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촬영

in kr •  12 days ago

1982년 12월 14일 죽음의 촬영

한국 언론의 선정주의가 극에 달했을 때는 언제일까요. 물론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저는 5공 때를 들겠습니다. 언론기본법이나 보도지침의 존재에서 보듯 언론 통제의 고삐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했지만, 동시에 그 이면에서 정치적 위험성 없는 선정주의는 잔뜩 고무되고 장려되었으니까요. 물론 요즘같은 인터넷 시대에 비길 바는 아니겠습니다만 그때는 언론이 인터넷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미주알고주알 없는 말 있는 사실 총망라해서 신문지상에 노골적으로 보도되곤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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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 최악의 보도 가운데 하나가 1982년 12월 14일 벌어진 사건에 대한 것입니다. 이동식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보일러 배관공으로 기십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받고 살았지만 150만원짜리 일제 카메라를 구비하고 있을 정도로 사진 찍기에 대한 열정을 발휘했어요. 그 어린 시절은 매우 불운했습니다. 조실부모하고 숙부 집에서 자랐고 잦은 학교폭력에 시달리면서 점차 범죄의 세계에 입문했죠. 서른살이 되기 전에 별 세 개를 달았던 그는 우연히 갖게 된 카메라를 통해 사진의 세계에도 입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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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찍는 정도가 아니라 의외로 재질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진전에서는 은상도 받았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그 소재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닭이 죽어가는 모습을 찍은 것이었지요. 그 뒤로 그는 누드 모델들을 즐겨 찍는데 그의 취향은 매우 기괴할만큼 독특했습니다. 칼에 꽂혀 죽어가는 사람이라든가 변태적 모습이라든가 하여간 보통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세계(?)를 구가했죠. 한 발 더 나아가서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이해를 구할 수 없는 차원으로까지 자신의 예술적 지평(?)을 넓히는 생각에 접하게 됩니다. “죽음은 가장 숭고한 순간이다.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찍고 싶다.”

영감(?)이 떠오른 예술가는 그를 화폭에 옮기든 종이에 끄적이든 껌종이에 긁든 구체화시키기 마련이죠. 그도 그랬습니다. 2남 1녀의 아버지였던 그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엽기적 행태의 충실한 조력자 (모델)이 되어 준 착하디 착한 아내 외에 이발소 아가씨를 사귀고 있었는데 이 아가씨를 상대로 그가 생각하는 ‘숭고함’을 구현하기로 맘 먹습니다. 1982년 12월 14일 야산으로 그녀를 유인한 이동식은 썰렁한 날씨에 몸을 움츠리는 그녀에게 감기약이라며 알약 몇 알을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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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무 의심 없이 그를 삼켰고 그 이후 그녀는 온몸이 뒤틀리고 마비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감기약은 다름아닌 청산가리였죠. 내가 왜 이러냐고 부르짖다가 끝내 혀까지 굳어버리고 가슴을 부여잡으며 꿈틀거리는 동안 이동식은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피해자가 사망한 다음에는 그 옷까지 벗겨 낸 뒤 누드(?) 사진까지 찍은 뒤에야 낙엽과 흙으로 그녀를 덮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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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동네 꼬마들이 산에 올라와서 총싸움을 하다가 시신을 발견합니다. 그녀의 주변을 탐문하던 경찰은 어렵잖게 이동식이라는 인물을 파악하게 되고 그를 추궁하게 되지만 당연히 완강하게 부인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게 됩니다. 그의 집 합판 벽 안에서 죽음의 촬영 사진 필름을 발견한 거죠. 이걸 내밀자 이동식은 연출사진이라고 우기다가 범행을 자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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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신문들은 대서특필을 합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인데 조간신문에 이발소 아가씨가 몸을 뒤틀며 죽어가는 필름 한컷 한컷 수십 장이 사회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청산가리를 먹으면 왜 저런 행동을 보이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고 사춘기 성적 호기심 왕성한 중학생들은 그 녀석이 시체를 두고 ‘했는지 안했는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었죠. 무슨 변태 중학교 나왔냐고 나무라지는 마세요. 순진한 중학생들을 그렇게 만든 건 언론이었으니까. 지금도 그 사진은 인터넷상으로 돌아다니고 원판은 프랑스인가 일본인가 외국에서 사 갔다고 합니다. (누구에게 돈을 지불했는지는 몰라도) 여기에도 올릴까 하다가 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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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관 한 명은 후일 뜻밖의 이야기를 털어 놓습니다. 이동식에게 희생된 것이 이발소 아가씨 한 명만은 아닌 것 같다는 거죠. 이동식의 수첩에는 그의 사진만큼이나 그로테스크한 시(?)나 메모들이 그득했는데 토막 살인을 암시하는 내용도 있었고 다른 희생자들을 묘사한 것도 있었다는군요. 또 그의 전처도 행방불명 상태였습니다. 계속된 추궁 끝에 그는 희생자가 묻혀 있는 곳을 자백했다고 합니다. 전경 의경 총동원돼서 삽질을 하려는데 저 높은 곳에서 이제 그만하라는 명령이 내려옵니다.

이유는 나라 망신. 이 사건이 해외토픽에 실린 게 화근이었습니다. “88올림픽이 열리는 한국에서 사람한테 청산가리를 먹이고 죽어가는 모습을 찍는 일이 벌어졌다!” 88 올림픽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던 당시 한국의 고위층들은 이 사건을 하시라도 빨리 덮고 싶어했고 이 일이 연쇄살인범으로 확대되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아 ‘덮어!’의 명을 내린 거죠. 물론 이 사실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고 수사본부는 해체되고 이동식은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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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사건에서 이동식의 엽기성을 주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유영철과 강호순도 목격한 터에 그때라고 그런 놈이 없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만큼 두려운 것은 그때의 언론과 권력입니다. 언론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도 없이, 피해자에 대한 예의도 없이, 독자에 대한 배려도 없이 최대한의 ‘언론의 자유’를 누리며 그 죽음의 촬영 사진들을 지면에 도배했습니다. 그 사진들은 보도지침을 어길 이유도 없고 권력의 심기를 거스르지도 않으면서 돈은 잘 벌게 해 줄 수 있는 껀수였으니까요. 그런데 이 사건이 권력의 비위를 건드리는 해외토픽으로 승화된 순간 수십 명의 숨겨진 희생자가 있다고 의심되는 이동식 사건은 수면 아래로 들어갑니다. 범죄자들의 범죄적 성향도 무섭지만 저는 이것도 그에 못지 않게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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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때였으니 가능한 얘기였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히려 전두환 때는 전두환의 군부 똘마니들만이 문제였지만 그 자리에 자본과 재벌이라는 이름의 권력이 들어선 이상 그 힘은 더욱 강하고 그 영향력은 더욱 넓으며 그 취사선택의 간사함이 더욱 자심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아니겠습니까. 자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범위에서 언론의 자유는 무한대를 달리지만 그에 역하는 기사와 사진과 동영상은 기자들의 눈에 띄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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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가 누구랑 뜨거운 관계라면 사생결단 쓰레기통에 숨고 중국집 종업원으로 변장해서라도 사실을 캐내는 언론이 몇 명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엄동설한에 수십 미터 높이의 철탑에 올라가 그 답답함을 호소해도 오불관언 소 닭 보듯 하고 있는 모습은 과연 우리가 5공때보다 나아진 것인지를 의심케 합니다. 군부건 자본이건 자신들의 이익과 기호에 맞게 언론을 부리려 들고 언론이 그에 봉사할 때 남는 것은 대개 두 가지입니다. 이동식의 사진같은 ‘특종’과 ‘나라 망신’이나 ‘국가 경제’라는 미명 하에 파묻히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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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망신이라는 망신은 누가 다 시키고,
정작 죽어서도 고통받는 피해자들과 그의 가족들은 보호받을 길이 없네요.
언론의 자유는 그런 곳에 쓰라고 있는것이 아니고, 권력이라는 것도 그 곳에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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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나 말입니다... 특히 그때가 전두환 때다 보니... 양쪽 다 말이 아니었....

그때 그 시절 이야기 같지만... 가만 보면, 여전히 '나라 망신'을 이유 삼아 정당한 비판이나 따져봐야 할 일도 가리거나, 건너 뛰자는 분들이 있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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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지금도 많죠..... 나라 망신이라는 단어가 좀 바뀌긴 했겠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