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 시절 이야기 - 논산 육군훈련소 5주차

in #kr-army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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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 한주 지나면서 훈련 강도는 점점 높아져 갔고, 5주차에 이르러 절정에 올랐다. 그만큼 5주차가 훈련병들에게 있어서 가장 고된 한 주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조교들은 혹시라도 여기서 낙오하면 유급이 되기 때문에 아퍼도 꾹 참고 교육을 받으라고 우리들에게 당부했다. 유급. 그거 당하면 훈련병으로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우리들도 싫다. 그러니 이를 악물고 끝까지 뛰는 수 밖에......


주초에는 각개전투라고 해서 주야간 이동 기술을 배웠다. 주간에 이동할 때, 적에 눈에 띄지 않고 이동하는 법을 배웠고, 그 다음에 어느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를 목표로 해서 달려가거나 엎드려 포복을 하며 소총을 겨냥하는 등의 행동으로 고지를 점령하는 교육을 받았다. 제일 먼저 배웠던 포복은 우리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었다. 저번 주에 열심히 뛰었던 PT체조는 단지 몸에 힘을 쫙 빼는 거지만, 포복은 바닥의 수많은 모래와 자갈들 때문에 앞으로 기어갈 때마다 바닥에 닿는 몸의 부분이 긁히는 기분이었고, 특히 팔꿈치와 무릎은 포복할 때 가장 많이 닿는 부분이므로 가장 고통스러운 부위였다. 일부 훈련병들은 팔꿈치가 까지거나 피가 나기도 했다.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앞으로 돌격하는 것은 포복만 하는 거에 비하면 재미있는 훈련이었다. 이 훈련은 분대 단위로 움직였는데, 분대 선임이 '돌격 앞으로!'라고 외치면, 다른 훈련병들도 따라 외치며 앞으로 달려가며 어느 지점에 이르면 갑자기 엎드려서 포복을 하며 장애물 뒤로 숨어 소총을 겨누는 방식으로 여러번 반복되었다. 그 때 발목을 다치지만 않았어도, 좀 더 재미있게 임할 수도 있는 훈련이었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 훈련이었다.
야간이동은 밤에 적에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움직이는 법을 배웠다. 이것은 주간이동보다 천천히 움직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쉬운 훈련이었다.

야간이동이 끝나고, 우리들은 숙영에 들어갔다. 교육받기 전에 쳐 놓았던 텐트로 들어가서 잠을 청했는데, 한 텐트에 3명이 자기에는 너무나도 좁은 공간이었고, 바닥도 울퉁불퉁해서 잠자리가 불편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텐트를 해체하고, 전날 하던 교육을 계속 받았다. 이번에도 고지를 점령하는 연습이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더 험한 지형에서 훈련을 했다. 이번에는 단순히 이동만 하는게 아니라 중간에 공포탄을 쏘는 연습까지 하게 되었다. 조금씩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하고 있음을 나는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수요일은 영내에서 교육을 받았고, 목요일날 다시 영외 교장으로 나갔다. 이번에 나가서 하루 종일 교육을 받고, 또 숙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미 숙영을 해본 우리들은 텐트 안에서 잔다는 게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주가 마지막 고비이니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교육에 임했다.


목요일 오전에는 월, 화요일에 교육에 이어 종합각개전투가 있었다. 이번엔 우리들이 전장에 있다고 가정하고, 고지를 점령하는 훈련이 이어졌다. 전과는 달리 총알이 날라다니고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물론 실제로 터지는 소리는 아니고 녹음한 것을 크게 틀은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전보다 전쟁 분위기가 나기는 했다. 종합훈련이라서 그런지 각개전투 중에는 가장 힘든 훈련이었다. 고지를 점령한다는 것이 실제로 산을 뛰어오르며 포복을 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오후에는 진지훈련이었는데, 땅을 파서 그 안에 숨는 법을 배웠다. 실제로 땅을 파지는 않았고, 어떻게 하는지만 배웠다. 각개전투에 비하면 별 거 없었다.

그 날 교육이 끝나고 저녁에 두시간 동안 쉬지 않고, 숙영지로 이동했다. 완전군장을 한 채로 이동했기 때문에 상당히 힘든 시간이었다. 나중에 하게 될 야간 행군이 걱정되었다. 숙영지에 도착한 후, 우리들은 다시 텐트를 설치했고, 두번째 숙영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새벽에 비가 내려서 텐트가 비에 젖었고, 빗물이 텐트 안으로 조금씩 스며들었으며, 덮고 있던 침낭과 다른 보급품들이 빗물에 조금씩 젖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불편한 잠자리에 비까지 내려서 우중충한 잠자리가 되었다.


다음날. 이제 힘든 훈련은 오전의 화생방과 야간 행군 밖에 안 남았다. 오전에는 방독면을 빨리 쓰고 벗는 법을 연습했고, 마지막으로 가스실에 들어갔다. 우리 소대는 다른 소대보다 늦게 들어간 편이라서 다른 애들이 가스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먼저 들어간 애들이 가스실에서 쿨럭쿨럭 기침 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움을 호소하고 있음을 멀리서나마 들을 수 있었다. 처음 들어가 보는 건데 과연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마침내 내가 들어갈 차례가 다가왔고, 나를 포함한 6명의 훈련병들이 방독면을 쓰고, 가스실로 들어갔다.

가스실에는 우리 소대장님이 방독면을 쓴 채, 가스실을 통제하고 있었고, 두 명의 조교들이 출입문을 지키고 있었다. 훈련병 6명이 다 들어온 후, 출입문은 굳게 닫혔다. 우리들은 들어오자마자 줄지어 차려 자세를 취했고, 소대장님은 곧바로 우리들에게 방독면을 벗으라고 지시했다. 우리들은 소총을 양 다리 사이로 끼워둔 채 방독면을 벗어서 방독면 주머니 속으로 집어 넣었다.

방독면을 쓰고 있을 땐 몰랐지만, 방독면을 벗자마자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갑자기 콧구멍이 따가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콧구멍만 따가운 게 아니었다. 눈을 뜨고 있으니 눈이 너무 따가워서 눈을 뜰 수가 없었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숨은 쉬어야 하는데,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콧구멍과 목구멍을 통해 전해지는 따가움이 숨 쉬는 것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숨을 쉬고 있어도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1초 1초 지나면서 이제는 얼굴과 손에 따가운 고통이 느껴졌다. 나는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하는 동안 내 옆에 있는 다른 훈련병들은 웅크려서 기침소리를 내거나 괴상한 소리를 내고, 눈물과 콧물에 침까지 질질 흘리며 그들만의 고통을 마음껏 표현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와 그들은 우리들은 설마 여기서 죽는게 아닐까 싶었다. 소대장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들에게 '앉아!', '일어서!'를 시키며 우리들을 통제했다. 그래도 이성은 남아 있었는지 우리들은 그의 지시에 겨우 따를 수 있었다.

가스를 마시는 시간은 보통 30초. 시간이 지나면 경보음이 울리고, 훈련병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가스실에 있는 도중 내 옆의 옆에 있던 113번 이모 훈련병이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저 혼자서 출입문으로 뛰쳐 나갔다. 고통스러운 건 알지만, 그렇다고 그를 보내줄리 없는 소대장과 조교였다. 조교들은 그를 붙잡아 원위치에 있게 하고, 우리들은 계속해서 가스를 마셔야 했다. 몇 초 지나서 그는 또 다시 뛰쳐나갔다. 그는 다시 조교들에게 잡혀서 원래 자리로 돌아와야 했고, 나머지 훈련병들은 덕분에 1분 동안이나 가스실에 있어야 했다. 도저히 못 참겠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경보음이 울렸고, 소대장은 우리들을 내보냈다. 우리들은 줄지어 뛰어나갔고, 가스실 밖으로 나가면서 고통스러운 가스가 아닌 우리가 평소에 마시던 공기를 마실 수 있었고, 가스실에서 느끼던 고통은 조금씩 없어져 갔다. 가스실 밖으로 나온 후의 우리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눈물 찔찔 흘린 건 기본이었고, 기침을 워낙에 많이 해서 얼굴에 콧물이 여기저기 묻은 애들도 있었고, 침을 너무 많이 흘려 입 주변이 침으로 범벅이 된 놈들도 있었다. 우리들은 화생방 교육을 받으며,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커다란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오후에는 구급법을 배웠는데, 환자 응급처치 요령을 교육받았다. 쉬운 교육이어서 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구급법도 끝나고, 이제 남은 건 야간 행군이라는 가장 큰 마지막 고비가 남아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훈련병들은 행군 할 준비를 했고, 출발하기 전에 대대장으로부터 정신교육을 받았다. 저녁 6시30분이 되자, 드디어 행군이 시작되었다. 3주차에 하던 주간 행군과는 달리 완전 군장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몸은 더 무거웠지만,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모두들 행군에 임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이동했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 고개가 나타났고, 경사는 약간 가파른 거처럼 보였다. 그 때 오르던 고개가 '함박고개'라고 불리던 곳이었는데, 야간 행군 코스 중 가장 고비가 된 구간이었다. 경사는 둘째치고, 고개의 끝이 보이지를 않았다. 이 고개를 오를 때 나는 걸음이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고, 내 뒤를 따라오던 훈련병들이 나를 추월해 앞으로 가버리는 일까지 생기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낙오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지만, 속도가 나지 않았을 뿐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히도 너무 힘들 때,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이 때가 나에게는 전환점이 되었고, 행군이 다시 시작된지 얼마 안되어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에 이르렀고, 그 다음부터는 제 속도를 내어 낙오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행군에 임할 수 있었다.

밤 12시가 조금 안되어 우리들은 부대 막사 앞으로 도착했고, 드디어 행군이 끝나게 되었다. 이제 힘든 훈련들은 모두 끝나게 되었다. 중대장은 우리들 앞에 서서 힘든 훈련은 모두 끝났고, 모두들 수고 많았다고 격려해주었고, 우리들은 중대장님께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로 이에 답했다. 전에는 과연 훈련을 마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지만, 이제는 모두 해냈다는 뿌듯함을 나는 그 날 밤에 느낄 수 있었다.

행군 중에 한 가지 옥의 티라면, 내 바로 옆에서 생활하던 동기가 행군 도중 낙오해버렸다는 것이다. 그 친구가 워낙에 체력이 약해서 예상이 되기는 했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줄은 몰랐다. 다행히도 행군의 절반을 지나서 낙오했기 때문에 유급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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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a Bengali. Please help me to learn more about my foreign education. Please help me. This book to wear would like if English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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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I wonder what 'foreign education' is.
Leaning Korean?
And does book mean 'this post'?

This post tells army training in South Korea.
I don't know if you want this story.

its ok.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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