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라이프] #14 For Ennio Morricone (1928-2020)

in #kr4 years ago

한 때 뉴에이지니 크로스 오버니 뭐 이런 장르에 한 2년 푹 파묻혀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전에는 안하던 짓이었는데 그래서 CD도 막 사다 모으고. 영화팬들이면 다 그렇겠지만 저 역시 한스짐머와 엔니오 모리꼬네를 가장 좋아했어요. 그런데 영화에 드러나지 않아서 엔니오 모리꼬네는 사실 오래전에 돌아가신거라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어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군요.

한 1년 쯤 고즈넉한 산기슭에 방을 구해서 산 적이 있었습니다. 석양 이후의 밤에 느껴지는 그 고즈넉함이란 말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죠. 무엇보다 좋은 건 신경쓰지 않고 스피커의 볼륨을 크게 올려도 된다는 것이었죠. 한 때 푹 빠져 있던 티볼리 라디오에서 나오던 엔옹의 음악은 뭐랄까 감정 혹은 감성이란 장기가 있다면 그걸 쥐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공중에서 돌린다는 느낌. 뭐 그런 것이었습니다. 왠지 곧 터질것만 같았죠.

CD가 쏟아지면서 그 이전 LP판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뭔지 모를 긴장감이 한동안 감돌았습니다. 그리고 CD가 신기술이고 크기도 작으며 더 반짝인다는 물리적인 사실은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뇌파를 측정해보면 CD보단 거친 음질의 LP판을 들을 때 훨씬 감성이 편안해 진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하던 때였죠. 하지만 MP3세대인 제게 CD는 사실 LP같은 존재였어요. 뭔가 향수를 자극하는.

컴퓨터에서 늘 CD음악을 MP3로 변환하고 아이튠즈에서 앨범자켓을 찾아 붙이는게 취미였던 제게 CD란 그랬죠. 하지만 컴퓨터에 달린, 아마 ODD라고 불리던 그 씨디 드라이브는 걸핏하면 웅웅 거리고 음악CD를 못읽어서 말썽을 부리곤 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엔옹은 신세대인 나의 그 기계에 대한 불만은 아랑곳 하지 않고 감성을 아주 흔들다 못해 쥐어짜는 음악들을 내뱉곤 했죠.

그러던 그가 같은 시간대에 살고 있었다니, 그리고 나는 나름 그의 매니아니 하면서도 그걸 몰랐다니. 그가 떠났다는 소식에 그가 살아있었다는 걸 알게된 역설적인 날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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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nio Morricone (1928-2020) image

유튜브에서 찾아서 몇 곡만 링크 걸어 둡니다.

미션 / Gabriel's Oboe 가브리엘 오보에 - 가수 사라브라이트만 Sara Brightman이 연주곡만 고집하는 엔옹에게 간청해서 가사를 붙인 노래, 넬라 판타지아의 원곡이죠.


러브 어페어 / 피아노 솔로 - 아름다운 불륜 (?) - 내로남불이니까요. - 을 그린 영화의 주제곡이었던가요. 이 영화가 3번인가… 리메이크 되었었던 것 같은데 그 때의 음악이 엔옹의 음악이었던가… 아리까리 합니다만… 갑자기 잊고 있던 이 영화 다시 한 번 봐야되나 하는 생각이…


시네마 천국 / cinema paradiso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키스신 모음 영화. 이 영화의 한 곡은 엔옹의 아들이랑 같이 작곡했다고 하던데… 암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 데보라 테마 사실 이 영화는 잘 모릅니다. 안 봤거든요. 그냥 음악만 열심히 들었는데. 제가 사실 느린 전개를 상당히 지루해 하는 편인데요. 이상하게 이 노래는 참 전개가 느린 것 같은데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어요. 찾아보니 제가 엔옹과 함께 좋아하던 한스짐머가 이 음악을 그렇게 좋아했었다는군요. 믿거나. 말거나. 아 그럼 이 영화도 봐야 하나요.

옛날 영화들 음악도 많이 만들었네요. 근데 그 세대가 아니라서… 제가 좋아하는 딱 4곡만 골라봤습니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길게 인용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이없게도 영화의 대명사인 아카데미상과는 별로 인연이 없었군요. 5번 노미네이트인데 음악상을 못받다니… 아, 한 번 결국 받긴 했나요.


이 영감님 예술가답게 병원에 누워있던 마지막 일주일 간, 자신의 부고를 직접 썼다는군요.

I, Ennio Morricone, am dead.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숨졌다.

I am announcing it this way to all my close friends and even to those who have been a bit distant, I say goodbye with much love. It is impossible to name you all. 가까운 친구들과 다소 소원했던 이들 모두에게, 이런 식으로 (부고를) 전한다. 사랑을 담아 작별을 고한다. 모두의 이름을 거론하는 건 불가능하다.

But I want to particularly remember Peppuccio and Roberta, you have been like siblings to me and very present in the last years of our life. 하지만 형제와 다름없었고 내 인생 마지막까지 곁을 지켜준 페푸치오(Peppuccio)와 로베르타(Roberta)는 꼭 언급하고 싶다.

There is only one reason that pushes me to say goodbye in this way and have a private funeral: I don't want to disturb. 이 같은 작별인사를 하는 이유는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다.

I would like to say goodbye with much affection to Ines, Laura, Sara, Enzo and Norbert, for sharing most of my life with me and the family. 나와 내 가족과 대부분 생을 함께 해준 Ines, Laura, Sara, Enzo 그리고 Norbert에게 지극한 애정의 작별을 고한다.

I want to remember my sisters with love Adriana, Maria and Franca and their loved ones and I want to let them know how much I loved them. 내 누이 Adriana, Maria, Franca와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도 기억하고 싶다.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아주길 바란다.

A profound farewell to my children, Marco, Alessandra, Andrea and Giovanni, my daughter in law Monica, and my grandchildren Francesca, Valentina, Francesco and Luca. 나의 아이들 Marco, Alessandra, Andrea, Giovanni와 며느리 Monica, 그리고 내 손주들 Francesca, Valentina, Francesco, Luca에게도 절절한 작별을 전한다.

And the final goodbye to my wife Maria, my life partner, I would like to renew the extraordinary love that held us together and I am sorry to abandon our love. The most painful farewell is to you. 마지막 인사는 아내이자 일생의 파트너였던 마리아에게. 지금까지 우리 부부를 하나로 묶어주었던 각별했던 사랑을 되새기고 싶다. 이제 이를 포기해야 해서 미안하다. 당신에 대한 작별인사가 가장 가슴 아프다.


출처(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5&aid=0003015522)

For Ennio Morricone, 일산에서 @soo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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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soosoo님

랜덤 보팅!!

소소하게 보팅하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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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
영원히 💙

너무나 슬퍼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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