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 빠라바라밤 빠라바라밤

in #kr5 years ago

1971년 3월 6일 수사반장 전파 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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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와 용의자가 함께 보며 몰입하던 드라마가 있었다. ‘빠라바라밤 빠라바라밤’ 비트 강한 주제 음악과 함께 떠오던 흑백 화면을 보면서 아련한 추억에 젖어든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바바리 코트를 입은 수사반장 최불암과 그 주변에서 심각한 표정 짓고 있던 형사들, 험악하지만 사연이 있던 범인들이 등장했던 드라마 <수사반장>이 1971년 3월 6알 첫 전파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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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방송 초기에는 제작자와 연기자들의 열정에 비해 그 반응이 시원찮았다고 했다. 자신과 김상순 조경환 등 탈렌트들은 경찰 연기를 위해 경찰서 견학도 다니고 멋있게 범죄자를 제압하는 훈련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최불암은 당시 서른 한 살의 젊은 나이로 부하 형사 역의 김상순보다도 나이가 세 살이나 적었던지라 중년의 반장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머리를 희끗하게 물들이고 이마에 주름살까지 그려 넣는 정성을 다해야 했다. (경향신문 1997.10.4 인터뷰 중) 수사반장 제 1회에는 이후 그후로도 오랫 동안 브라운관을 장식하는 여배우 김영애가 아리따운 여경으로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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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 드라마는 MBC 자체의 기획이라기보다는 정부의 지침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고도성장 시대는 수많은 시대의 멀미와 탈락과 아픔을 낳았고 범죄 또한 자주 그리고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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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들 때려잡는 뭐 그런 드라마 없나?” 고위층의 이런 뜻이 전달됐고 경찰 드라마가 기획됐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초반에는 별 인기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방송국에서는 조기종영의 뜻을 표했고 최불암은 이에 광고까지 직접 따내고 다니며 드라마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또 드라마 또한 생명력을 갖게 되면서 본연의 ‘계몽’ 아닌 사회적 리얼리티와 현실의 아픔을 건드리게 되면서 “빠라바라밤 빠라바라밤”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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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의 극중 역할은 ‘박 반장’이었다. 그가 하얀색 (흑백TV로는 하얀색으로 보일 밖에) 바바리 코트를 입고 골목을 걷다가 범죄자의 습격을 받아 쓰러지는 장면은 내 5살 무렵의 몇 안되는 기억으로 남아 있거니와 바바리코트의 박 반장은 그로부터 한참 동안이나 도무지 탤런트 최불암과 떨어지지 않는 이미지였다

.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최불암에게 바람난 남편을 잡아 달라고 쳐들어온 부인도 있었고, 엉뚱하게 최불암을 찾아와 “새 사람이 되겠습니다.”고 눈물을 흘리는 전과자들도 숱했다고 하니까. 우리의 최불암 아저씨도 훌륭했다. 그들에게 “행상이라도 하라”며 사준 리어카가 한 두 대가 아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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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일이지만 수사반장을 그렇게 많이 봤어도 스토리 전편이 기억나는 것은 별로 없다. 기억의 잔상에 남아 있는 것은 사건의 고비고비마다 상대를 측은하게, 다 안다는 눈빛으로,“왜 그랬니? 이놈아” 하는 아버지의 눈빛으로 쳐다보던 박 반장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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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아마도 최인호의 소설의 모델이 됐고 다른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카빈총 강도 사건, 자신의 가족을 인질극 끝에 죽여 버렸던 사건을 극화했을 때, 나는 그 스토리는 거의 기억나지 않와 자살로 끝난 그 현장에서 박반장이 실려 나가는 시신을 보면서 지었던 표정만큼은 선연하게 간직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참담함과 경찰관으로서 이런 참극을 막지 못한 죄책감, 인간으로서 못볼 꼴을 봐야 했던 자괴감 등이 뒤범벅이 되어 말없이 시신들을 쫓던 그 얼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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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들어 볼까. 무슨 사연인지 사람을 죽여 장독대에 감췄던 젊은 여자에게 최불암이 장독을 열어 보라고 한다. 이미 박 반장은 그녀가 범인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독을 열자 나타난 것은 간장 뿐. 코너에 몰리다가 벗어난 듯 반색한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됐죠?라고 묻자 박 반장은 이렇게 얘기했다. “한 번 저어 봐. 손을 넣어서.” 그때 무너지는 여자, 그리고 그를 냉철하게 지켜보면서도 득의양양하기보다는 안타까와했던 우리의 박 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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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실과도 다른 점은 많았다. 그 시절 강력계 형사들은 수사반장처럼 신사적이지 않았고 때려 조지고 고문을 통해 답을 내는 경우도 많았기에 어떤 범죄자들은 경찰들에게 “왜 수사반장처럼 안하냐.”고 했다가 작살이 나게 두들겨 맞기도 했다고 한다. 또 우리는 <살인의 추억>에서 보았지 않은가. 연쇄살인범을 쫓다가 시위 진압에 동원되어 여학생의 머리채를 잡아채야 했던 강력반 형사의 슬픈 리얼리티를. 하지만 <수사반장>은 나쁜 놈들 때려잡는 정의의 경찰의 구도에서 벗어났고 (또는 벗어나게 됐고) 그로 인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드라마로 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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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이런 기억. 데이트하던 남녀가 불량배들의 습격을 받는다. 남자는 그 자리에서 도망갔던지, 빌었던지 하여간 혼자 무사했고 여자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는다. 이에 한맺힌 남자는 깡패들을 기어이 찾아내 그들을 죽인다. 남자를 체포하는 수사반장. 그때 남자의 표정과 박 반장의 얼굴. 말없이 남자의 등을 떠미는 조경환 형사와 씁쓸하게 고개를 돌리는 김상순 형사. 적어도 그 순간 나에게 그들은 탤런트가 아니었다.

“씨바 이 새끼를 잡아넣는 게 맞는 거야?” 하면서 자기들끼리 투덜거리면서 퇴근해서는 자기들 같아도 그랬을 거네 그러면 안되네 하면서 말싸움할 법한 형사 아저씨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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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반장>은 80년대 초반 1차 폐지됐다. 그 이유 또한 웃긴다. 최불암씨의 증언. “5공 출범 이후 새로 온 사장이 드라마 세 개를 폐지시켰어요. <113수사본부> <암행어사> <수사반장> 이유는 5공에서는 반공태세가 잘 돼 있고 암행할 이유도 없고 치안도 안정돼 있으니 이런 드라마는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다는 거였죠.” 그러나 5공의 판단은 틀렸다. 시청자들은 수사반장의 폐지에 항의했고 얼마 뒤 부활했고 80년대 10대 사건 시리즈를 재연하면서 그 화려한 막을 내렸던 것이다. 사회가 발전할 수록 범죄의 그늘은 깊어졌고 그 그림자는 빛의 세기만큼이나 칠흑같이 검었던 것이다. 박반장이 남긴 명언처럼 “빌딩이 높아질수록 그림자는 길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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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생 최불암 박반장은 아직 생존해 있지만 조경환 형사와 김상순 형사, 막내 형사 노릇 했던 남성훈 형사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다시금 그들의 명복을 빌며 아울러 우리 곁에 있는 수사반장과 형사, 그리고 수사반장에서 40여 회에 걸쳐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저지른 이계인씨, 역시 범인역 단골이었던 변희봉씨 등의 건승을 기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빠라바라밤 빠라바라밤 띠 띠리 디리리리 빠라바라밤 빠라바라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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