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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100%) De Profundis (6)

in #kr4 years ago (edited)

[106E] 예술적 관점에서 어떤 연극도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에 비하거나, 섬세한 관찰에 있어 암시적인 것은 없다. 그들은 햄릿의 대학 친구들이다. 그들은 그의 동료였다. 그들은 즐거운 날의 추억을 갖고 있다. 극 중에서 그들이 햄릿과 마주쳤을 때, 햄릿은 자신과 같은 기질의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무거운 짐 때문에 비틀거리고 있었다. 죽은 자들이 햄릿에게 지나치게 크고 가혹한 임무를 주기 위해 무덤에서 무장을 하고 나왔다. 햄릿은 몽상가이고, 행동할 것을 요청받은 것이다. 햄릿은 시인의 심성을 갖고 있으며, 자신이 잘 아는 이상적 본질 속의 삶이 아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구체적인 현실 속의 삶과 인과관계의 복잡성과 싸울 것을 요청받는다. 햄릿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햄릿의 광기는 단지 흉내 내기 위한 것이었다. 브루투스는 자신의 목적의 칼과 의지의 단검을 감추기 위한 망토로 사용했지만, 햄릿에게 광기는 나약함을 감추기 위한 단순한 가면에 불과하다. 공상과 농담을 하며 그는 지연의 가능성을 본다. 햄릿은 예술가가 이론을 갖고 노는 것처럼, 행동을 가지고 논다. 햄릿은 자신의 적절한 행동을 살피는 스파이를 자처하며, 자신이 하는 말을 듣는데, 그것이 '말, 말, 말'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의 역사의 영웅이 되려고 애쓰는 대신 햄릿은 자신의 비극의 구경꾼이 되려 한다. 햄릿은 자신을 포함해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의심은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데, 이는 회의주의에서 온 것이 아니라 분열된 의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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