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골당에 갔다와서
어제는 비가 와서 습하고 눅눅했는데, 하루 만에 날씨가 완전히 바뀌었다. 오늘은 폭염주의보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리는 한여름이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는 납골당에 다녀왔다. 인사를 드리고 헌화를 한 뒤 잠시 머물다 왔다.
오전 일찍 납골당을 다녀온 뒤에는 친척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는 어느덧 3년,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1년이 되었다. 나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벌써 1년이 되었네. 시간이 참 빠르다."고 말씀하셨다. 같은 시간을 두고도 이렇게 다르게 느끼는 것이 신기했다. 어쩌면 떠나보낸 사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제각각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내가 두 번째로 코로나에 걸렸던 것도 아마 그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던 탓인지 그 시간을 견디는 일이 유난히 힘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할머니를 보내드린 뒤에는 비교적 빨리 현실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슬픔의 크기와 회복의 속도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든, 폭염이 이어지든 장례식장과 납골당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하루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언제나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는 날이 있기 때문이다.
문득 예전에 봤던 인도의 장례 문화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갠지스강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는데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고 했다.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장례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례들도 소개되었다. 그 장면을 보며 죽음조차도 결국 현실의 경제적 문제와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도 뉴스를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중국에서는 공장 화재와 태풍, 홍수 같은 자연재해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얼마 전에는 베네수엘라의 지진 소식도 있었다. 자연재해를 벗어나더라도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중동 지역, 그리고 세계 곳곳의 분쟁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가족을 잃고 있다.
납골당을 둘러보다 보니 또 하나의 구역이 어느새 가득 차 있었다. 물론 시에서 운영하는 시설이라 사설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수요가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그 풍경 자체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매일같이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고, 또 누군가는 그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친척들과 식사를 하면서는 자연스럽게 재산 이야기도 나왔다. 할머니 집을 처분하는 문제, 할아버지 명의의 시골 땅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농사를 짓지 않는 이상 오래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으니 가능하면 빨리 정리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사람이 떠난 뒤에는 결국 추억과 함께 현실적인 문제들도 하나씩 정리되어 간다.
나도 나이가 들긴 했나 보다.
예전에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했고, 죽음이라는 주제를 오래 붙잡고 사색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자극적인 뉴스에 너무 익숙해져서인지, 아니면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인지 예전만큼 죽음을 낯설게 느끼지 않는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지금 내가 아는 누군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면 분명 큰 상실감을 느끼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이전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억될 것이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속 흘러갈 것이다.
어쩌면 삶이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아 그 사람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시간이 흐르면 슬픔은 조금씩 옅어지고, 남겨진 사람들은 다시 자신의 하루를 살아간다. 오늘 납골당에서 본 수많은 이름들은 그런 당연하면서도 씁쓸한 사실을 조용히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종종 내 삶의 마지막을 상상해 본다. 언젠가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에는 더 이상 돈이나 명예, 남들과의 비교 같은 것들에 붙잡혀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때 돌아봤을 때 '조금 더 가져볼 걸', '조금 더 인정받아 볼 걸'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삶이었으면 한다.
매 순간 스스로를 다잡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몰아붙이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달래기도 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후회보다 감사가, 미련보다 평온함이 더 많이 남는 삶에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 오늘 품었던 이 마음만큼은 오래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