로부터 234고지(DS008676)를 연하는 선까지 진격 배치하고 제2대대는 그 좌익 현하동(DS968652)로부터 755고지(DS931633)를 연하는 선에 진출 배치하였으며, 전차 공격대대는 주변 일대를 수색 경계 중에 있었다.
다음날 제1대대는 절골(DS970680), 주경동(DS923649)선까지 진출, 배치하고, 제2대대는 전날의 위치로부터 수색 전진하였는데, 우군 함포의 위력이 미치는 해안 지대였으므로 적의 저항 없이 425고지(DS967108) 및 209고지(DS979720)를 점령 확보 중이고, 제3대대는 연대 예비대로서 정동진리(ES035703)로 진출 집결하였다.
2월 5일에도 연대는 계속 진격하여 제1대대는 전날의 위치로부터 수색 전진, 연대 제한점인 547고지(DS903692)와 533고지(DS917690)를 점령, 인접 기갑연대와 제휴(提携), 북진을 계속 중 언별리(DS940710)에서 2개 중대의 적과 조우하여 19:30까지 교전하였으나, 결과를 짓지 못하고 언별리 남면 고지에 배치한 채로 적과 대치 상태에 있었다.
과연 강릉 시가에 접근함에 따라 적의 방어 공격도 치열의 도를 가하여 갔으며, 고로 이 적은 필히 증강될 우려가 있었으므로 제1대대 동측방에서 북진 중이던 제2대대를 가둔리(DS950723)와 금광리(DS940730) 일대에 배치함으로써 협적태세(挾敵態勢)를 갖추었다.
이로 인하여 정동진리(正東津里)에 집결 중인 제3대대를 전진시켜 제2대대의 방향 전환에 따르는 전투 정면 확대 지역에 투입하여 운산리(DS948755)~후포(DS966773)선까지 진격 배치하였다.
밤이 새자, 전날 언별리에서 완강히 저항하던 적은 아군의 협격태세(挾擊態勢)가 갖추어졌음을 간파하고 야음을 이용, 북상 퇴각한 것으로 인정되었으므로 제26연대 제1대대는 06:00 공격을 개시하였다.
박월리(博月里)(DS929141), 담산리(淡山里)(DS917141), 석교(石橋)(DS917747) 일대에서 적이 완강히 저항하므로 19:00에 이르도록 치열한 교전을 계속한 후 박월리~학산리(DS904360) 선을 점령 확보하였다.
동 제2대대는 09:00 공격을 개시, 함포의 지원을 얻어 모산(DS919757), 청랑리(DS937772) 일대의 완강한 적과 교전, 15:00 모산 부근까지 돌입하였고, 섬석천(剡石川)을 도하 청랑리 부락 남단까지 도달하였으나, 맹렬한 측방 화력의 저항을 받게 되어 부득이 섬석천을 再도하하여 제1대대의 동측에 연이어 강남에 배치하였다. 동 제3대대는 후포 북면 지역을 계속 확보, 이와 같이 함으로써 제26연대장 서정철 대령은 강릉 시가 돌입에 만반 태세를 갖추었다.
한편, 이미 송계리를 떠나 북진 수색 중의 기갑연대는 2월 3일 목계리(DS878643) 화난봉(花暖峰)(DS817687) 선을 수색 진격 중에 있던 기갑연대 제1대대장 박경호 소령은 산넘어 부락에도 국군이 있다는 주민의 언동을 소홀히 하지 않고, 이는 필시 적 유격부대라 결단하는 동시, 심야에 행동을 개시하여 적설이 깊은 이 지대의 화난봉 동방 유곡 무명고지(DS830640)에서 동상을 치료하며 채온 휴식 중에 있던, 아 후방 침투를 기도하는 적, 길원팔 유격부대의 주력 약 400명을 포착, 미명에 급습하여 이를 섬멸, 그 참모장 이하 거의 전원 사살하는 전과를 거양(擧揚)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