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太山)은 중국 산이 아닙니다,고대 한국인을 지칭하는겁니다.
중국에서 [나라]의 시작은 4천 수백년전 [요임금] 때부터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요임금]은 고대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인 [소전(少典) 부족]의 후손이라 하겠고
여러가지로 보아 대단히 훌륭한 임금이라 봅니다.
당시 한국과 중국에서 [단군왕검]과 [요임금] 두 성군(聖君)이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요임금]의 나라의 영역은 현재의 남한보다 작았다는 것이 중국에서도 정설이라 하겠습니다.
중국에서 [요임금]이 오랜세월 존경받아온 것은 그 나라의 크기가 커서가 아니라
아주 수준 높은 정치로 백성들을 살기 좋게 한 임금이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후에 고조선은 차차 그 영역이 더 넓어짐.
[요(堯)임금]의 후에 동이(東夷: 고대한국)계로 유명한 [순(舜)임금]이 그 뒤를 이었고
그 후에 [우(禹)임금]의 [하(夏)나라]가 4천여년전에 생겼는데
그 때에야 비로소 중국은 [하(夏)나라]라는 독자적인 나라이름을 만들게 되죠.
[순(舜)임금] 때까지는 독자적인 나라이름을 만들지 않아서 나라이름이 없죠.
[하(夏)나라]는 후에 [상(商)나라(은(殷)나라)]로 이어지고 다시
BC 1046년 즉 3천여년전에 [주(周)나라]로 이어지죠.
[하(夏)나라] -> [상(商)나라(은(殷)나라)] -> [주(周)나라]
주(周)나라 (BC 1046∼BC 771) 최대영역 - 녹색부분
위 지도는 지금 중국학계에서 통용되는 주(周)나라의 최대영역도 라 하겠습니다.
중국학계에서 [주(周)나라의 최대영역]을 대략 위 그림 정도로 보고 있다는 거죠.
주나라는 BC (기원전) 1046년 ∼ BC 771년
즉 3천여년전에 시작하여 그 후 2백수십년 존재했던 나라인데
당시 중국의 영역이 최대 저 정도라는 거죠.
물론 위 그림도 주나라의 영역이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세월이 흘러 후대에 중국의 영역이 커지고 강해지면서
마치 중국이 원래부터 컸다는 듯한 선입견들이 지금 사람들에게 많이 심어져있지만
사실은 [주(周)나라 (BC 1046∼BC 771)]의 영역은 부풀려도 위 그림 정도밖에는 안되었고
그 전의 [상(商)나라(은(殷)나라)]의 영역은 이보다 더 작았다는 것이 중국에서도 정설이라 하겠습니다.
단지 현대 사람들의 선입견들이 중국은 원래부터 컸다는 듯한 저기가 있다는 거죠.
[주(周)나라] 이전의 중국은 [상(商)나라( = 은(殷)나라 )] 시대였는데
[은(殷)나라)] 시대는 BC1600년 ~ BC 1046년
즉 약 3천6백년전부터 약 3천년전까지입니다.
고조선과 은나라의 영역
중국의 [은(殷)나라)]시대 즉 약 3천6백년전부터 약 3천년전까지의 시대에
중국의 동해안지역은 고조선의 영역이었습니다.
중국 고전 [산해경(山海經)]에도
중국동해안 지역은 원래 고조선의 영역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해경(山海經) 해내경(海內經)편)
동해(東海)의 안쪽, 북해(北海)의 주변에 나라가 있으니 조선(朝鮮)이라 한다.
그 사람들은 물가에 살고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 원문 :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 朝鮮天毒 其人水居 偎人愛之 ]
중국 입장에서 황해는 동해(동쪽바다)이고
북해는 발해 즉 황해의 북쪽 바다입니다.
人方(인방) - 동해(東海)의 안쪽 (東海之內)
土方(토방) - 북해(北海)의 주변 (北海之隅)
[석관묘(石棺墓)] 즉 돌로 관을 만든 무덤은 동이족 즉 고대한국인들의 풍습인데
위 영역은 [석관묘]의 영역일 뿐만 아니라
고조선 고유의 검으로 유명한 [비파형동검]의 영역이기도 하죠.
중국 동해안지역이 주(周)나라 (BC 1046∼BC 771) 시대부터 중국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하겠는데
위 그림의 [붉은 원] 지역
즉 [태산(泰山)]인근 지역은 주위가 주나라의 영역이 된 후에도
완강하게 합병을 거부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왜 저 지역 사람들은 주나라와의 합병을 그토록 완강하게 거부했을까요.
흔히 "태산처럼 크다." 하면 '아주 크다'는 뜻으로 쓰이죠.
보통 [태산(泰山)]이라 하면 중국의 '태산'을 가리킨다고들하죠.
[태산(泰山)]은 중국 산동성 태안(泰安)시 옆에 있는 산인데
최고 높이가 1천5백여미터 밖에 안됩니다.
물론 중국 땅에 이보다 높은 산은 수두룩하게 많죠.
그런데 왜 [태산(泰山)]이 예로부터 중국에서 "크다"는 말의 대명사처럼 쓰였을까요.
고대 중국의 성군인 [순(舜)임금]이 중국의 5악(岳) 순회 때 제일 먼저 [태산]에서 천제(天祭)를 지냈다고 전해오고 있고
특히 [진시황] 이후, 중국의 황제라면 당연히 [태산]에서 천제(天祭)를 지내야 한다는 저기가 있죠.
[태산]에서 천제(天祭)를 지내야 진짜 중국황제로 인정받는다는.
그런데
그 수많은 중국의 산 중에서 왜 하필 [태산(泰山)]일까요.
위 그림은 문명전파경로를 아주 대략 그려본 것인데
[소호(少昊)]만이 아니라 [소전(少典)]역시 [태산(泰山)]인근지역으로도 이동하였다는 거지요.
즉 [태산(泰山)]인근지역은 [소호(少昊)]와 [소전(少典)]이 만나서
"진정한 중국고대문명이 시작된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그래서 [순(舜)임금]이 중국의 5악(岳) 순회 때 제일 먼저 태산에서 천제(天祭)를 지냈고
후대에도 중국의 여러 황제들이 태산에서 천제(天祭)를 지냈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태산(泰山)]의 원래 명칭은 [태산(太山)]이며
언제부터인가 중국에서는 [태(太)]자를 [태(泰)]자로 바꾸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는 [태(太)]자가 [고대한국인]을 뜻한다는 사실이 그 형태상으로도 너무나 뚜렷이 드러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태산(泰山)]의 경우도 그와 같은 경우라 하겠습니다.
물론 [태(太)]와 [태(泰)]는 둘 다 [ 클 태]로 읽고 그 의미도 같이 쓰이죠.
같은 글자라는 얘기죠.
이 두 글자는 같은 글자이기 때문에
외국의 고대한자 연구자들도 [태(太)]와 [태(泰)]의 고대한자를 나누지 않고 한꺼번에 모아서 소개합니다.
그들도 이 두 글자를 완전히 같은 글자로 취급하는 거죠.
[태(太) = 태(泰)] - 전서(篆書)
[출처 - http://www.internationalscientific.org/CharacterASP/]
위 사이트에서도 [태(太)]와 [태(泰)]를 완전히 같은 글자로 취급하여
[태(太)]를 검색하면 내용이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태(泰)] 검색에다가 모든 내용을 모아놨습니다.
원래는 [태(泰)]보다는 [태(太)]에다가 내용을 모아놓는 것이 맞겠지만
가능한 웬만하면 [태(太)]라는 글자 자체를 '금기시'하려는 중국학계의 풍조 때문인지
[태(泰)]자에다 모아놨습니다.
태(太=泰)자의 고대형의 위와 같은 형태는
태(太=泰)자가 大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인데
大 자가 원래 [고대한국인]을 뜻하는 글자라는 것은 지난 글들에서도 다뤘습니다.
태(太=泰) 고대형의 이러한 형태들은 古 자와 상통한다 하겠습니다.
삼국유사에 [단군조선]을 [古조선]이라 했는데
이는 '옛 조선'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고대의 한국을 상징하는 형태 중 하나가 古 입니다.
이러한 형태들은 [고대한국 3연성 피라미드] 중에서도 중심 2개의 천제단(피라미드)
즉 [천(天)의 단(壇)]과 [지(地)의 단(壇)]을 간략하게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글자들이라 하겠습니다.
[ 고대한국 3연성 천제단(피라미드) ]
천(天)의 단(壇) 지(地)의 단(壇) 인(人)의 단(壇)
고대한국의 중심지에는 [천지인(天地人)]을 상징화한 [ 3연성 천제단(피라미드) ]이 있었으며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사실은 단군사화(史話))에 나오는 [신단수(神壇樹)]의 [신단(神壇)]도 바로 그러한 한국 고유의 천제단(天祭壇)을 의미하는 것이고
[신단(神壇)]은 다른 말로 [신시(神市)]이고
[신단(神壇)] = [신시(神市)]
[신시(神市)]는 원래는 [환웅임금]의 [신단(神壇)]을 뜻하는 말인데
이 [신시(神市)]라는 말이 차차 [환웅임금]의 도읍지(중심지, 수도)를 뜻하는 말로 그 뜻하는 영역이 확대되었다 하겠습니다.
이 형태는 고대한국 중심 3개의 천제단 을 모두 표현한 형태라 하겠습니다.
이는 [ 3연성 천제단(피라미드) ]이 大 즉 [고대한국인]의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산에서 자생하면 산삼(山蔘)이고
사람이 기르면 인삼(人蔘)인 식물이 있죠.
원래 이름은 삼(蔘)
삼(蔘)은 삼(參)의 풀이라는 얘기인데
삼(參)은 3을 뜻하죠.
다들 아시듯이 삼삼, 인삼 즉 삼(蔘)은 한국이 원산지이고
따라서 삼(參)의 풀이라는 것은 [한국의 풀]이라는 얘기이고
삼(參)이라는 글자는 고대의 한국을 뜻하는 글자 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삼(參)이라는 글자는 3 의 뜻이 있고
또한 오리온 3연성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참조 : 한자사전) http://dic.daum.net/word/view.do?wordid=hhw000000908&q=%EF%A5%AB
예로부터 한국과 중국에서 오리온 3연성 은 삼수(參宿) 또는 삼태성(三太星)이라 불려왔습니다.
삼(蔘)과 태(太)가 한국을 뜻하는 글자들이니
오리온 3연성이 삼수(參宿) 또는 삼태성(三太星)이라 불려온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겠죠.
위 문양은 한국 전통문양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라 하겠는데
이 문양 역시 3개의 태극(太極)을 상징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구한말에 고종임금이 한국이 황제국이라 선포하고
한국의 근원적인 요소들을 찾아서 썼는데
태극기를 국기로 한 것도 그래서라 하겠습니다.
태극(太極)
세간에 흔히 말하기를 태극(太極)의 개념이 약 3천년전 중국 주나라 문왕(文王) 때 나온 주역(周易)에 기원한다 하나
그 이전인 5천년전에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의 희역(羲易)이 이미 있었으며
희역(羲易)과 주역(周易)이 모두 바뀔 역(易) 즉 세상 변화, 발전의 근본원리를 발견하여 표현한 것이고
[복희씨(伏羲氏)]가 예로부터 중국에서도 고대의 성인(聖人)으로 추앙되어왔고
[동방(東方)의 성인(聖人)]으로 존경을 받아왔는데
[복희씨(伏羲氏)]가 중국땅에서 살았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위 그림은 유명한 [복희여와도] 인데 [복희씨(伏羲氏)]와 [여와]라는 인물을 그린 그림이죠.
위에서 몸을 뱀모양으로 그린 것은 뱀을 그리려한 것이 아니라 태극(太極)을 형상화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3천년전 [주문왕]의 [주역]도 그렇지만 그 이전의 [역(易)]인 5천년전 [복희씨(伏羲氏)]의 [희역]도 그 근본이
[태극(太極)사상] 즉 [음양사상]이고
[복희씨(伏羲氏)]의 몸을 태극(太極)모양으로 그린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뱀을 그린 것이 아니라 태극(太極)을 그린 것이죠.
태극(太極)을 태극(太極)이라 부르는 이유는 태(太)의 사상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예로부터 [복희씨(伏羲氏)]를 [태호 복희씨(太昊 伏羲氏)]라 하는 이유는 [복희씨]가 태(太)의 인물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죠.
태(太)의 인물이 태(太)의 사상을 세상에 펼쳤는데 그 근본을 형상화하면 태극(太極) 문양.
고조선 최고의 상징검인 [비파형동검]의 상징 중 하나가 이처럼 [태극]모양입니다.
왼쪽에 2개, 오른쪽에 2개 해서 모두 4개의 [태극]모양이 있는 것이 [비파형동검]이고 이는 "진리가 4방으로 퍼진다."는
즉 " 진리를 온세상에 전하라." 는 의미가 있다 할 수 있겠죠.
예로부터 중국인들이 [복희씨(伏羲氏)]를 그토록 존경하여 [3황5제]의 제1인물로 꼽았지만 그에 비해 자신들이 [동방(東方)의 신적인 존재인 복희씨(伏羲氏)]의 후손이라 주장은 별로 못하고
염황지손(炎黃之孫) 즉 염제(炎帝)와 황제(黃帝)의 후손이라는 용어만 주로 쓰는 것을 보면 [복희씨(伏羲氏)]는 중국 땅에 간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복희씨(伏羲氏)]가 황하(黃河)에서 하도(河圖)라는 그림을 얻어서 이를 바탕으로 희역(羲易)을 만들었다 전해지니
[복희씨]가 중국의 인물이 아니냐 할 수 있지만 [복희씨]는 5천년전 인물이고 당시의 황하는 지금의 황하가 아니라 하겠습니다.
흔히들 말하듯이 중국의 [황하문명]은 4천수백년전 시작된 문명인데 [복희씨]는 그보다 수백년전인 5천년전 인물입니다.
[황하(黃河)]라는 말은 원래 [누런 강]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문명의 중심지에 있는 강]을 뜻하는 말인데
[ 황(黃) - 금문(金文) ]
위처럼 황(黃)이라는 말은 어떤 사람들(고대의 지도자)를 뜻하는 말인데 大의 형상이며 (고대한국인의 형상이며)
[ 조(朝) - 금문(金文) ]
위 글자는 고조선을 뚯하는 조(朝)의 고대형이고 황(黃)이라는 사람들의 상징인
이러한 형태는 곧 고조선인을 뜻하는 형태입니다.
위에 나온 황(黃)의 고대형 중 하나인 이 형태에서 市 (시) 의 형상이 있는데
이는 [환웅(桓雄)임금]과 신시(神市) 즉 신단(神壇) 즉 천제단(天祭壇)을 그린 것이라 하겠습니다.
한자(한문)가 원래 중국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고대한국에서 쓰던 것을 중국이 배워간 것임은 예로부터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겠고 요새는 공식적으로도 한자가 원래 동이족 즉 고대한국인들이 처음 만들어쓰던 것임을 중국 유력학자들도 학술회에서 발표하는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위 [복희여와도]를 보면 아래와 같은 부분이 있죠.
위 모습은 일제의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 형상이죠.이미 5천년 전 [복희씨]의 상징이 바로 이러한 형상이었는데
욱일승천(旭日昇天)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태양(해)의 빛이 온세상을 비춘다."는 모양이죠.
[ 조(朝) - 금문(金文) ]
위는 (고)조선(朝鮮)의 [조(朝)]의 고대한자(금문)인데 원래 [조(朝)]자는 (고)조선(朝鮮)을 표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글자이고 원래 한국은 [해뜨는 땅]으로 상징되었기 때문에 차차 이 글자가 [아침]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는데
위는 [조(朝)]의 고대한자에서도 나오듯이
이러한 형태는 고조선의 상징 중 하나이고 진리(ㅇ)의 빛이 4방 (온세상)으로 퍼져라는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한국 고유의 놀이인 윷놀이의 [윷판]도 위와 같은 모습이죠.
욱일승천(旭日昇天)이란 원래는 남을 침략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앞선 정신문명, 물질문명을 온세상에 전파해서 세계 사람들을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든다는 숭고한 뜻인데 근세에 일제가 이 뜻을 왜곡하여 모양만 베껴 그려서 그 깃발을 앞세우고 저기한 일이 있다 하겠습니다.
일제의 그것은 일종의 '짝퉁'이었다 할 수 있겠죠. 그 원래의 의미가 너무나도 변질된.
일본에서 고대문명이 시작된 것은 2천수백년전 '야요이문명'이라는 것이 처음인데 이는 한국보다 수천년 이상 늦은 것으로 일본원주민들은 내내 원시(석기)시대로 지내다가 2천수백년전에야 일부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최초의 벼농사와 금속문명'을 세우게 되고 그 후 계속해서 한국의 선진문명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을 발전시키고 서기 6~7세기 경이 되어서야 일본 최초의 통일국가라 할 '야마토'가 이룩되고 서기 7세기에 백제가 나라문을 닫은 후에야 일본이 한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최초로 독립국가가 되었다 하겠습니다.
원래 한국의 '별칭' 중 하나였던 '일본'이라는 이름도 재팬이 그 때부터 그들의 이름으로 쓰기 시작했죠.
욱일승천(旭日昇天)이란 개념도 한국 고유의 것을 베껴서 사용한 것인데 원래의 욱일승천(旭日昇天)은 홍익인간의 정신에 입각해서 세상을 (정신+물질)문명화시키는 것인데 근세 일제가 이를 침략의 상징으로 (원래의 뜻을 왜곡해서) 잘못 내세운 것이고,
욱일(旭日)이란 말의 욱(旭)이 九 + 日 인데 九 즉 9는 고대한국의 상징 중 하나여서 고대한국을 나타내는 말인 동이(東夷)를 다른 말로 구이(九夷) 또는 구리(九黎)라고도 하죠.
다시 태(太)자로 돌아가서
태평(太平)하다는 말은 아주 평안하다는 말이죠.
태평천국(太平天國) 태평성대(太平聖代) 그런데 태평(太平)이란 말의 유래는?
중국 최고의 한자사전이라는 [설문해자]는 [ 이(夷)는 평(平)이다. ]고 하고 있습니다.
[이(夷) = 평(平)]이라는 얘기이고
[이(夷)] 즉 고대한국인들을 다른 말로는 [평(平)]이라 할 수 있다는 얘기죠.
『삼국사기』에 "평양(平壤)은 본래 선인왕검(단군왕검)의 집이다. (平壤者 本仙人王儉之宅也 )" 라는 말이 나오듯이
평양(平壤)이라는 말이 원래는 도시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선인왕검의 집(仙人王儉之宅) 즉 단군임금의 집(宅)이고
여기서 집(宅)이란 '주거지'가 아니라 신전(神殿)이며
즉
단(壇)이라 하겠습니다.
단군(壇君)임금의 단(壇) 즉 신단(神壇)을 다른 말로 평(平)이라하며 이 신단(神壇)을 고유 한국어로는 [아사달]이라 한다 하겠습니다.
압록강유역 [장군총] 부근에 [태왕릉]이라는 피라미드가 있는데 지금은 고구려 때 것으로 오인되고 있지만 사실은 고대한국 때 이미 만들어진 것이며 이러한 피라미드는 대동강 유역에도 있어서 근래 북한에서 [단군릉]이라는 이름으로 재건한 바 있으며 이러한 신단(神壇)을 고유 한국어로는 [아사달]이라 부르며 한자로는 평(平) 또는 안(安)이라 부르며
그래서 대동강과 압록강이 있는 지역을 평안도(平安道) 라 부르게 되었다 하겠습니다.
태묘(太廟)
태왕릉 복원도 - (복원전문가 박진호씨 그림)
예로부터 한국과 중국의 임금들의 묘(廟)를 태묘(太廟)라 하는데 위와같은 천제단(피라미드)이 태묘(太廟)의 원형이라 하겠으며
태묘(太廟)라는 말에서 태(太) 자를 쓰는 이유는 태산(太山)을 태산(太山)이라 부르는 것과 같을 것인데
묘(廟)라는 글자에 고조선을 뜻하는 조(朝)가 들어가 있고
广
이 글자는 [집 엄, 마룻대 엄]이라는 글자인데 [마룻대]라는 것은 [높은 대(단)]를 뜻하는 것이니 묘(廟)라는 글자는 원래 고조선의 천제단을 뜻하는 글자라 하겠습니다.
태고(太古)
중국에서도 아주 오랜 옛날을 태고(太古)라 말하는 것도 오랜 옛날 태(太) 즉 고대한국인들이 중국땅에 문명을 전하러 온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태초(太初)
중국에서도 아주 오랜 옛날을 태초(太初)라 하는 것도 그와같은 이유에서라 하겠으며
태조(太祖)
중국에서도 왕조의 건국자(시조)를 태조(太祖)라 하는 것도 그와같은 이유에서라 하겠습니다.
태백(太白)
삼국유사에 [환웅임금]이 삼위태백(三危太伯)으로 또한 태백산(太白山)으로 강림했다 하는데 태백(太白)이란 원래 [한민족의 중심지]를 뜻하는 말이고 태백산(太白山)의 산(山)이란 자연 산(마운틴)이 아니라 원래는 [고대한국 3연성 천제단(피라미드)를 뜻하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Resteemed your article. This article was resteemed because you are part of the New Steemians project. You can learn more about it here: https://steemit.com/introduceyourself/@gaman/new-steemians-project-launch
?? 뭐지요
!!! 힘찬 하루 보내요!
감사합니다..좋은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