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연기
불교에서 '괴로움'의 원인을 잇따라 추측해 보는 불교 인식론의 과정인 <12연기>에 대해 정리해 봅니다.
12연기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과 조건이 상호 관계하여 성립되므로, 독립, 자존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조건, 원인과 결과는 상호 의존적으로 상관하는 관계에 있다는 설이다. 이것이 확장되어 고, 무아, 무상의 삼법인을 이룬다.
즉, 연기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를 뜻하며,
이것과 저것이라는 상호관계를 통해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실체를 거부하는 시각이다.
순관(順觀)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수(受)→애(愛,갈애)→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
무명[無明]이란 빛이 없다는 뜻이고, 무지, 이 말의 뜻은 곧 지혜가 없다는 의미
역관(逆觀)
12연기는 보통 거꾸로 가면서 설명하는 것이 기본 원칙
노사(老死)→생(生)→유(有)→취(取)→애(愛)→수(受)→촉(觸)→육입(六入,六處)→명색(名色, 육경)→식(識)→행(行)→무명(無明)
늙고 죽는 것의 전제가 되는 것은 태어남이다. 우선 태어나야지 이후에 늙고 죽기 때문이다.
태어남의 전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있음이다. 뭔가가 있어야 태어나기 때문이다.
있음의 전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반복해서 상기하는 집착이다. 그것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반복하여 확인하는 그 '집착'에서 '있음'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없다'면 집착할 이유도 없다.
집착의 전제가 되는 것은 원함이다. 어떤 것에 대한 갈증이야말로 '집착'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원함의 전제되는 것은 느낌이다. 좋은 느낌을 받으면 그것을 '원하게' 되고, 나쁜 느낌을 받으면 그것을 '원하지 않게' 될 것이다.
느낌의 전제가 되는 것은 접촉이다. 실제로 접촉해야 느낄 수 있다.
접촉의 전제가 되는 것은 감각기관이다. 감각기관이 있어야 접촉할 수 있는 것이다.
감각기관의 전제가 되는 것은 물질에 대한 정신의 관심(명색)이다. 그 감각기관에 정신이 주의와 관심을 기울여야 감각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질에 대한 정신의 관심의 전제가 되는 것은 구분하는 의식이다. 감각을 받아들이는 정신은 그것을 구분하고 정리하는 의식을 통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구분하는 의식의 전제가 되는 것은 이 때까지 해온 것들이다. '구분'하는 대상은 '이 때까지 해온 것들', 즉 경험이다. 우리가 해온 것들에서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 때까지 해온 것들이 의식 판단 기준이 된다는 것의 전제가 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명확한 지식이란 없다는 것이다. 오직 '변하는' 지식만이 있을 뿐이다.
202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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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 죽고 태어나고
있어야 하고 취해야 하며
사랑해야 하고 ^^ ~~!! 돌고 도는 인생사 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