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라 토론

in #kr9 months ago

돌아오라 토론
.

image.png

미국의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민주주의는 가능한가>라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선거의 민주성은 투표 자체보다도 선거 과정의 정치적 논쟁이 어떤 성격의 것이냐에 달린 문제”라고 말이다. 즉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보다도 선거 과정에서 어떤 토론이 일어나고 전개되고 결과를 도출해내는가의 문제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뜻이겠다.
.
원래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이다. 잡음 없는 일사불란, 이의 없는 대동단결 따위는 일단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토론 없는 민주주의란 육수 없는 평양냉면이요 고추 안들어간 짬뽕인 것이다.
.
그런데 모든 주제에서 토론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는 불필요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쓸모가 없어지기도 한다. 우선 미추(美醜)의 영역에서는 토론의 의미가 없다. 저 여자가 예쁘고 저 남자가 잘생겼고는 보는 사람 눈과 취향에 따라 다른 법이다.
.
하다못해 누구는 손예진이 제일 예쁠 수 있고 전지현을 최고로 치기도 하며 현빈에게 넋을 잃기도 하고 공유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우기도 할 것이다. 이걸 토론할 수는 없다. 이걸 토론하자고 우기는 사람은 바보 아니면 정말로 심심한 사람이다.
.
토론은 시비(是非)를 가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 서로의 옳음을 입증하고 상대방의 그름을 지적하며, 또 다시 논리적 공박을 거치면서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설득당할 때, 철저하게 보장된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기반하여 거리낌없는 토론이 이뤄질 때, 기탄과 성역 없이 서로의 논리를 마음껏 펴고 근거를 댈 수 있을 때 시비는 가려진다.
.
물론 자신이 옳다고 고집할 수도 있고, 네가 틀렸다고 우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토론을 보고 듣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과 결정의 기회를 제공한다. 즉 시시비비의 영역에서 토론은 유익하고 그 의미가 가장 드높다.
.
그런데 선악(善惡)의 문제가 되면 토론은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우리가 정의고 우리에 반하는 이들은 불의라는 믿음이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토론은 요식행위로 전락하거나 ‘우리의 결의’를 위한 장식품으로 떨어지거나 극악한 경우 ‘대의에 어긋나는’ 이들에 대한 인민재판 논고로 탈바꾸하는 것이다.
.
과거 주사파들이 즐비하던 시절 (내 소중한 친구들도 많았으니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에는 “김일성 나쁜 놈” 했다가는 토론은커녕 주먹다짐 안하면 다행이었다. ‘김일성 나쁜 놈’은 사실 시시비비의 영역이다. 왜 나쁜지 아니면 왜 위대한지 근거를 대며 토론하면 된다. 그러나 이미 ‘김일성 나쁜 놈’은 선악의 영역에 들어 있었다. 일단 그런 말을 하는 놈이 미제의 프락치인데 더 할 말이 뭐가 있었겠나.
.
개인적으로 요즘 우리 주변 토론의 무대가 싸그리 ‘선악’의 강역으로 편입되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 우리 편과 비슷한 말을 하지 않으면 배신자에 변절자에 수박이네 뭐네 하면서 ‘틀린 주장’을 하는 이가 아니라 ‘나쁜 놈’이 돼 버리는 것이다.
.
아울러 우리 편에 선 사람들, 그 중에서도 리더급 인사들은 무슨 일을 해서든 ‘보위’해야 하는 ‘정의의 화신’으로 등극한다. 이 상황에서는 토론이 이뤄지지 않는다. 토론은 무슨 토론. 그렇게 말하는 놈들은 다 나쁜 놈이고, 이해할 수 없는 놈이고, 저주받을 놈이고, 상종 못할 놈인데. .
.
처음으로 돌아가자. 그럼 과연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딱히 군부독재도 없고 대통령 맘에 안들면 탄핵도 해 치워 버렸으며, 선거도 또박또박 하고, 무서운 ‘민심’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으니 우리는 민주주의를 영위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반대다.
.
적어도 ‘토론’이 두려운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무슨 변을 당할까 두려운 시민은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있지 않다. (여기서 또 민중은 개돼지 했다가 박살났던 교육부 각료 끌고 와서 그건 뭐냐고 묻는 모지리는 없기를 바란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근거 갖추고 예의 지키며 다투는 게 아니라 “너는 어느 편이냐”를 묻고 “그런 말을 하다니 너는 나쁜 놈”이라고 규정짓는 나라는 아무리 잘나 봐야 민주공화국보다는 70년대 캄보디아나 60년대 중국에 있었던 ‘인민공화국’에 더 근접해 있다.
.
토론은 상대방을 누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토론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민주당 박지현 비대위원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별 관심이 없다. 그를 성토하든 욕설을 퍼붓든 부산 말로 ‘깔찌뜯든’ 내 알 바 아니다.
.
그런데 그런 뜨거운 언설들을 통해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어쨌건 이 정권 5년이 너무 싫어서 평생 처음으로 윤석열 찍어 본 사람들, 왔다 갔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바꿔야 할 거 같아서 넘어간 사람들이 ‘설득’될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박지현 코를 납작하게 하고 납작 엎드리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언제부터인가 나는 토론이 그립다. 미추의 취향 싸움이 아니라 선악의 아마겟돈이 아니라 시와 비를 가리며 상대방을 존중하면서도 매섭게 그 허점을 찌르고 또 받아내며 상대방을 설득시키거나 설득당하거나. 무엇보다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토론 말이다. 대체 언제부터 우리 주변에서 토론이 사라졌을까. 30년 전 영화 속 터미네이터는 용광로에 들어가면서 “I will be back!”을 폼나게 외쳤지만, 우리들의 토론문화는 ‘정의’의 용광로 속에서 분해된지 오래인 것 같아 슬프다.
.
P.S 1. 이 글을 읽으면서도 부글부글 이 씹선비같은......욕을 머금는 사람 분명히 있다는데 5백원.
.
P.S 2. 그래도 유튜브 홍보는 계속된다.....
'정의'가 '광기'와 연결될 때...... 문화혁명의 추억

Coin Marketplace

STEEM 0.19
TRX 0.06
JST 0.025
BTC 22723.71
ETH 1552.56
USDT 1.00
SBD 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