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黃帝)는 원래 고대한국의 임금을 뜻하는 말

in #kr-history8 years ago

안녕하세요. 역사 지킴이 @actor0801 입니다. 오늘은 고대 한자 이야기를 할려고 합니다.재밋게 읽어주세요^^

[ 조(朝) - 금문(金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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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www.internationalscientific.org/CharacterASP/]

위는 (고)조선(朝鮮)의 [조(朝)]의 고대한자의 주요형태인데 [조(朝)]라는 글자는 원래는 [아침]이라는 뜻에 앞서서 [(고)조선(朝鮮)]을 뜻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고)조선(朝鮮)]이 해뜨는 동방(東方)에 존재하기 때문에 [조(朝)]라는 글자가 차차 [아침]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된 거죠.

위처럼 [조(朝)]자는 원래 고조선의 상징인 十 , o , ~ (태극) , 山 등을 표현한 글자라 하겠습니다.

[ 牛(우) - 금문(金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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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형태는 소 우자 牛의 금문(金文)인데 우리 한국사람들 예로부터 소를 참 좋아하고 중요시하죠.
농가에서 소를 식구처럼 키워왔고요.

[ 조(朝) - 금문(金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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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조(朝)자를 분석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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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러한 모양이 들어있죠.원을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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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양이 나오죠.이 형태를 아래 牛(우)자와 비교해 보세요.

[ 牛(우) - 금문(金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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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형태가 같은 형태이죠.

[ 豊(풍) - 금문(金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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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위에서 지도자가 하늘에 천제를 지내는 모습으로 보이는 풍년 풍자 豊 의 위와 같은 고대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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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형태를 분석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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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부분들이 고인돌 위 지도자를 형상화한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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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형태가 들어있죠.지도자의 형상이 위와 같이 표현된 거죠.
고인돌은 명실상부한 고대 한국의 상징이고 따라서 위 형태는 고대한국을 표현한 글자 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豊(풍)과 관련된 글자 하나 보자면

위 예절 예자에서 왼쪽에 示 가 있고 오른쪽에 豊(풍)이 있죠. 원래 示 형태는 [단정한 옷(의복)을 입고 예의를 갖추는 사람]의 형태인데 示 를 [보일 시]라 하는 것은 [하늘(天)과 선조 앞에 자신을 보인다.]는 뜻이라 하겠습니다.지금도 우리 한국에 [위사람을 뵙다.]는 표현이 있죠.

따라서 禮 라는 글자는
[ 고인돌에서 지도자가 하늘(天)에 천제(天祭)를 지내고 그 앞에서 사람들이 하늘에 예의를 갖추는] 형상이라 하겠고 고인돌이 한국 고유의 문화이니 이 글자도 한국에 대한 글자일 수 밖에 없고

중국인들이 아주 고대부터 중국에 전해지는 훌륭한 글들을 모아서 책을 만들고 그 책의 이름을 [예기(禮記)] 라 했는데
( [대학]과 [중용]도 원래 [예기]의 일부분.)

이는 禮 라는 글자가 아주 고대의 모습 (고인돌에서 행해지는 천제에 대한 모습)이기 때문이라 하겠고
중국의 고대문명이 고대한국에서 전파된 것이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중국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유명한 [산해경(山海經)]의 대황동경(大荒東經)편에 다음과 같은 귀절이 있습니다.

동해(황해)의 바깥( 즉 한반도-만주)에 대인(大人)의 나라가 있고 거기에 대인(大人)의 시(市)가 있는데 이를 대인(大人)의 당(堂)이라 하며 [준(踆)]이라는 대인이 그 곳의 지도자다.

[ 원문 - 東海之外 有大人之國 有大人之市 名曰大人之堂 有一大人踆其上 ]

위 [산해경] 글과 단군신화(사실은 단군사화(史話))를 비교해 볼때 대인(大人)의 시(市)는 [환웅임금]의 신시(神市)가 연상되고 대인(大人)의 당(堂)은 신단수(神壇樹)의 신단(神壇)이 연상된다 하겠습니다.

위 [산해경] 글에서 " 대인(大人)의 시(市)를 대인(大人)의 당(堂)이라 부른다." 했듯이 시(市)는 원래 당(堂)을 뜻하는 글자이며 신단(神壇)을 뜻한다 하겠습니다.

시(市) = 당(堂) = 단(壇)

고인돌 - 작은 피라미드
피라미드 - 큰 고인돌

[환웅임금]의 신시(神市)란 아래와 같은 피라미드를 말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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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유역에 있는 태왕릉, 장군총 등이 지금은 고구려 때 것으로 오인되고 있으나 사실은 [고대한국의 천제단]이라 하겠습니다.태왕릉과 유사한 피라미드가 만주서부(요하유역 홍산)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것을 중국당국이 [5천년 이상된 피라미드]라 발표도 했죠.

[ 市(시) - 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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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市(시) 라는 글자는 원래 고대한국의 천제단(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최고지도자가 하늘에 기도하는 (또한 사람들에게 교화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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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형태에서 [지도자]의 모습을 분석하면 아래와 같은 모습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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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市(시)의 지도자 요소 ]

위 모습은 아래 모습들과 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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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朝)의 지도자 요소 ] [ 풍(豊)의 지도자 요소 ]

위의 형상들은 모두 아래와 같은 형태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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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그대로 소 우자 牛 의 고대한자입니다.

[ 牛(우) - 금문(金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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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市(시) , 조(朝) , 豊(풍)의 지도자요소와 牛(우) 를 비교해 보면 소 우자 牛 가 소의 형태를 그린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고대한국 지도자]를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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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뉴시스 2009-07-20

위 사진은 중국당국이 1990년대에 새로 만든 [중화 삼조당(三祖堂)]이라는 곳인데 [중화 삼조당(三祖堂)]이란 중국의 대표적 선조 3인을 모셨다는 뜻이며 왼쪽부터 [치우씨(蚩尤氏)] ,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 ,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입니다.원래 고대부터 중국인들은 자신들을 [염황지손(炎黃之孫)]
즉 [염제신농씨]와 [황제헌원씨]의 후손이라고 열심히 주장해왔고[치우씨]는 중국의 건국자인 [황제헌원씨]와 대결을 벌인 동방(東方)의 다른민족 지도자이고 [치우씨]는 중국인들의 혈통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이야기해 왔는데 근래들어 '동북꽁정'을 벌이면서 갑자기 수천년간 '중국의 적'이라 이야기해왔던 [치우씨]를 중국의 대표 선조 3인을 모셨다는 [중화 삼조당(三祖堂)]이라는 곳에 모신 겁니다.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진 거죠.

이는 유적유물발굴이 계속될수록 [고대한국]의 문명이 전해져서 [고대중국]의 문명이 생겼다는 사실이 자꾸드러나므로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겠죠. '동북꽁정'의 일환으로.

[황제헌원씨]와 [염제신농씨]도 원래 고대한국인의 후손이지만 중국땅에서 활동한 인물들이라 오래전부터 중국인들이 그들의 선조로 모셔온 것인데 [치우씨]는 약 4천 7백년전에 [황제헌원씨]가 '고대한국으로부터 중국땅을 독립시키려한 것을 막으려한'인물이라하여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치우씨]를 '괴물'처럼 묘사해왔는데 근래 갑자기 [중화 삼조당(三祖堂)]이라는 곳에 [치우씨]도 모시는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진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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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중화 삼조당(三祖堂)]이라는 곳에서 [황제헌원씨]와 [염제신농씨]와는 달리 [치우씨]는 머리에 뿔이 있는 모습입니다.

이 뿔은 사실은 '괴물의 뿔'이 아니라 원래는 투구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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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대조영] 중에서

위 모습은 고구려 부활을 위해서 사투를 벌이는 고구려장수를 그린 드라마인데 [치우씨]처럼 머리(투구)에 뿔을 달았습니다.

[치우씨]는 약 4천7백년전 인물인데 이러한 투구를 쓰고 온 모습을 보고 예로부터 중국인들 사이에 [치우씨는 머리에 뿔이 있다.]는 이야기로 전해내려온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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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한국에서 굳이 투구에 뿔 2개를 단 이유는 단지 무슨 상대방에게 겁을 주려는 게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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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징 형상]을 나타내는거죠.이러한 형태는 우리 한국(韓國)의 한(韓)이라는 글자의 고대형에도 나타납니다.

[ 한(韓) - 금문(金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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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반도에서 발굴된 고조선족의 팽이형 토기와 아사달 모양(네모 안).중국 측은 6300년전∼ 4200년전의 유물로 추정한다.
사진 제공 신용하 교수 -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526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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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달문양

위 토기는 산동반도에서 발굴된 것으로 소호(少昊)문명의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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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캡처 출처 ] 삼족오, 고대 한류를 밝히다 - 2부 고대한류, 동방문명을 만들다
[특선 MBC 다큐멘터리] 2008-03-24

(위에서 '최초'라는 것은 중국당국이 발표한 것 중 최초라는 얘기이고 압록강유역에는 저보다 더 오래된 유물유적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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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만주서부(요하유역)의 [소전(少典)]문명 유물인데 산동반도 [소호(少昊)]문명의 것과 똑같은 [아사달문양]이 보입니다.
[소호(少昊)]문명과 [소전(少典)]문명이 하나의 [뿌리(근본)문명]에서 나온 것이라는 수많은 근거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이 [아사달문양]은 한자 중에서는 山 의 형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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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형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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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투구는 곧 [아사달문양] 형상의 투구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예로부터 중국에서 고대한국의 인물로 유명한 [치우씨]가 이러한 [아사달문양] 형상의 투구를 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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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사달문양의 꼭대기 o 은 태양을 뜻하고 진리를 뜻한다 할 것이며 아래 山 형상은 천지인(天地人)을 뜻하며 [고대한국 3연성 천제단(피라미드)]을 뜻한다 하겠습니다.

삼국유사 단군신화(사실은 단군사화(史話))에
" 단군(壇君)이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후에 다시 아사달로 돌아와서 산신(山神)이 되었다."
( 원문 : 壇君乃移於 藏唐亰 後還隠於 阿斯逹 爲山神 )
하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의 산신(山神)은 자연의 산(마운틴)의 신(神)을 뜻하는 존칭이 아니라 [고대한국 3연성 천제단(피라미드)]의 신(神)을 뜻하는 존칭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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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형태들은 아래 형상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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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생자 生(생)의 원래 형상이 왜 한국을 상징하는 형상인가 하는 이유는 중국의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글귀가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 서문

[東方曰夷] 夷者, 柢也, 言仁而好生, 萬物地而出

故天性柔順, 易以道御, 至有君子不死之國焉.

故孔子欲居九夷也.

[풀이]

동방(東方)을 "이(夷)"라 한다.

동이(東夷)는 뿌리(柢 - 근본)다.

동이(東夷)사람들의 어질고 생명을 살리기를 좋아하는 것이 (仁而好生)

마치 만물이 대지에서 태어나는 것과 같다.(萬物地而出)
그러한 까닭에 천성이 훌륭하여 도덕(道德)이 펼쳐지기 쉬워
(동이(東夷)에)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 :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도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공자는 동이(東夷)에 가서 살고 싶어했다. (故孔子欲居九夷)
동북꽁정은 근래 시작된 것이 아니라 3,000년 이상 전부터 계속되어왔고 고대의 한국에 대한 중국의 좋은 기록들이 숱하게 삭제, 왜곡되어 왔다 하겠는데 다 없어지지는 않고 어느 정도 살아있는 기록들 중 하나가 중국 정사 중 하나라 하는 후한서(後漢書)의 동이열전(東夷列傳) 서문이라 하겠는데

동이(東夷)는 뿌리(柢 - 근본)다.
동이(東夷)사람들의 어질고 생명을 살리기를 좋아하는 것이 (仁而好生)
마치 만물이 대지에서 태어나는 것과 같다.(萬物地而出)

위에서

동이(東夷) 즉 고대의 한국을 뿌리(柢 - 근본)라 하고있고 고대한국인들의 어질고 생명을 살리기를 좋아하는 (仁而好生) 정신 즉 호생(好生)의 덕(德)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날 생자 生(생)의 고대형태가 한국을 상징하는 형태로 그려진 것이 즉 한국을 상징하는 형태가 [살다, 살리다]라는 뜻으로 쓰여지는 것이
다 그 이유가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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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생자 生의 이러한 형상들은 고대부터 한국의 상징이었던 [태극(太極)]의 형상을 보여주려 한 것으로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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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고유 상징인 [비파형 동검]에는 위에서 보이듯이 4개의 [태극(太極) 문양]이 들어있고 ( 좌우 2개씩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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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생자 生의 위와같은 형상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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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비파형 동검]의 아래부분의 형상과 상통한다 하겠습니다.山 의 형상인 동시에 [태극(太極)]형상을 보여주려 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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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생자 生의 위와같은 형상들은 흙 토자 土 자의 형상과 상통한다 하겠습니다.

土(토) - 금문(金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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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土(토) 고대형의 중요 형상 중 하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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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에서는 한국을 [토방(土方)]이라고도 불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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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옥정리 선돌 (楊州玉井里선돌)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9호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고인돌과 선돌은 고대한국의 상징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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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같이 선돌에 끈 등을 두른 형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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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식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합니다.

[ 牛(우) - 갑골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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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3천여년전에 은나라 사람들이 쓴 갑골문에 나오는 牛(우)자들 입니다.

오래전부터 중국인학자들 중에도 한자가 원래 동이(東夷)족 즉 고대한국인들의 글자를 중국이 배워다 쓰는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동북꽁정이 상당히 진척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요새는 아예 공공연하게 중국의 유명학자들이 한자가 원래 동이(東夷)족의 문자 라고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그것이 언론에도 나왔었죠.

위의 牛(우)의 갑골문자들을 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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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大 의 형상으로 쓰여진 형태도 있는데 대개 위의 大 형태가 가꾸로 돌려져서 [소의 머리] 형상으로 쓰여진 (그려진) 것들인데 나머지 것들을 거꾸로 돌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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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大 의형상이 나옵니다.

즉 은나라 갑골문의 牛(우)는 소뿔(소머리)를 그리는 동시에 大 를 그리고자 한 것으로 보이며 大 라는 사람들의 상징이 [소]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인들이 예로부터 말하기를 [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 ]는 " 소의 머리 에 사람의 몸"이라 하는데 [ 신농씨(神農氏) ]도 [치우씨(蚩尤氏)]처럼 머리에 山 형상의 투구 를 썼고 소를 상징동물로 하는 민족 즉 고대한국계 인물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 태호(太昊) 복희씨(伏羲氏) ]

중국인들이 그들이 고대부터 제일 받들어모시는 3황(三皇) 중에서도 제1 인물이 5천년전 인물인 [ 태호(太昊) 복희씨(伏羲氏) ]인데 위에서 언급한 [중화 삼조당(三祖堂)]이라는 곳에 중국당국이 [ 태호(太昊) 복희씨(伏羲氏) ]를 모시지 않은 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중국인들의 [복희씨(伏羲氏)]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심]을 생각하면 너무 이상한 일이죠. 사실은 [복희씨(伏羲氏)]가 예로부터 중국에서 동방(東方)의 성인으로 가히 절대적인 추앙을 받아왔는데
[복희씨(伏羲氏)]가 중국땅에서 살았다는 근거가 없어서 중국땅에서 태어났거나 살았다는 근거가 없어서 중국당국이 [중화 삼조당(三祖堂)]이라는 곳에 [복희씨(伏羲氏)]를 모시지 않은 것이죠.

희생(犧牲)
지금도 예를들어 "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희생(犧牲)시키지마라."
" 그 사람은 조국과 인류를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犧牲)한 훌륭한 사람이다."는 등
[희생(犧牲)]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죠.

[희생(犧牲)]이라는 말은 원래는 고대에 하늘에 천제(天祭)를 지낼 때 가축(동물)을 잡아서 제사음식으로 썼던 것을 말하는 것이죠.특히 소를 썼죠.

희생(犧牲)

이처럼 희(犧) 와 생(牲) 이 모두 좌변에 소 우자 牛이 들어있는 것을 보아도 고대의 한국과 중국에서 천제(天祭)의 주요 제물(제사음식)로 소(牛)를 많이 썼던 것으로 보이며

[ 牛(우) - 금문(金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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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이러한 牛(우)자의 고대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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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고대한국의 상징형태와 같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하겠습니다.

[ 조(朝) - 금문(金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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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조(朝)의 고대형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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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형태가 나오는데 한국 고유의 놀이에 [윷놀이]라는 게 있고 위 형태는 [윷판]의 형태죠.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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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면 위의 두 형태는 근원적으로 상통하는 형태죠.

[복희씨(伏羲氏)]의 희(羲)자에 소 우자 牛를 붙인 것이 희생(犧牲)의 희(犧)죠.

犧 = 牛 + 羲

이는 5천년전 인물인 [복희씨(伏羲氏)]도 고대 천제(天祭) 풍습의 주요인물이라는 얘기일 것이고 [복희씨(伏羲氏)]가 황하(黃河)에서 하도(河圖)라는 그림을 얻어서 이를 바탕으로 희역(羲易)을 만들었는데

( 희역(羲易) 은 주문왕이 발견한 주역(周易) 이전의 역(易)으로 주역 이전의 2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희역(羲易)이 쓰였죠.)

' 황하(黃河)가 중국에 있는 강이니 [복희씨(伏羲氏)]가 중국에 살았다는 얘기 아니냐' 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런데 원래의 황하(黃河)는 지금의 황하가 아니라 하겠습니다.

[ 황(黃) - 금문(金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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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처럼 황(黃)이라는 말은 원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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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양을 상징으로 하는 어떤 사람들을 뜻한다 하겠는데

[ 조(朝) - 금문(金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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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조(朝)의 고대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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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부분은 황(黃) 고대형과 유사하다 할 수 있겠죠.그리고

[ 東(동) - 금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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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처럼 동녘 동자 東 과 황(黃)자의 고대형도 유사하죠.

황(黃)과 (고)조선을 뜻하는 조(朝) 와 동방(東方)을 뜻하는 동(東)이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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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양을 상징으로 하는 어떤 사람들을 뜻한다 하겠는데 이사람들이 동방(東方)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동(東)이라는 글자가 [동쪽]을 뜻하는 글자로 쓰이게 되었다 하겠습니다.

약 4천7백년전 인물인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는 [헌원씨(軒轅氏)]라는 인물이 중국의 독립을 시작시켰기 때문에 중국사람들이 존경하여 [황제(黃帝)]라는 존칭을 헌상한 것인데

사마천의 사기에 [黃帝者(황제자) 少典之子(소전지자)]

즉 "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는 소전(少典)의 자손이다." 하였고

요새는 중국학자들까지 (동북꽁정이 어느정도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공공연하게 소전(少典)부족 에 대해서 " 만주에서 온 황제족(黃帝族)" 이라는 표현을 쓰는 등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도 고대한국에서 건너간 인물(또는 그 후손)이라 하겠는데

이는 [헌원씨(軒轅氏)]가 고대한국계 인물이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동방(東方)의 지도자에게 붙이는 존칭인 [황제(黃帝)]라는 존칭을 헌상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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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나온 황(黃) 의 고대형 중 하나인 이 형태에서 市 (시) 의 형상이 있죠.

[환웅(桓雄)임금]의 신시(神市)이야기가 있듯이 시(市)는 원래 천제단(天祭壇)을 말하는 것인데 고조선의 임금을 단군(壇君)으로 존칭하듯이 신단(神壇) 즉 단(壇)은 고대한국의 중심이며 그 [중심]에 관련된 사람이 황(黃)이라는 얘기입니다.

고대한국의 중심 신단(神壇) 즉 [중심 3연성 피라미드]는 한강, 대동강, 압록강 등 강(江) 옆에 건설되었고 원래의 황하(黃河)는 지금의 황하가 아니라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가 있고 지도자들인 황(黃)이라는 사람들이 있는 그러한 강(江)들을 뜻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환인(桓因)임금] [환웅(桓雄)임금]의 [환(桓)]이 고대한국의 지도자를 뜻하는 글자이듯이 [황(黃)]이라는 글자 역시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지금의 황하(黃河)가 황하라 불리게 된 것은 후에 중국 문명이 지금의 황하 옆에서 발전하면서 고대한국의 중심강을 황하(黃河)라 하였던 것을 본따서 지금의 황하를 황하라 부르게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4천7백년전 중국인들이 [헌원씨(軒轅氏)]에게 [황제(黃帝)]라는 존칭을 헌상한 것은 물론 [헌원씨(軒轅氏)]가 실제로 아주 훌륭한 인물이었던 이유도 있고 또한 다른 한편으로 원래 세상의 중심임금을 뜻하는 [황제(黃帝)]는 동방의 한국땅 임금을 뜻하는 존칭 중 하나이고 중국은 변방취급 당하는 세상이었는데 이제 [헌원씨(軒轅氏)]라는 훌륭한 인물이 중국 독립의 씨앗을 뿌렸으니 마침 또한 고대한국계 인물인 [헌원씨(軒轅氏)]를 [황제(黃帝)]로 추대하여 (그러한 존칭을 헌상하여) 중국땅에 사는 자신들도 [중심지 사람들]이 되어보고 싶은 염원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가 합니다.

역사적으로 언제부터인가 중국이 거대해지면서 고대사(상고사)를 너무 왜곡하여 마치 중국이 문명의 시작이었다는 듯이 3천년 이상의 오랜세월 동북꽁정이 계속되어왔고 따라서 사람들의 선입견이 고대 중국의 문명이 한국으로 전해졌다는 듯이 너무나 왜곡되어있기 때문에 상고사의 진실을 밝히다 보면 마치 중국을 폄하하는듯이 들리게 되는 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너무나 오랜세월 왜곡시켜 온 사실을 바로잡으려 하다보니 어떤 과도기적인 진통이 아닌가 합니다.사학과 학생들이 처음 동북아史를 배울 때 사마천의 사기나 후한서 등을 '정사(正史)'라 하면서 배울 것인데
사기 등 그러한 책들에 여러 볼만한 내용들도 나오지만 2천여년전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이미 중국에 '자국중심주의'가 대단히 강할 때였고 다른 것은 몰라도 만약 사기에 동이(東夷)족 즉 고대한국에 대한 고대이야기를 사실대로 쓸 경우 스스로 원래부터 세상의 중심이라 하던 '중국의 자부심'이 무참하게 무너졌을 것이니 사마천이 그 이야기를 사실대로 쓸 수도 없었을 것이고 사마천 시대보다 수천년전 이야기를 사마천이 제대로 쓰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원래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제대로 쓰기는 어려운 일이며 사마천 시대에는 '오랜세월 지구기온변화에 의한 바다 높낮이의 변화' 등의 여러 과학적 연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을 것이고 말이죠.

사기나 후한서 등 중국의 '정사(正史)'라 하는 책들에는 중국의 국수주의적 왜곡이 너무나 많이 들어가 있고 특히 고대의 한국에 대한 기록이 그 피해를 제일 많이 받았다 할 것인데 ( 사실 모든 나라의 '정사(正史)'라는 책들에는 국수주의가 많이들 들어가 있겠죠.

그런데 오랜세월 거대중국의 압박과 사대주의로 인하여 우리의 역사를 우리관점에서 제대로 주장하지 못한 한국의 경우는 세계적으로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겠죠.예를들어 삼국사기의 경우 한국에서 만들어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수주의'가 아니라 '중국 국수주의'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진 거죠. )

사학과 학생들이 이러한 중국 국수주의적인 책들을 맹목적으로 보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에 옷 젖듯이 중국 국수주의에 물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물론 그러한 책들을 참조할 필요는 있지만 맹목적으로 보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실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한국의 삼국사기, 삼국유사도 이미 고려시대 당시에도 지식인들 사이에 '사대주의' 풍조도 많았고 따라서 이미 왜곡이 많았고 따라서 삼국사기 등을 맹목적으로 보는 것도 위험성이 큰 것 같습니다.

어느 나라의 경우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한국의 고대사연구는 철저하게 과학적인 관점에서 진실을 밝혀나가는 것이 너무나 필요한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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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장문의 정성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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