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9월 4일 비극적 국보 274호의 탄생

in #kr2 months ago

1992년 9월 4일 비극적 국보 274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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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 최대의 영웅은 누구일까? 하는 질문이 나온다면 열에 대여섯은 이순신 장군을 들 것이다. 관변(官邊) 영웅이라고 찡그릴 사람도 있겠고 무슨 성웅(聖雄) 어쩌고는 좀 무리라는 의견도 나오긴 하겠지만 이순신은 소소한 폄하 따위는 넘어설 만한 위업을 남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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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충무공 이순신은 당시 조선의 멸망을 막기 위해, 또 일본의 한반도 점령을 최소 350년 정도는 늦추기 위해 하늘이 낸 사람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영화 <엘 시드>에서 주인공 엘 시드가 발렌시아 왕관을 거부하며 자신은 스페인 왕의 신하일 뿐이라고 외치자 엘 시드의 무슬림 동맹군 영주가 이렇게 말한다. “참으로 고귀한 인간이다. 저 한심한 왕에게 저런 신하라니.” 이건 이순신과 선조의 관계에도 들어맞는 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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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죽었을 때 온 남도 백성들이 곡을 했고 관이 아산으로 향할 때 고을마다 선비들이 몰려나와 제문을 짓고 시를 써서 장군을 추모했다는 기록, 함께 싸웠던 전라 좌수영 부하들, 그 새까만 수군들이 정성을 모아 세운 타루비, 이순신 이후로 덕수 이씨 가문들은 이순신의 이름에 눌려 대대로 무반(武班)으로 나가야 했던 사실 등등으로 비춰 보면 이순신에 대한 외경심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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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면 당연히 ‘오버 페이스’도 발생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이순신 숭배는 유난했다. 학생들은 서울에서 아산까지 국토대장정을 하며 현충사 참배를 해야 했고 수학여행 코스 중 현충사는 반드시 들러야 할 곳에 들었다. 현충사 관리소장으로 무려 1급 공무원을 주로 내려보낼 정도였다면 ‘각하’의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좀 오버였다. 그런데 오버는 대통령만 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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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의 영웅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승전 축하연에서 누구가 ‘영국의 넬슨이요 조선의 이순신보다 큰 공을 세웠다’고 치하하자 도고 제독은 나를 넬슨에 비하는 것은 모르겠으나 이순신에 비할 수는 없다. 나 같은 것은 이순신 옆에도 설 수 없다고 말했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돌고 있으나 이는 도시전설이다. 어떤 공식 기록에도 도고가 그런 말을 했다는 흔적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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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대첩에서 이순신에게 거의 죽을 뻔했던 일본군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가장 미운 자도 가장 흠모하고 숭상하는 자, 가장 죽이고 싶은 자, 또한 가장 차를 함께 마시고 싶은 자 모두 이순신이다.”라고 멋진(?) 말로 이순신을 기렸다는 얘기도 있으나 이것도 근거가 없다. “일본인들도 이순신을 존경한다.”는 신화를 만들고 싶었던 한국 사람들의 창작력의 산물일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어쨌든 그만큼 이순신은 한국 사람들의 자긍심이었고 요즘 말로 하면 최애(最愛) 위인이었다. 하물며 이순신의 후예를 자처하는 대한민국 해군에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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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되자마자 독립국가 해군의 중요성을 인식한 이들이 해군을 창설하고자 결의하고 지원자를 모집하면서 “‘우리의 바다는 우리가 지키자. 조국의 바다를 지켜나갈 충무공의 후예를 모집한다.”라고 선언한 것이나 1947년 최초의 함정을 진수했을 때 그 이름이 ‘충무공’이었던 것은 빼도박도 못하게 당연한 일이었다. 더하여 해군은 오랫 동안 지녀온 열망 하나가 있었다. 거북선을 비롯한 충무공의 자취를 찾아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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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부터 간간이 충무공의 흔적을 찾고자 하는 시도는 있었지만 1970년대에는 해군과 문공부가 직접 개입하여 실질적인 탐사 작업에 들어간다. 주로 탐사의 대상이 된 해역은 조선 함대가 하룻밤 사이 몰락해 버린 칠천량 해전 추정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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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UDT 대원들이 동원돼 수중 휴대용 소어장치까지 사용한 거북선 잔해찾기는 작년부터 시작돼 금년으로 2차 답사가 끝났는데 아직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하고 있다.” (1970년 8월 21일 경향신문) “지휘함인 해군 함정을 따라 탐사선이 40여 종의 각종 최신 과학 기재를 동원, 한 블록씩 정밀 탐사를 벌였다.” (경향신문 1973년 7월 6일) 등등 심심하면 해군의 거북선 찾기 기사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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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고 이순신에 목숨 걸던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정권이 두어 번 바뀌었어도 이순신에 대한 해군의 집념은 여전했다. 1989년 해군은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을 새롭게 조직하고 해저 유물 탐사에 나섰다. 칠천량, 당포, 노량 등 왕년의 격전지 5개 구역의 1백50제곱 킬로미터 영역을 샅샅이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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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과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조선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조각과 칼 2점, 국자 1점, 3점의 뼈, 그리고 배 파편 40여점.” (경향신문 1990년 8월 4일) 그래도 해군은 찾고 싶었다. 탐사선에는 이런 슬로건이 붙어 있었다. “우리는 기필코 찾아낸다.” 그러나 바다는 너무 넓었다. 탐사를 하다가 김 양식장 수역을 건드려 어민들의 욕설을 들은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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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면 감천인가 마침내 해군 발굴단은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둔다, 1992년 8월 통영 앞바다에서 ‘거북선에 장착됐던 것으로 보이는 별황자총통을 건져 올린 것이다. 친절하게도 포신에는 ’龜艦黃字驚敵船 一射敵船必水葬‘이라는 칠언시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번역하자면 “거북선황자총통 적선을 놀라게 하고 한 번 쏘아 반드시 적선을 수장하리라.” 제작 연대도 만력(萬曆 : 명 신종의 연호)이 떡 박혀 있었다. “진짜다!” 난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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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도 흥분했고 해군 부대마다 “一射敵船必水葬” 구호가 치솟았다. 거북선에서 일본군을 쳐부순 총통이 임진왜란 400주년을 기념하듯 깊은 해저에서 벗어나 해를 본 것이다. 유물은 일사천리로, 전례 없이 파격적인 속도로 ’국보‘가 됐다. 1992년 9월 4일 정부 관보는 해군이 건져올린 별황자총통을 국보 274호로 지정했음을 밝혔다. 발견된지 16일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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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4년 뒤 맹랑한 일이 벌어진다. 순천지검의 지익상 검사는 문화재보호구역에서 어로 활동을 주선해 주겠다며 어민들에게 돈을 뜯어 요로에 뇌물로 뿌린 이를 심문하다가 황당한 이야기를 듣는다. “제가 그..... 거북선에서 국보 발견한 황모 대령한테도 돈을 줬어요. 그런데 이상한 얘기를 들었어요. 그 국보라는 거..... 가짜 총통 만들어 바다에 빠뜨렸다가 건져 올린 거라고.” 입을 딱 벌린 지익상 검사는 황대령을 심문하다가 더 크게 입을 벌려야 했다. “가짜가...... 맞습니다.... 별다른 발굴실적이 없어서 발굴단이 해체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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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였다. 별황자총통 모형을 만들어 각국 해군과 교류시에 선물해 왔던 해군은 얼굴을 들 곳이 없어져 버렸다. 해군만큼이나 쥐구멍을 찾아야 했던 이들은 문화재관리국 사람들이었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이상한 구석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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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황자총통을 전후해서 발굴단은 몇 개의 총통을 건져 올렸는데 그 해역은 잠수부들의 조개 채취 등이 빈번했던 곳으로 수십 년간 못봤던 총통이 쏟아질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별황자총통의 상태는 지나치게 깨끗했으며 거북선은 ’귀선‘(龜船)이라 불렸지 ’귀함‘(龜艦 )이라 쓰인 용례가 없었고 수장(水葬) 같은 단어도 당시 쓰이던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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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으로 문화재연구소에서 발견 이후 진행된 성분 검사 결과 다른 총통류와 달리 아연 성분이 나왔다는 사실을 보고했지만 이미 국보로 정해진 뒤였으며 “국가 기관인 해군이 발견한 것”이라는 이유로 상큼하게 묵살해 버렸다. 나랏밥 먹는 사람들의 동맹플러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의 불행한 결합이었고 충무공의 자취를 쫓는 갸륵한 정성과 계급 정년에 걸린 군인의 다급함이 몸을 섞은 불륜이었다. 피해자는 대한민국 국민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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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이라고 해야 할지 무엇이라고 할지 잘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프라이드를 ’객관적인 사실로‘ 또는 자신들의 ’실제 경험으로‘ 받아들인 뒤 그에 대한 이의 제기에는 지극히 냉정하고 배타적이 된다. 나아가 그 프라이드를 훼손하는 움직임을 쉽사리 역적으로 몰고 불경죄로 다스리려는 성정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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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바다에서 건져 올린 총통을 보름만에 국보로 지정하겠다고 할 때 반대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을까. 하지만 “조금 더 조사해 보고 나서..... ”라고 누군가 얘기했다고 해도 “분위기 파악 못하네. 400년만에 거북선 총통이 나왔다고 이 사람아.” 호통에 군소리를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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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은 크게든 작게든 반복된다. 황우석 때 우리 사회가 얼마나 대단한 코미디를 펼쳤던가. 월드컵에 나간 한국 축구팀이 애매한 골을 허용했을 때 오프사이드가 아니며 정당한 골을 먹은 것이라고 얘기한 해설자가 무슨 봉변을 당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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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도 국보 274호는 영구 결번이다. 400년 뒤에 만들어 바다에 던졌다가 건져올린 별황자총통은 당연히 국보에서 제외됐지만 그 자리를 채워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긴 어느 국보인들 그 번호(?)를 달가와하랴. 우리는 그 번호를 부끄러움으로, 그리고 자성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좋은 게 좋은 거지만 너무 좋아하지는 말자. 흥분하지 말자. 내 보기 좋은 일에 찬물 뿌린다고 몰매 주지 말고 그 사람 말에 귀 기울여 보자는 얘기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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