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 7월 5일 목요일

in #kr6 years ago (edited)

요즘에 주변에 일이 좀 많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5월 말에 백수가 되었고 한달을 놀다가 지난 주 면접을 보았다. 예전엔 안그랬는데 그게 뭐라고 긴장이 되더라. 여차저차 면접을 마치고 다음주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사실 이번에 일을 하게 된 곳은 일이 쉽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공고를 보고 일찌감치 생각은 있었지만 엄두가 안나서 재고만 있었다. 그러다 문득 지금 이 나이에 힘들다고 하기 싫은 곳이면 앞으로는 더 할 엄두가 안 날거 같아 지원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내가 지원해도 안써주면 그만인데 참 쓰잘데기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여튼 들어가기로 확정됐으니 다행이다 싶다. 이것이 근래에 있었던 좋은 소식이었다.

적으면서 보니 정작 내가 신경쓰던 일은 되게 별일 아니어 보이는데 한달 정도 꽤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고, 친구의 시어머니가 암이라 했고, 곧 이어 친구도 건강에 이상이 생겨 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매우 마음이 좋지 않았다(다행히 친구의 종양은 양성이다).

그리고 내 외숙모..외삼촌이 나랑 나이 차이가 많지 않아서 사촌동생들이 이제 20대 중반인데 지난주 외숙모가 간암 3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숙모와 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 다만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외할머니를 나만큼이나 좋아해주는 맘씨 좋은 숙모였기에 마냥 고마운 마음이었다. 자각증상이 없어서 치료하면 금방 나을거라고 믿는 숙모에게 전이가 심해서 수술도 못한다는 이야기를 차마 못하던 삼촌이 외갓집에서 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다.

이제 27, 25살인 사촌 동생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나에게 비슷한 일이 있었던 때가 스물셋 이었는데 그때는 나도 정말 뭣도 몰라서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그때의 나는 어려서 엄마의 마음을 잘 알지 못했고, 엄마라는 역할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의 엄마를 생각지 못했던것 같은데 어느 시점이 지나니 앞으로 그걸 알 기회도, 나이가 들어가며 엄마와 이야기하면서 공감할 기회도 사라져 버렸다는게 미안하고 슬펐다. 지금 내 나이에 엄마가 갖고 있었던 무게감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그렇게 내가 생각지 못했던 인간으로서의 엄마를 생각하게 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제 50대 중반인 숙모가 그 가슴 아픈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지난번 명절에 뜬금없이 숙모가 구석에 있는 내 가방을 보며 진짜냐고 물었었다. 명품이긴 해도 많이 비싼건 아니어서 숙모 이거 그렇게 비싼거 아니에요 라고 말은 했는데 삼촌이 하나 사주지 않으신다며 서운한 소리를 하셨다. 삼촌한테 숙모 가방 하나 사주시라는 얘기를 하면서 속으로 자식들도 이제 다 돈 벌어서 제 앞가림도 하니 숙모도 고생 다 하셨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숙모는 그게 또 아니었겠지. 나중에 길 막힐까봐 먼저 출발하려는 나를 보고 숙모가 그러셨다. 너 참 좋아보인다고... 부럽다고...

나는 좋아보이지도 부러운 사람도 아니다. 정말 아주 가끔 예외적으로 내 헐렁헐렁한 모습만 보고 부침없이 살았을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제는 그렇게 봐주는게 오히려 고마운 일이라는걸 알 정도의 일들은 겪었다. 그런데 숙모가 그런 말씀을 하시니 뭔가 좀 짠한 마음이 들었었다. 결혼해서 아이들 둘을 키우고 정신없이 사시다보니 어느 순간 남들 다 가진 흔하디 흔한 명품 가방 하나 없는게 섭섭하셨나, 나중에 내가 여유가 되면 하나 사드리고 싶다 정도의 생각을 했었는데 몇달이 채 지나지 않아 이런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숙모 다음으로 마음에 걸린건 우리 외할머니다. 장녀인 우리 엄마가 많이 아파서 오랜 세월 걱정과 한숨만 가득이셨는데 이제 막내 며느리가 암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 외할머니는 어떤 마음일까... 삼촌에게 들어 알고는 계시지만 할머니와 직접 숙모의 이야기를 할 용기가 없어 아직 전화를 못드렸다. 연세가 연세이니만큼 몸도 안좋으신데 이번 일로 몸도 마음도 크게 상하실까 걱정이다.

이번 달에 지인들이 아프고 본인의 잘못이 아닌 일로 곤란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다. 그러다 듣게된 이런 엄청나게 나쁜 소식의 유일한 소용을 찾자면 나머지 다른 나쁜 일을 별일 아닌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나도 당장 내 앞에 벌어진 골치 아픈 일을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생각한다. 죽고 사는 일도 아닌데 이게 뭐라고....

나이를 거꾸로 먹지 않는 이상 앞으로 이런 일들이 더 비일비재할텐데 자주 들으면 무뎌지기는 커녕 이런 일들은 갈수록 마음이 더 아프다.

전에는 돈 많고 팔자 편해보이는 사람이 부러웠는데 이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쉬운 인생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내 주변엔 좋은 사람이 많다. (마음에 맞지 않은 사람과의 인연을 굳이 이어가려는 마음이 없는 내 성격 탓이 크겠지만..) 나는 큰 욕심도 없고 엄청난 부귀영화에 대한 기대도 없다. 다만 내 주변에 아끼는 사람들과 밥을 먹고, 함께 웃고, 도움이 필요할때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정도만 돼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인데 그게 그렇게 힘들다.

숙모가 쾌차하시면 좋겠다. 만약 그게 안된다면 너무 오랫동안 고통스럽거나 힘들지는 않으셨음 좋겠다. 퍼주기 좋아하는 사람 좋은 숙모가 당신이 쌓은 덕을 자식이나 다른 누가 아니라 본인이 이번 생에 다 받으셨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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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miniestate님 안녕하세요. 개수습 입니다. @travelwalker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저도 외숙모가 몇해전 비슷한 연세에,사촌동생들 나이도 비슷하네요.
안타깝게도 그 무섭다는 췌장암이라..정말 모든게 빠르게 진행되더군요..
무튼 그때도 저도 비슷한 감정이었습니다.
중고딩때 빅맥 자주 사다주셨던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급식시절에도 그 안 큰 머리로 언젠간 갚아야지 했는데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더군요.

숙모님이 하루빨리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취업도 축하드리구요!

예전엔 이런 일들은 정말 남의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 훅 다가오네요. 위로와 축하 감사합니다!! 부지런히 돈 벌어서 숙모 가방 하나 사드려야겠어요!!

누가 뭐라 해도 건강이 첫째입니다.

그런것 같습니다. 항상 문제가 생기고서야 깨닫는다는게 너무 속상합니다.

아둥바둥 고생하시던 당신들 모습을 보면.. 이제 좀 내려놓구 사셨으면 좋겠다 싶은데.. 그게 ...습관이 인생을 만들듯.. 이젠 그네들의 인생이 되버리신듯 하네요..

외삼촌께서도 마음고생이 많이 심하실듯 하네요. 어떻게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삼촌이 아직 모른척 해달라하셔서 저도 가만히 기다리는 중인데 아픈 사람도, 그걸 지켜보는 사람도 다 불쌍하고 안됐어서 속만 상하는 요즘입니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걸 알기에 입 닫고 있는데 시간이 좀 지나면 조용히 소주잔이나 기울여야죠. 정말 사는게 뭔가 싶네요.

“너 참 좋아 보인다. 부럽다.”라는 말이 아프네요. 그 말에 너 잘 돼 보여서 좋다, 그치만 질투도 난다, 등등. 온갖 상념이 뒤범벅돼 있는 듯 보여서요. (제가 뭘 안다고.) miniestate님, 제 (카펜터스 등장) 포스팅에 댓글 남겨 주신 이래 저는 변변한 댓글조차 못 드렸네요. 숙모님, 나으시기를.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아닛!! 제가 달았던 첫 댓글을 기억하고 계시다니 몸둘바를....ㅎㅎ

페르스펙토르님 띄엄띄엄 쓰는 제 글에 누구보다 먼저 와서 읽고 조용히 보팅해주고 가시는거 저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니 지금처럼 부담없이 들러주세요. 숙모한테 좋은 소식있으면 저도 다시 전해드릴게요. 큰 위안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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