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photo] 철골의 꽃

in #kr6 years ago

주의: 상념의 파편만 어지러이 돌아다닐 글.


Oct. 2018, Seoul, Nexus 5x


유려한 날카로움이 마음에 들었다. 꽃이 빛을 낸다는 것은 얼마나 기이한가. 분절된 꽃잎 사이로 빛이 스며들면, 경계의 모든 곳에 꽃잎이 풍성하다. 기괴한가? 우리는 자연의 사물을 본따서 무언가를 만들고 자연의 선을 닮을수록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감상하곤 하지만, 특성의 일부를 인공적인 것으로 치환하여 보더라도 꽤 잘 어울리는 경우가 있다.

꽃에 뼈대가 들어갈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 하긴 우리가 바라보는 건 꽃이 아니라 꽃처럼 보이지만 관절을 가지고 있는 기계장치에 불과하다. 사실 뼈대는 식물보다는 동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가깝다. 뼈대를 가지고 있다는 건 몸을 지지한다는 것과 이를 바탕으로 움직임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꽃의 환영 앞에서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것은 꽃이거나 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미지에 곧잘 속아넘어간다. 우리의 눈 앞에서 꽃으로 보여진들, 사실은 꽃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이를 꽃으로 부를 수 있는, 꽃으로 생을 부여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단지 우리의 세계 안에서만.


Oct. 2018, Seoul, Nexus 5x


하지만 옆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저 것은 꽃인가? 줄기를 상상하면 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애초에 정면의 모습만 보더라도 꽃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으므로. 하지만 나는 측면의 모습에서 오히려 손가락이 늘어 뜨려진 듯한 인상을 받았다. 중력에 의해 기꺼이 오무려지는 손가락들, 전등을 쥐기도 쥐지 않기도 상당히 애매한 위치. 수동적인 것은 언제나 능동성을 예비해둔다.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능동이니 수동이니 하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개념들은 대비를 통해 결이 세세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능동이란 무엇인가 중력을 버티고 저 모습 그대로 버티고 있는 것이 어쩌면 수동처럼 보이는 능동적 저항을 뜻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것은 균형이지 않은가.


Oct. 2018, Seoul, Nexus 5x


모든 사물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제작되고 사용된다. 언제나 의도가 있다. 계단이 없었다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공간의 맥락은 사물들 간의 관계로부터 빚어진다.

우리의 공간은 어떠한가. 어떤 존재가 어디에 배치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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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스러운 작품이네요

실제로 보면 상당히 거대하고 묘합니다. :)

꽃 모양의 등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군요~^^

상당히 예쁩니다. 그리고 이 안에 날카로움과 단단함, 움직임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오싹하지요.

분절된 꽃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 ... 사진도 좋지만, 글이 더 탐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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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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