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남과 여 5 - '접속'

in #kr6 years ago

인연의 얄궂음과 불가사의

인생은 내 뜻대로 안 된다. 인생에는 정말이지 내 뜻대로 안 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인연'이다. 내 마음이 가는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에게 호감을 표시해오는 사람은 내가 싫다. 인연은 그렇게 엇갈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뜻밖의 인연을 만난다. 엇갈린 인연에 대한 아쉬움과 뜻밖의 인연에 대한 놀라움에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사이 운명은 우리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데려다 놓는다.

그래서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속 한 남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자신만을 믿고 사는 여자 옆에서 잠들지 못하는 바로 그 남자...

남자들은 옛사랑을 잘 잊지 못한다. 많은 남자들이 엇갈린 인연 속에서 보내버린 옛사랑을 가슴 속에 품고 산다. 그들은 아마 죽어 이 자연의 일부가 되는 그 순간에도 옛사랑을 추억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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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접속'은 옛사랑을 잊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방송국 PD인 권동현(한석규분)은 옛사랑 영혜를 잊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와의 사연이 담긴 음반 하나가 그에게 배달된다. 9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구하기 힘들었던 Velvet Underground의 3집 앨범이었다. 동현은 이 앨범 중 'Pale blue eye'를 방송에 내보낸다.(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곡이다.)

친구의 애인인 기철을 짝사랑하던 수현(전도연분)은 답답한 마음에 나온 심야 드라이브에서 우연히 이 곡을 듣게 된다. 그녀는 다시 듣고 싶은 마음에 동현이 맡고 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이 곡을 신청하고 동현은 수현을 통해 영혜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는 수현이 이 곡을 신청한 PC통신을 통해 그녀와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지금은 흔하지만 이 영화가 개봉했던 90년대만 해도 익명의 사람과 온라인에서 대화를 한다는 건 색다른 일이었다. 낯선 남자와의 대화에 가슴 설레던 수현은 동현이 영혜라는 인물을 애타게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영혜를 아는 척 해버린다. 동현은 영혜를 만나고자 하고 그의 진지함에 당황한 수현은 영혜에게 물어보겠다고 하고 도망치듯 대화창을 빠져나온다.

이후 영화는 동현과 수현의 엇갈린 인연을 보여준다. 동현이 맡고 있던 프로그램의 작가였던 은희(추상미분)는 동현을 사랑하고 그에게 계속 다가서지만 동현은 아직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게다가 그녀는 선배 PD가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동현은 그녀를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나 수현과의 대화에서 사실은 그녀가 영혜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상심한 동현은 술을 마시고 밤거리를 방황하다가 은희를 찾아가고 두 사람은 같이 밤을 보내게 된다. 동현의 이런 행동은 은희를 혼란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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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철과 친구 희진의 연애에 이상한 모양새로 끼어있던 수현 역시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힘겨워하고 있었다. 동현에게 한 실수로 자신이 벌을 받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 수현은 그에게 사과하는 메시지를 보내지만 동현은 그것을 삭제해버린다. 얼마 후 Velvet Underground를 찾기 위해 우연히 동현의 친구가 운영하는 레코드 가게에 가게 된 수현은 동현과 마주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레코드 가게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에서 서로를 스쳐보내는 두 사람... 이 장면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아무리 좁은 공간이어도, 아무리 거리가 가까워도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서로에게 하루에도 수없이 스쳐지나가는 많은 사람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 만남과 인연의 매정한 원리를 보여주는 것 같다.

수현은 사과의 뜻으로 동현에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보내고 이후 두 사람의 대화는 다시 이어진다. 익명의 공간이긴 했지만 그들은 서서히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이후 영화는 그들이 처음으로 만남을 갖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들의 만남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다. 엉켜있는 인연과 헝클어진 감정 속에서 그들의 인연은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객의 애를 태운다.

영화 '접속'은 인연의 얄궂음과 불가사의함에 대해 말한다. 엇갈리는 인연 속에서 상처 받고 힘들어하면서도 새로운 인연을 갈구하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이런 만남과 인연을 운명이라고도 하고 필연이라고도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모든 만남은 우연일 뿐이며 당사들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한다.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모르지만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만남이 하나의 인연으로 연결되기까지의 과정은 다양한 풍경을 연출해낸다. 끊어질 듯 하다가 다시 연결되고 뭔가 되는 듯 보였는데 하루아침에 허망하게 끝나버리는 인연의 예측불가함 속에서 때로는 두려워하고 주저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안 될 것을 알면서도 객기를 부려보기도 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만남과 인연을 경험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잘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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