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진액-신심명 16자

in #kr3 years ago

신심명(信心銘)은 제가 상당히 좋아하는 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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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담은 글인데요. 내용이 직관적이기도 하고 난해한 군 소리가 없습니다.

달마 혜가를 이은 3조 승찬의 글이죠.

깨달음이 무엇인지, 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깔끔하게 골수를 전한 시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신심명을 특히 잊지 못하는 이유는 이게 서예를 배운 이후 첫 출품작이기 때문입니다.

백제 서예대전이라는 이름의 공모전인데 거기 바로 이 16자를 써서 출품했었고 아마도 입선을 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처음인지라 무척 기뻤죠.

어쨌든 신심명은 제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입선의 기쁨!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 그 문장을 다시 써보았습니다. 손바닥만 한 부적지에 썼죠. 뭔가 아주 집중하고 싶을 때는 지극하고 싶을 때 일부러 작은 작품을 해보기도 합니다. 거의 진언이나 부적을 내릴 때의 순결한 마음과도 같죠.

의미도 음미해 봅니다.

至道無難 지도무난

신심명의 첫 글자는 지(至)- 지극할 지, 이를 지입니다.

그러니 지도는 지극한 도-라고도 볼 수 있고 도에 이른다는 것은-이라고 해석해도 됩니다. 이렇게 의미가 중첩되도록 안배한 것도 그 의미를 풍부하게 하는 선시적 매력이지요.

도에 이른다는 것은 어렵지 않나니….

와! 도는 어려운 것 아니던가요? 그런데 승찬 대사께서 도는 어렵지 않답니다. 이분이 허튼 말씀하실 분이 아니죠?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군요.

그러면 도가 무엇인지 그다음 문장을 들어보겠습니다.

唯嫌揀擇 유혐간택

오직 유(唯), 싫어할 혐(嫌), 가릴 간(揀), 가릴 택(擇)

오직 간택함만을 싫어할 뿐이다.

간택(揀擇)이 뭘까요?

이 부분의 해석이 신심명에서의 핵심입니다. 간택!

이건 좋아 저건 싫어…등을 말합니다. 좋은 건 좋다 하고 싫은 건 싫다 하는 게 왜 문제일까요?

우리가 어떤 경험을 했을 때 그것에 대한 느낌을 기억의 방에 기록해 두곤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또 유사한 경험을 했을 때 신속하게 그 일에 대한 판단과 대응을 하기 위한 것이죠.

사람이나 일에 대해 자기 주관적 칸막이를 만들어 두고 효율적으로 판단하려 하는 것이 간택인데 문제는…뭘까요?

“아, 칠복이? 그 친구 약속 잘 안 지키는 녀석이야. 그 애랑은 같이 중요한 일할 생각도 하지 마.” 이런 식이죠.

“아, 주식투자? 그거 내가 많이 해봤는데 그거 절대 하지 마. 사람 폐인 되고 결국 남는 것도 하나 없어.”

이런 식입니다.

어떤 일을 당했을 떼 무조건 그 과거 데이터에만 의존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사유를 도무지 안 하려고 하죠. 나이 들어갈수록 더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경험이 풍부해서 난 다 안다는 식이죠.

“넌 아직 어려서 모르는데 살아봤더니 결혼 상대는 정말 재정능력이 가장 중요해! 아니 그게 다야!!..”

이런 것도 그런 한 예입니다. 그게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새롭게 느끼려 하지도 않고 새롭게 사유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사유의 게으름이라고 표현합니다. 사유의 게으름은 의식을 노화시키고 경직시킵니다. 나중에는 사유능력 자체가 거의 퇴화되고 뇌는 살아있는 화석이 되어 가죠. 그런 사람은 살아있어도 밥이나 먹고 잠이나 자는 본능적 동물이지 참 사람의 삶이 아닙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반응하는 삶, 본능적인 삶의 범주일 뿐입니다. 그런 사람은 낡은 사람이고 꼰대라고 불리게 되며 젊은이들에게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간택하지 말고 어떻게 할까요?

그다음 문장을 보겠습니다.

但莫憎愛 단막증애

다만 단(但), 말 막(莫), 미워할 증(憎). 사랑 애(愛)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洞然明白 통연명백

통할 통(洞), 그럴 연(然),

통하여 명백하리라…………쉽죠?ㅎ

그런데 미워하지 말라는 의미는 와닿는데 사랑도 하지 말라고요?

사랑- 그건 좋은 거 아닌가요?

여기서의 사랑은 갈애(渴愛)를 뜻합니다. 또는 미혹함을 뜻하죠. 즉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려는 마음을 증애(憎愛), 또는 애증(愛憎)이라 합니다.

조건이 있는 사랑이며 제한이 걸린 사랑입니다.

저는 사실 그런 감정을 사랑이란 말을 붙여주고 싶지도 않습니다.

반짝이는 인조 다이아 같은 느낌이 드니까요.

그래서 그건 갈증 나는 사랑, 갈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애증, 증애가 아닌 상태의 사랑은 뭘까요?

자비입니다. 아가페라고도 하죠.

이것은 동의어입니다. 그 공통점은 조건이 없고 제한이 없다는 점입니다.

무조건이며 무제한이죠. 이런 사랑 가능할까요?

보통 세상 속 관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지만 자식을 향한 어버이의 사랑은 거의 그 사랑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식을 향해 그렇게도 흠 없는 사랑을 줘 봄으로써 신의 사랑을 흠뻑 느껴볼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되돌려 받을 마음 한 점도 없이 주고 싶어 주는 사랑-그게 진정 소중한 가치며 진짜 금강석 같은 사랑입니다. 되돌려 받을 마음이 없는데 그게 가장 크게 되돌려 받습니다. 새어나감이 없는 복이라 하여 무루(無漏)복입니다. 당신이 무조건 무제한이 되었을 때-가장 신에 가까운 상태이며 가장 참다운 나인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통하여 명백하리라-라는 약속을 할 수 있지요.

통한다는 건 자기 안의 참나, 내면의 신성과 통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비쳐온 뿜어지는 빛이 밖의 태양보다 강렬하고 명백하죠.

간택도 증애도 초월한 사랑-오늘 한 사발 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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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말씀입니다.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도잠님! 저의 초막에 와주셨군요. 반갑습니다.

start success go! go! go!

캬~!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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