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시평 : 비의 연가, 최정재 @Redsign

in #kr7 years ago (edited)

비의 연가, 최정재

바다가 슬픈 노을 빛으로 물들이기 전까지
당신과 난 마지막 인사를 나누어야 합니다.
지난 여름 작렬했던 태양의 가슴은
이제 단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한없이 따스했던 당신의 가슴도 손길도
이젠 차갑게 얼어붙어
당신과 내가 서 있는 이별의 빈 들엔
눈물 꽃만이 서럽게 출렁이고 있습니다.
삭막하고 정이 메마른 이 세상에서
나의 진실을 진실로 받아 주던 단 한 사람
나의 추함과 역겨움까지도
기꺼이 다 받아주고
나의 인격을 진심으로 존중해 주던
단 한 사람
당신은 날 위해 가시나무에 몸을 던지고
기쁘게 죽어간
모순투성이 가시나무 새였습니다.

당신의 육신은 한 줌 재 되어
바다 바람에 날려가고
그 바람은 이제 기나긴 기다림이
되어 버렸습니다.
거짓없이 웃어주던 그 수수한 웃음
비오는 날 안개꽃 한 묶음과
백합 한 송이면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던 당신
당신을 만나는 날이면
사춘기 소년처럼 늘상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모르던 그 시절의 나
이 모든 것들이 헤어지메을
더욱 서럽고 아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회색 빛 가랑비 사이로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그 슬픈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너무 슬퍼....
한 소절만 들어도 가슴이 미어진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다던 그 노래...
그 노래의 슬픈 가사가
우리들의 슬픈 운명을 미리 예견한
노래였었다니...

이렇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보다도 고독이라는 그 녀석을
더 좋아하던 당신
내가 당신 얼굴에 묻은 빗물을
닦아주던 그 어느날
흠칫 놀란 나를 보며
힘겹게 웃어주던 그 눈동자 속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너무나도 깊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늘 함께 깄던 외진 골목 카페 안에서
그 슬픈 노래가 다시 흘러 나왔을 때
우린 슬픈 노래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으려
잇몸을 깨물며 눈물을 참았지만
금새 창 밖의 빗물보다도
더 많은 눈물을 토해내야 했습니다.
다정한 연인들은
너무도 행복하게 빗속을 걸어가고
낙서장 위에는 그대 이름 석자와 함께
죽음 ......
죽음의 실체 ......
인간 능력 밖의 일 ......
신의 영역 ......
아, 정녕 죽음은 ......
사라짐 ......
끝 ...... END ......
영영 ......
따위의 낙서들이 어지러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세상이 너무도 더럽고 싫어서
우리들에게 이토록 가혹한 형별을 내린
신에 대한 증오심과 원망감으로
소주병 서너 개가 길가에 쓰러지고
나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지는데
당신의 이름보다 더 간절히 불러본 것은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이었습니다.
쓰레기통을 부여안고 엉엉 소리내어 울던
혼미한 기억 속에 어렴풋이 들려오던
지나는 사람들의 동정 섞인 그 소리,
그 소리가 아직도
내 귓가에 쨍하니 되살아납니다.

"저 사람 미쳤나 봐 ......?"
"누가 죽었나 보지 ......?"
"차 ..... 암 안됐다 ....."
"다 지 팔자지 뭐 ......"
"맞아, 다 지 팔자지 뭐 ...... 쯔쯔쯔 ......"
"그러니까 자기, 나 살아있을 때 잘 해.
괜히 나 죽고 난 뒤에 저 남자처럼 청승떨지 말구.
알았지?"

무지막지하게 긴 이 시의 본질은 마지막 부분에서 나타난다고 보았다.

'나의 슬픔은 다른 이에겐 그저 잠깐의 가십거리가 된다.'

마지막의 행인들의 대화에서 필자는 씁쓸함을 느꼈다. 또한 당대에는 유명하지 않았던 SNS 속 실제로 올라오는 글들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의 슬픈 이야기, 분한 이야기, 억울한 이야기, 이별 이야기 등을 올리며 그것을 보고 공감하면서 자신의 연인을 태그해 그 연인에게 '그러니까 너는 그러지마.', '그러니까 나 있을 때 잘 해??' 라고 이야기하는 요즘의 사람들. 이것은 이야기 속의 사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게 아닌 단순히 가십거리로 전락시키는 일이다. 그것은 악의가 없는 악행, 공감을 가장한 동정이다. 다른 이의 불행을 보며 자신은 행복하다며 웃는 그런 모습들이 필자는 씁쓸하기도, 가소롭기도 했다. 누군가의 불행을 통해 느끼는 상대적 행복이라니. 우습기가 그지없다.

사랑하는 이와 사별하고, 사별의 전 순간들을 홀로 곱씹는 남자의 모습과 그의 생각을 표현한 시구들에서 자주 사용되던 말줄임표(...)는 마치 화자가 읽는 이의 옆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한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다. 그 슬픈 감정은 너무 과잉되어 독자들에게 그 감정을 억지로 주입하려는 듯 보여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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