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의 전설 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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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 14일 <소나기>의 전설 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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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 선생의 문학 평론집 <그러나 최소한 나는 저항한다>를 뒤적이다가 이런 대목을 읽습니다. “대학 신입생들의 교양 과목을 담당하면서 알게 된 바에 따르면 미당 서정주와 그 작품을 모르는 학생은 꽤 있어도 황순원의 소나기를 모르는 학생은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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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게 아니라 정말 그럴 것 같아서 싱긋 웃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시에 대해서는 옷장의 좀만큼도 모르지만 서정주의 시에 대해서는 평가를 하는 편입니다. 저 유명한 구역질의 대명사 <마쓰이 히데오 오장 송가>, 즉 가미가제로 죽었다는 조선인을 추모한 시 (근데 그 사람은 살아서 돌아왔다는)를 보면 구역질 가운데에서도 기억나는 구절이 있을 정도로 우리 말을 잘 쓰는 시인이라고 할까요. 그래도기습적으로 제게 서정주의 작품 하나만 대 봐 하고 물으면 버벅거릴 것 같습니다. 그.... 그.... 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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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황순원의 소나기’ 하면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문장들이 머리 속에서 알알이 포도처럼 영글고, ‘소나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 분명한 음악이며 노래며 각종 영화며 드라마며 등등이 서라운드 초고화질로 동시재생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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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노래 <긴 머리 소녀>의 첫 구절은 ‘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모습 달처럼 탐스런 그녀 얼굴’로 시작하죠. 이 빗소리에서 ‘소나기’를 연상하는 사람은 저 뿐이 아닐 겁니다. 실제 이 노래를 부른 둘다섯이 소나기의 주인공 윤초시의 손녀를 연상하며 노래를 지었다고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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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입니까. 가수 예민의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는 그냥 소설 소나기를 들이 부어 만든 노래 아니겠어요. MBC 베스트셀러극장의 <소나기>를 보면서 억수같이 퍼붓는 빗속에 소년의 등에 업힌 소녀가 주먹을 꼭 쥐는 장면에 못박혀 그날 밤 늦게 잠 못이룬 기억이며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소나기>를 패러디해 윤초시의 손녀가 ‘옷을 입은 채 묻어 달라’가 아니라 ‘그놈을 함께 묻어 달라’고 유언하여 차태현이 생매장(?)을 당하는 순간의 쓴웃음까지 떠오르는 게 하나 둘 아니 열 스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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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고등학교를 마친 대학 신입생들이 ‘서정주는 몰라도 황순원의 소나기는 안다’는 말이 살갑게 들리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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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황순원 선생 본인은 <소나기>가 자신의 움직일 수 없는 대표작처럼 된 것에 대해 흔쾌하지는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분을 추모하고 기리는 문집이라 할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에선 이런 일화가 등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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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 교수가 “전란의 포성이 요란했던 1953년 4월에 어떻게 그런 순정한 감성을 담은 작품을 쓰실 수 있었냐며, <소나기>는 한국소설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용비어천가를 읊어댔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서운함과 화가 담긴 목소리로 ‘왜들 <소나기> 얘기만 하는 거야! <움직이는 성>은 읽어보지도 않고들!’ 하시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간의 평가가 작가로서는 못내 서운하시다는 감정이 그 한숨 속에 깊게 배어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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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그분은 <독 짓는 늙은이> <카인의 후예> 위에서 보듯 본인이 대표작이라고 보신 듯한 <움직이는 성> 또 하나의 7080 교과서 수록작 <학> 등 보석같은 작품들을 많이 남기셨던 바 <소나기> 하나로 자신을 평가하는 것에 당연히 불만을 가지셨을 법합니다. 사실 무례한 일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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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징검다리에 버티고 앉아 소년을 기다리고, 말 걸어 주지 않자 이 바보! 하면서 토라지던 소녀. 그들이 함께 맞던 소나기 풍경 그리고 ‘악상’(惡喪 : 이 소설에서 제가 배운 단어)이 나서 소녀가 죽었음을 알게 되고 여간 ‘잔망스럽지 않은’ (역시 이 소설에서 익힌 한국어) 유언으로 소년과의 추억을 간직한 옷을 입힌 채 묻어 달라고 했다는 애달픈 이야기가 한국 사람들 머리 속에 쓰여진 것도 아니고 궁서체로 인쇄돼 버린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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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와 더불어 <학>도 참 기억에 많이 남는 소설입니다. 소설 <학>은 전쟁 중 좌우로 나뉜 친구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전쟁의 판세가 바뀌어 남쪽과 우익이 다시 득세했을 때 어영부영 좌익 감투를 썼던 친구는 꼼짝없이 사살당할 운명에 처합니다. 당시로서는 모래알처럼 흔했던 이념의 제물들이었죠. 그런데 우익 친구는 허공을 향헤 총을 쏘고 (사살한 듯) 영문을 모르는 친구에게 외치죠. “어이 왜 멍추 같이 섰는 게야. 어서 학이나 몰아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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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보면서 극중 인물들을 소개하는 자막에 ‘보도연맹원 학살시 사망’ 같은 단어가 박히는 걸 보면서, 또 보도연맹 사건의 비극이 세상에 드러날 즈음에 저는 이 <학>과 주인공의 외침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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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에는 그저 ‘공산당과는 다른 휴머니즘’으로 이해하고 넘어갔지만 소설 속 주인공은 친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걸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단순한 상상만은 아니었습니다. 무려 21세기에 황순원의 <학>을 ‘교과서에 침투한 좌경용공물’로 매도하는 글을 본적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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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황순원이 <학>을 발표한 것은 전쟁이 끝나기도 전이었습니다. ‘농민동맹 부위원장’ 쯤 되는 큼직한 ‘빨갱이’를 몰래 살려 보내는 휴머니즘은 당시로서는 사람 하나 수이 매장시킬만한 휴머니즘 아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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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황순원은 그럴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쓸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일제가 발악을 하던 태평양 전쟁 시기, 조선어로 된 작품 발표가 봉쇄됐을 때 황순원은 김정한이나 현진건처럼 절필하고 고향에 칩거합니다. 지주 가문 출신인 그는 공산화가 진행되는 북한을 탈출해 월남으로 내려왔지만 ‘서북 청년’의 이름으로 악마가 돼 버린 수많은 동향 청년들과는 달리 ‘반공’에 투항해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자신 ‘보도연맹원’이 돼 위기에 처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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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독재가 판을 치던 시기, 박목월이 ‘대통령 찬가’를 쓰고 서정주가 전두환을 두고 ‘단군 이래 최대 미소’라고 아부할 때에도 세상과 명확히 거리를 둔 작가요 선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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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책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에 등장하는 일화입니다.
“국보위에 불려갔다 오신 선생님께서 심기가 불편하신 착잡한 얼굴로 날씨도 그렇고 하니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하셔서 ‘러시아집’으로 갔다. 술이 몇 순배 도는데도 선생님의 표정이 풀리시지 않아 내가 조심스럽게 ‘심기가 많이 불편하신 거 같으시네요….’하고 말끝을 흐렸더니, 선생님께서 잠시 침묵하신 뒤 ‘나더러 국보위 위원이 돼 달라고 하더군. 흠, 나는 못 한다고 했고… 서정주는 수락했지.’하고 말없이 거푸 술잔을 비우셨다.
그러고 나서 ‘자네 이광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하고 물으셨다. 내가 가볍게, 작품과 사람 평가는 구별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더니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혼이 떠났으면 그게 사람인가, 시체지! 용서는 진정한 참회가 있은 다음에야 가능한 거야. 참회한다고 <돌베개>를 썼지만 그건 참회가 아니라, 자기합리화고, 변명이고, 위선이야!’라고 격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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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는 평안도 정주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평안도 사람들이 걸출하게 빛을 발한 것은 따로 말할 것이 없습니다만 그들 좌우를 넘고 이념을 가로질러 끌어주고 도와주곤 했지요. 리영희 교수를 은밀히 하지만 적극적으로 두호한 것이 조선일보의 선우휘이기도 했듯 말입니다. 이광수 역시 평안도 사람 황순원을 아낀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재주 썩히지 말고 일본어로 써 보라.”고 권유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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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황순원은 듣지 않고 고향에 틀어박혀 언제 발표할지 모를 한국어 소설을 써 내려 갔습니다. 그러면서 이광수 저 송장같은 종간나새끼 하면서 평안도 말로 욕지거리를 내뱉있을지도 모르죠. 시와 소설 외에는 어떠한 잡문도 쓰지 않았고 하다못해 선후배 제자 저서의 발문조차도 쓰기를 거부했던 꼬장꼬장한 작가였으니 가능한 이야기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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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나기>로 돌아가서 소나기의 원제는 ‘소녀’였으며 그 결말에도 저 쓸쓸하면서도 가슴을 긁어내리는 문장 “글세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죽거든 저 입었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 묻어 달라고.....” 이후에 4문장이 더 있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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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1월 '협동'에 실린 '소녀'는 '소나기' 통용본과 내용상 큰 차이는 없지만 결말 부분에 4문장이 더 있다.......”아마 어린 것이래두 집안 꼴이 안될걸 알구 그랬든가 부지요?/ 끄응! 소년이 자리에서 저도 모를 신음 소리를 지르며 돌아 누웠다./ 쟤가 여적 안자나?/ 아니, 벌서 아까 잠들었어요...얘, 잠고대 말구 자라!” .” (뉴시스 2008.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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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절친한 친구였던 작가 원응서가 이 4구절은 사족이라고 빼라고 권했고 황순원은 이를 받아들였다지요. 1973년 먼저 세상을 뜬 원응서를 애도하면서 황순원은 모든 술자리마다 마지막 술을 “응서, 자네 것이네”를 읊조리며 그릇에 붓곤 했다고 합니다.
그를 흉내내서 저도 소나기가 오는 날 술 기울일 때는 마지막 술 한 잔은 황순원 선생에게 바쳐 볼까 합니다. 저에게 ‘소나기’를 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읊조리면서 말입니다. 오늘은 그의 기일을 맞아 비는 안오지만 맥주 한 잔 혼자 하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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