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사랑은 있어도 쓸쓸함이 맵다... [자작글과 음악]
승화님. 글을 남기고 싶은데 어디에 남길까 하다가 이 공간이 떠올랐어요.
손님이 뜸한시간에 무라카미하루키의 [잡문집]을 읽고 있었어요. "나는 소설가로서 주위가 고요히 가라앉은 시각에 그 흐르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을 때가 있다."는 구절을 읽는 중 머릿속에 기억이 떠올랐어요. 제 [환상의 빛] 포스팅에서 승화님과 나눈 댓글에서 떠올랐다 했던 기억 하나가요. 아니 이번엔 장면이 두개 였어요. 그 기억 이전의 장면이요.
x-wife와 헤어진 건 결혼 후가 처음이 아니었어요. 연애시절 1년이 채 안되었을 때 첫 번째 헤어짐이 있었죠. 그 때가 7월즈음인걸로 기억해요. 이별직후 약 한달의 시기는 제 인생에서 단기간 가장 많은 책을 읽은 시기였어요. 잠이 든 시간을 제외한 깨어 있는 시간을 견딜수가 없었거든요. 일을 할 때 멈추진 않는 생각들이 질식할 듯한 느낌을 주었고 책을 읽을 때가 되서야 비로소 생각을 멈추고 숨을 쉰다는 느낌이었어요. 잠을 잘 때, 일을 할 때를 제외하곤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거든요.
두 번째 기억은 그녀가 떠난 신혼집에서였어요. 멍하니 켜놓은 TV에 시선을 두고 있는데 당시 한창 인기방송이던 "꽃보다 할배"가 나왔어요. 화면에 나오는 파리의 전경을 보다가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파리는 신혼여행지였거든요. 이건 느낌이 아니라 가슴을 부여잡고 한참을 뒹굴정도로 정말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어요. 그 동안 한번도 겪지 못했던 당황스런 순간이었죠. 가뜩이나 생전 없던 성인아토피 증상(병명도 나중에 알게 되었죠)으로 괴로웠는데 숨까지 헐떡거리니 이대로 죽는가 싶었어요. 이 경험은 한 번 뿐이어서 병원은 가지 않았는데 그 후로 좋아하던 "꽃보다 할배"를 볼 수가 없었어요. 한 번은 또 그럴까 싶어 잠시 시험해봤는데 역시나 숨이 가빠오기에 급히 채널을 돌렸어요.
이번엔 이 두가지 기억이 떠오르며 이 감정의 이름도 함께 떠올랐어요.
"두려움"
물에 빠진 제 모습이 연상되더군요. 물에 빠져 허우적대며 질식해가는 저를 누군가가 구해 올려주었어요. 뭍에 나와 한참을 숨을 내뱉고 나서도 저는 구해준 그 사람을 붙잡고 있었어요. 어린아이처럼요.
그제서야 철학의 틀 안에서 안도감에 숨을 쉴 수 있던 제 모습과 그 철학을 꼭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제 내면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전 포스트에서 쏟아내면서 보이지 않던 "두려움"의 실체가 드러난거죠. 그제서야 보였어요. 제가 왜 결혼은 다시 하지 않으려하는지. 사랑을 원하면서도 막상 이성을 만나서는 자유를 더 생각하게 되는지. 쿵쿵 뛰는 설레임이 왜 사라졌는지. 생각의 깊이를 더해보면 현재 저의 내면과 말과 행동을 더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을거 같아요.
지금 제가 살아가는 방식의 근간이 된 철학자는 스피노자에요. 에티카에서 그는 두려움을 이렇게 정의했어요.
두려움이란 우리가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정도 의심하는 미래 또는 과거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비연속적인 슬픔이다.
지금은 "비연속적" 이란 말에 방점이 찍히네요. 차라리 지속적이고 연속되었던 감정이었다면 슬픔이란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을텐데. 드문드문 찾아오는 감정이기에 더 알아차리기 어려웠던 거 같아요. 이 감정이 그리움인지, 미련인지, 후회인지, 회한인지 말이죠.
그래도 더 들여다봐야 할 것 같아요. 기억의 한 단면에서 비춰진 감정의 한 실체가 보여 잠시 환해지는 느낌이긴 했지만 이제 시작인거겠죠. 지난 감정의 실체가 비춰진 그 순간은 기쁨의 감정이 느껴져서 좋으네요.
지금까지 적은 이 말들을 남기고 싶었어요. 이후 어떻게 할지는 다음 포스팅 준비하면서 찾아가 보려고 해요. 어제도 그 포스팅을 준비하느라 영화를 보고 자료를 좀 찾았거든요. 일단 남기고 싶은 말들을 남겨서 안도감이 드네요.
문득 왜 이 공간일까?하는 생각을 하니 승화님이 남기신 댓글이 떠올라요. "제게는 너무 조심하지 마시고 오래 사귄 친구처럼 편히 하세요. 아마 제가 어마어마하게 나이 차이가 나는 누나일테니까요"
제가 누나가 없거든요. 또 뵈요~ :)
류이님 글 읽고 싶어서 쓰신 댓글 구경하고 있었는데 댓글로 포스팅을 역시 댓글러 ...저는 댓글러 클라스에 못들어서 못할듯요 ㅠㅠ ㄷㄷㄷ 다음 포스팅을 준비중이시라니 조만간 읽을수 있겠네요 ㅎㅎ 안부 남기고 갑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