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모독에 대하여

in #kr6 years ago

고향 모독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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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고향을 찾는다. 나에게는 고향의 의미가 적다. 초중고 다 부산에서 나왔으되 아버지나 어머니나 다 고향이 부산이 아니시니 친척들이 몰려 살지도 않고 서울 온지 30년에 친구들과도 연락이 거의 닿지 않는다. 그래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추석이며 맨주먹 붉은 브레이크 등 켜고 귀성전쟁에 참전한다. 고향은 고향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계신 곳이라는 이유가 99퍼센트, 거기에 고향이 어디냐 물으면 대답하는 곳에 대한 예의 1%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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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아버지가 어느 기업의 서울 본사에 있다가 부산 지사로 발령나시면서 정해졌다. 다섯 살 때부터 거기서 자란지라 말투가 혀에 뱄고 정서가 몸에 익었다. 아무리 두산이 날고 기고 기아가 매력적이어도 만년 하위 롯데 자이언츠 팬을 포기한 적은 언감생심, 그럴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다. 롯데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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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함을 넘어서 남이 보기에도 나는 부산 사람이다. 아버지는 함경도 어머니는 서울, 본적은 대구 (피난 나와서 아버지가 호적 얻으신 곳이 대구)지만 나는 부산 사람으로 규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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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화끈한 성격이 아니고 기분파도 아닌데 사람들은 내가 그런 줄 안다. ‘부산 싸나이’기 때문이다 ‘태종대 파도 소리 자장가 삼아 세계로 뻗어가는 꿈을 꾼’ 적도 없고, 롯데 팬이면 당연히 알아야 할 <부산 갈매기>는 하이라이트만 따라 부르는 정도지만 나는 부산 사람이고, 그에 따른 이미지를 입는다. ‘부산 싸나이’의 이미지는 좀 우악스럽긴 해도 소탈하고 손해는 좀 봐도 그거 때문에 끙끙 앓지 않는 화통함으로 포장돼 있다. 그래서 나는 평생 부산 출신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손해 본 적도, 부아가 치민 적도, 억울한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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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광주 지사로 발령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내 부계가 함경도건 모계가 서울 토박이건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그저 전라도 사람으로 일생을 살았을 것이다. 전라도 사람들이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전라도 사람, 광주가 고향인 이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부산 싸나이와 전라도 남자의 차이가 어떠했을까. PD라는 직업으로 최소한 남한만큼은 누구보다 많이 다녀 본 사람의 입장에서 그 차이는 막대하다는 형용사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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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편의점 업주가 전라도 출신을 드러내는 주민등록번호 소지자는 고용하지 않겠다는 걸 공개적으로 천명했고 그 때문에 융단폭격을 받았다. 그런 인종적인 발상에야 융단폭격이 아니라 핵 공격도 가능하다고 확신하는 바, 나 역시 분노했고 전라도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 주인의 고향이 어딘지 궁금해 했다.

어느 지역 출신인지만 나오면 그 지역이 얼마나 흉악한 범죄가 일어난 곳이며, 얼마나 사악한 인간들이 그곳을 고향으로 두고 있는지를 알려줄 참이었다. 제발 경상도이길 바랬다 솔직히. 왜? 데이타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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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의견을 밝히자마자 쪽지가 들어왔고 댓글이 달렸다. “같은 전라도 사람이랍니다.” 한 1초간 머리에 뭘 맞은 것 같았다 그러나 충격은 곧 가셨다. 그런 동족 혐오랄지, 혐오의 내재화를 목격했던 기억이 떠올라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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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부산도 심상치 않았다. 원양어선 선원들이 노조를 조직했는데 어느 날 파업 투쟁 와중의 노조원들이 회사에 쳐들어와 관리자 사무실을 초토화시켜 놓았다. 회사에 핍박당하고 동료들의 죽음을 속절없이 목격했던 선원들의 분노는 대단했다. 폭격을 맞은 듯 박살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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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버지 지인이었던 그 회사 관리직이 이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고 광주에서 뭣 땀시 총 맞았는지 알겠어야.이렇게 온통 박살을 내는디 총 안 쏘고 배긴다냐.” 그는 전라도 사람이었다. 선원들의 난동에 굳이 광주를 끌어댄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건 일종의 도피였다. “나도 전라도지만 광주를 그렇게는 생각 안해.” 하는 슬픈 시위였다. 상대방이 생각 못할 때 먼저 허리를 치는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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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홍어집을 촬영한 적이 있다. 홍어는 별로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었지만 주인집 할머니의 수다만 해도 충분한 촬영꺼리가 됐던지라 기꺼이 그 집을 찾았다. 카메라 앞에서도 할머니는 거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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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나가 어렸을 때 이 홍어를 잡아와 가꼬 장독대에 넣어놨단 말이시. 근디 할아부지가 잡숴야 나가 묵을 거 아닝가. 너무 묵고 싶어서 혀로 핥아묵었당께...... 이러코롬 삭삭 닦아 줘야 맛있어. 나가 기술자랑게..... 요건 칠레산이여. 주둥이가 뾰쪽하고 살이 물러. 이거는 국산인디 연평도산이여 흑산도 아니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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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생활 10년차가 안됐을 때였으나 그래도 그런 청산유수에 질풍노도는 처음이었다. 도무지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하고 카메라만 돌리는데 할머니의 다음 말씀이 쨍 하고 내 머리에 도끼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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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짓말 안한당께로. 나가 전라도 사람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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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이 팍 빠졌다. 뭐라구요? 번쩍 쳐든 고개, 그리고 굳어진 얼굴을 봤는지 할머니 갑자기 말을 더듬거렸다. 그 뒤에 나오는 말은 더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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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라도 사람이지만 거짓말은 안하는디..... 나는 칠레껀 칠레 꺼라고 허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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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말허리를 잘랐다. 나이 서른 무렵의 젊은 PD는 정색을 하고 할머니를 나무랐다. “할머니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수십 년 이 동네를 지켜온 터줏마님이라는 양반의 자부심의 표현이 ‘거짓말은 안하는 전라도 사람’이라...... 가슴 속이 돌이 된다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대관절 그 말이 자연스럽게 입에 배기까지 할머니의 타향살이는 얼마나 참혹했단 말인가. 머리 속이 터져 나갈 듯한 가운데 뭐라 말을 할 지 혀 시위를 당기는데 할머니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나가 먼 실수를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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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발! 아 씨발 씨발!

. 친일파로 이름 높은 윤치호는 평양 사위를 맞을 때 나름 개화하고 상식적이며 반일감정도 있는 서울 사람들이 어떻게 평양 사위를 얻냐고 걱정(?) 해 주는 모습을 보며 비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나중에 증명할 수 있으리라고 했고 이런 지역감정조차 극복하지 못하는 조선은 독립하려면 멀었다고 힐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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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른 지역 사람들의 편견도 모자라 그 지역 사람들의 입으로 자신들은 자기네 지역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애처로운 변명을 하게 만들거나 앞장서서 ‘그 지역 인간들 안 뽑아’를 부르짖게 되는 사회가 어찌 문명 사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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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안뽑는다던 인간들이 전라도야”라고 키득거리는 사회가 짐승의 집단으로부터 거리가 얼마나 멀까. 그런 주제에 무슨 통일을 하고 뭔 자유와 평등을 논할 수 있을까. 한 집단을 갈라치고 특정하고 차별하는 게 습관이 된 빌어먹을 나라에서 뭔 ‘우리 민족끼리’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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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출신 알바 안뽑는다고 공표했다가 융단 폭격 받은 이의 추석을 생각해 본다. 그도 전라도 출신이고 그 부모님도 다 전라도 출신이라고 했다. 그 마음이 어떨까. 그가 고향을 찾는다면 그 마음은 어떨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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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한 행동은 물론 곤장을 맞아도 싼 지역 혐오였음은 분명하나 그가 동족혐오에 빠지게 만든 것은 절대로 그의 책임만은 아니었다. 그거야말로 “우리 모두의 책임”이었다. 남북통일은 이런 우리들에 의해서는 절대 달성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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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소소한 원칙 하나가 있다. 인종적 구별은 없는 ‘재수없는 단일민족’ (단일민족은 정말 재수 없는 자랑이다)의 일원으로서 인종주의는 캘리포니아 반도 안되는 땅덩이에서 어느 도는 다르고 어느 도는 이러하며 그래서 열등하거나 난폭하거나 사기를 잘 치거나 한다는 편견을 드러내는 모든 이를 야만인으로 간주하고 용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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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집 할머니의 말투 와 얼굴은 지금도 내겐 트라우마다. “나가 거짓말은 안하는디 내가 전라도라도....” 그 트라우마를 발현하는 일 없기를 바란다. 싹을 잘라 버려서 그런 일은 거의 없으나 지금도 내 담벼락에서 전라도 사람들 운운하는 개새끼들이 가끔 짖을 때가 있다. 차단이다. 그리고 알 만한 사람이었으면 심한 욕 털고 차단이다. 그 '미러링도 마찬가지다. 경상도 사람이 인종적으로 나쁠 근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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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칙은 좀 확대됐으면 좋겠다. 남북 화해가 다가온 시점에서 나는 더욱 겁난다. 좀 못 살고 왕국의 신민들이었답시고 전라도 차별하고 그걸 체화하던 인간들 (경상도 뿐이 아니다. 서울 사람이 더 심하다 내 경험으로는)이 과거 전라도나 평안도 사람 대하듯 북한 사람을 대했다가는 아마겟돈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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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 술 먹고 넋두리가 길었다. 자야겠다. 모든 이에게 고향은 축복이다. 부모가 있고 친구가 있고 꿈에도 그리던 산천이 있고 옛 추억이 있는데 그런 축복이 세상에 어디 았을까. 그 축복에 먹물 끼얹는 놈들에게 저주 있으라, 그 대가리 열고 녹물 부어지리리라. 그 위가 터지도록 똥물 퍼부어지리라. 해피 추석 메리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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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착하고 멀쩡한 사람이 악행과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다면 그를 조종한것은 대부분 모종의 편견이죠

경남분들 하면 영삼이형님 이미지가 있어서. 화끈하고 뒷끝이 없는 이미지가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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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게 동의합니다.
저도 너무 놀랬던 것이 집안 어른(경상도)께서 "전라도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다" 라고 당연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버럭 할 뻔 했어요..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건가요? 하면서... 사람 사는 것이 다 똑같은데, 지역에 따라 누구는 선하고 누구는 악하다는 말이 안됩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지 않고서는요...
우리 세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부 사건들이나 댓글 들을 보면 전혀 달라진 것 같지 않아 너무 안타깝고 슬퍼요.

고향. 이란 단어를 듣기만해도 감정이 복받쳐 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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