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조니워커 위스키, 그리고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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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오래된 것에는 감성이 있다. 견디어온 세월과 그 세월 동안 켜켜이 쌓였을 사연을 짐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술도 그렇다. 시간이 지나고 오래 묵힐수록 맛이 깊어지는 게 위스키의 매력이라지만 주머니 사정으로 고숙성이나 오래된 바틀 같은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최근 간간히 가던 위스키 모임의 주제가 “올드 바틀”이었던 건 일종의 행운이었다.

오래된 바틀, 특히 위스키 바틀에서 풍기는 포스란 남다르다. 코르크로 막혀 있는 바틀을 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던가, 때가 덕지덕지 붙은 빈티지한 라벨이라든가. 빤딱빤딱하게 각 세우고 깨끗한 위스키 바틀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감흥이 생긴다. 상상력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낡디 낡은 700mL 위스키가 누구의 손을 거치고, 어떤 사연을 거쳐 이곳에 오게 되었을지 하는 뭐 그런.

그날 먹었던 대부분의 바틀은 80년대에 출시된 바틀이었다. 조니워커 올디스트, 조니워커 블랙 라벨, 글렌리벳 12년, 글렉피딕 퓨어몰트, 에드라두어 10년 각각 개성 있고 맛있었으나 날 사로잡은 위스키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60년대에 출시된 조니워커였다.

달콤하고 진득한 초콜릿 맛과 함께 그 어디 빠질 데 없는 조화로움이 있으면서도 오래된 우아함이 느껴졌다. 불편함 없이 몸에 딱 떨어지는 블랙 롱 드레스를 입은 느낌이랄까.

시인 박인환도 조니워커를 좋아했다고 한다. 시 ‘목마의 숙녀’ 속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이야기하기 전 마셨던 술 한잔 역시 아마도 조니워커였을 것이다.
이상의 기일을 추모한다며 사흘 연속 폭음을 하던 박인환은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그의 친구들은 생전에 좋아했던 '조니 워커'를 마음껏 사 주지 못한 게 한이 된다며 죽은 박인환의 입에다 조니 워커를 부어주며 대작을 했다. 또 묘에도 조니 워커를 한 병 뿌려주었다.

60년대 조니워커를 먹고 있자니 시계를 좀 더 뒤로 돌려 50년대로 가고 싶어졌다. 모던 보이 박인환과 명동의 포엠 바에서 조니워커 한잔을 기울이며 통속한 세상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가 목마와 숙녀에서 이 부분을 참 좋아했노 라고도 말하고 싶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雜誌)의 표지(表紙)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이 무서워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꼭 덧붙이고 싶었다.

홈스펀 양복에 바바리를 걸치고 모자를 쓴 멋쟁이 박인환은 콧방귀도 안 뀔 것 같지만.
그리고 언젠가 꼭 50년대 조니워커를 마셔보고 싶다.


일상 글은 아직 낯설게 느껴져서 쓰다 지우다 쓰다 지우다 포기하고
우선은 술이나 여행이야기를 올리려고 합니다 :)

다음에는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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