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대의 논쟁적 한국인

in #kr2 months ago

2012년 9월 3일 20세기 최대의 논쟁적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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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은 누구일까? 6.25 전쟁을 일으키고 북한 왕조를 창시한 김일성일 것 같기도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인들은 김일성? 뭔? 하면서 어깨를 으쓱할 것 같다. 박정희는 이름값만 보면 그에 미치지 못할 것이고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김대중 정도면 김일성을 능가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사람의 명망에는 한 수 접어야 할 것 같다. 바로 통일교 교주, 공식 이름으로 하면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총재 문선명이다. 그가 2012년 9월 3일 우리 나이 아흔 셋을 일기로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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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반세기 훨씬 전부터 논쟁적 인물이었다. 그 자신의 고백이 이렇다. “나는 이름 석 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세상의 문제 인물입니다. 돈도 명예도 탐하지 않고 오직 평화만을 이야기하며 살아왔을 뿐인데 세상은 내 이름자 앞에 수많은 별명을 덧붙이고 거부하고 돌을 던졌습니다.” 명예는 몰라도 돈을 탐하지 않았다는 건 그리 믿기지 않는다. 그는 대단한 종교 사업가였다. “미국이 기침하면 폐렴 걸리는 나라” 개발 도상국의 중학생이던 나는 월간 조선에 실렸던 오효진 기자의 통일교 르포를 보면서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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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종종 우리나라 신문에도 등장하는 유수의 미국 신문 워싱턴 타임즈와 통신사 뉴스월드의 사주이며 심지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까지 사들이려고 했는데 미국의 상징 같은 건물을 뭔가 요상해 보이는 동양인에게 팔 수 없다는 여론 때문에 마지못해 접고 말았다는 기사는 충격 그 자체였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기사 속에서 문선명 총재는 엄청난 정력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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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자식을 예수의 제자 수까지 낳겠다고 했는데 이미 기사 속에서 열 두 명의 아이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부인 한학자 여사는 너무 많은 아이를 낳아 자궁이 약해졌다고 돼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둘을 더 낳아서 14명의 자식을 두었다. (혼외 자식 제외하고 정실(?)로만) 무굴 제국의 샤 자한의 왕비로 타지마할의 주인공인 뭄타즈 마할이 열 네 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었으니 문선명이나 한학자나 어지간한 사람들은 범접하기 힘든 기운을 지닌 사람들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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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다. 홍경래가 마지막 농성을 벌였던 곳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정주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별무리같은 인물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춘원 이광수와 김소월, 그리고 시인 백석이 정주 출신이고 조선일보를 세운 방응모도 그러하며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도 정주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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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문선명도 이름을 보탠다. . 1920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문 총재는 16살 되던 해 예수님을 보았다고 한다. “기도로 꼬박 밤을 새우고 난 부활절 새벽에 예수님이 내 앞에 나타나셨다. 예수님은 ‘고통받는 인류 때문에 하나님이 너무 슬퍼하고 계시니라. 지상에서 하늘의 역사에 대한 특별한 사명을 맡아라’라고 말씀하셨다.”(문선명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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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체험을 중국에서 했으면 태평천국의 홍슈취안이 될 수도 있었겠으나 좁은 반도에서 스무 명 남짓한 ‘가정교회’를 세우는데 그친 문선명은 해방 이후 북한 정권의 종교 탄압으로 흥남 감옥에서 몇 년을 썩는다. 국군 북진 후 풀려난 문선명은 평양에 갔다가 즉시 남하하는데 그가 임진강에 이르매 딱 그 순간 강이 얼어붙어 무사히 건넜고 그 뒤는 유엔군이 막아버려 다른 사람들은 건너오지 못하거나 수장되었다고 한다. 문선명판 출애굽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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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출애굽을 거쳐 이른 가나안 땅의 초입은 다름아닌 부산이었다. 부산에 가면 범냇골이라는 곳이 있다. 원래 가마솥같은 산들이 늘어섰다고 부산(釜山)이거니와 범냇골 근처는 숲이 울창하여 호랑이가 출몰하여 시냇물로 목을 채우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범냇골이다. 요즘 가 보면 호랑이는커녕 도둑괭이도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그런데 부산에 흘러든 삼팔따라지 문선명의 형편이 좋을리 만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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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걸식하다시피 했고 쫄쫄 배를 곯던 문선명이 겨우 머리를 대고 누우 자리를 삼았던 곳이 범냇골의 움막이었고 그 근처 바위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곳이 전 세계 통일교 신자들이 한 번쯤은 돌아보기를 소망한다는 통일교의 메카 범냇골 성지고, 통일교 신도들이 어루만지며 감격해 하는 ‘눈물의 바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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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든 뭐든 한 종교를 만들고 추종자를 거느린다는 것은 일단 보통의 인간이 아니다. 이미 1954년 그는 ‘이대 사건’을 일으킨다. 이대 음대 성악과 강사였던 양윤영을 전도(?)했고 양윤영이 이대 교수들을 끌어들이고 또 교수들이 학생들까지 포섭하면서 이대 영문과 영어시험 답안지에 학생 7명이 문선명의 통일교 교리를 주구리장창 써내는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당연히 난리가 났고 한국 기독교에는 통일교 비상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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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단이고 아니고는 관심도 없고 따지고 싶지도 않거니와 그저 걸물로서의 그의 생을 더 더듬어 본다. 그는 성지(聖地) 한국을 떠나서 미국으로 가는데 하여간 탁월한 사업 수완과 신도들의 헌신과 헌납으로 엄청난 부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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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여 그는 두말이 필요없는 극우였다. ‘국제승공연합’을 만들어 반공 운동에 앞장섰고 80년대 전두환 정권 때 웬만한 대학마다 있던 ‘원리연구회’는 당시 학생운동권들의 철천지원수였다. 그러던 그가 놀라운 일을 벌인다. 1991년 덜컥 북한을 방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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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방문하긴 했는데 거기서 상당히 막 나갔다. 당시 동구가 몰락한 뒤라서 그런지 북한 관리들더러 공산주의 포기하라, 남한에 심어놓은 고정간첩들 다 자수시키라, 주체사상으로 통일 안된다. 6.25 남침을 세계에 사과하라고 책상을 치며 포효했던 것이다. 뭐 이런 영감이 있나 북한 사람들은 사색이 됐을 것이다. 문선명을 수행한 사람들도 발을 동동 굴렀는데 문선명은 태연했다고 한다, “뭐 그런다고 김일성이 날 쫓아내면 배포없는 사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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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과 배포가 맞았는지 아니면 그의 돈과 배포가 맞았는지 김일성은 허물없이 문선명을 대하고 의형제까지 맺는다. 1920년생 문선명은 1912년생 김일성에게 서슴없이 ‘형님’을 부르짖고 김일성도 앙천대소하며 끌어안았다고 한다. 그즈음 나는 학교에서 NL친구들이 이 광경을 어떻게 보나 궁금해서 문건을 훔쳐 보다가 크게 웃은 기억이 있다. 문선명이라면 이를 갈던 친구들이 ‘문선명 총재’라고 직함을 깎듯이 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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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김일성은 문선명과의 인연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당부를 남겼고 김정일에게도 김정은에게도 이 유지는 전해졌다. 문선명 쪽도 마찬가지여서 문선명의 심복이라 할 박보희는 한국 정부 허락 없이 방북하여 조문을 감행했다가 한동안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때 문선명은 머뭇거리를 박보희에게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압록강 헤엄쳐서라도 가서 조문하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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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대규모 통일교 행사가 있었다. 그때 멋도 모르고 가족들과 더불어 상암동 하늘공원에 놀러갔던 나는 완전히 마비된 상암동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몇 시간을 갇혀 있었다. 전국의 대절버스가 총집결한 것 같은 버스의 장사진. 그 버스에서 꾸역꾸역 몰려나오던 수많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넘어 전율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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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다 통일교 신자들이라니. 그들의 들뜬 표정 을 하나 하나 뜯어보면서 대관절 문선명은 누구였을까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통일교의 주선으로 한국인과 국제결혼해서 살고 있는 필리핀 신부들을 취재할 때 한 필리핀 신부가 어설픈 한국 말로 ”문선생님 믿으세요 복받아요.“ 하며 나를 끈덕지게 전도(?)하려 했던 기억도 되살아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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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종교를 믿고 신을 인정하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종교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하기야 문선명보다는 전광훈과 그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100배는 더 이해할 수 없지만. 20세기 최고의 종교 사업가, 주체사상의 체현자인 위대한(?) 수령과 의형제를 맺은 반공주의 수장 문선명은 지금 그가 호언했던 대로 모세와 예수와 석가와 공자를 다 부하로 거느리고 (뻥을 치려면 이 정도는 쳐야....) 천국을 노닐고 이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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