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통의 꿈

in #kr6 years ago (edited)

똥통은 생각했어요.

‘나는 똥통임이 분명해. 다들 나에게 냄새나는 것만 던지잖아. 그러니 나는 똥통의 역할을 해야해. 모두 자신의 역할이 있는거잖아. 비록 저 멀리 반짝이는 꽃병이 부럽지만 말이야..’

똥통은 냄새나는 자신이 싫었지만 어느새 이것이 자신의 운명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똥통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 일어났어요.

글쎄, 누군가 똥통에게 ‘꽃’을 던지지 뭐예요.

‘?? 나는 똥통인데 왜 꽃을 준거지..? 그런데.. 꽃이 들어오니 나도 향기가 나네..?나도.. 똥통인 나도..’

똥통은 그윽한 향기가 나는 자신이 어색했지만 그 향기가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랐어요. 그 향기를 영원히 맡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게 왠일이에요.
그 소중한 한송이의 꽃이 시들어 버리고나니 자신에게서 다시 예전의 그 고약한 똥냄새가 나지 뭐예요. ㅜㅡㅜ

너무나 오랫동안 똥을 담아왔거든요. 나는 똥통이니까. 똥통의 역할을 해야만 하니까. 모두 자신의 역할이 있는 거잖아요.

똥통은 좌절했어요.
그리고 또 생각했어요.

‘그래. 역시 나는 똥통이야. 내 모양도 딱 똥통처럼 투박하게 생겼잖아. 꽃병처럼 늘씬하고 예쁘지도 않잖아. 그저 우연히 꽃을 한번 받았던 것 뿐이야. 그저 그뿐이야..’

똥통은 자포자기하며 다시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갔어요. 익숙한 냄새가 나에게 맞는 냄새라고 위로하며 말이지요.

그런데.. 그런데..

그 한송이가 자신에게 주었던 그 그윽한 향기를 잊을 수가 없었어요. 절대..잊을 수 없었던, 자신에게서 뿜어나오던 그 그윽한 향기..

평생 꼭 자신의 몸에서 나게 하고 싶은, 그 향기에 취해서라면 바로 지금 죽어도 좋을 것 같았던 그 향기..

그래서 똥통은 마침내 결심했어요.

‘그래.. 비록 나는 똥통의 모양을 타고 났지만 나는 이제부터 내 몸에 꽃을 심을거야. 이제부터 사람들이 던지는 똥은 다 퍼내 버릴거야. 그리고 내 몸에 꽃을 심을거야. 내 스스로 말이야. 나는 향기나는 내가 되고 싶거든.’

그래서 그날부터 똥통은 자신에게 꽃을 심기 시작했어요. 비록 투박한 모양을 타고난 똥통이지만 꽃을 심을수록, 자신에게서 나는 향기가 진해질수록 똥통은 자신의 타고난 모양에도 자신이 생겼어요.

투박한 모양이라서, 그래서 더 꽃을 많이 심을 수 있다고, 그래서 더 여러가지 꽃을 심을 공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오늘도 똥통은 자신에게 꽃을 심고 있어요. 아직도 투박한 모양만 보고 똥을 던지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똥통은 슬퍼하지 않아요. 다시 퍼내고 또 꽃을 심으면 되니까요.

언젠가, 꽃의 향기가 더 진해지면 그때는 똥통도 완전한 꽃병이 될까요?

이제는 늘씬한 꽃병이 부럽지 않아요. 스스로에게서 나는 향기도 꽤 근사하거든요.

똥통은 오늘도 꽃을 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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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는 힘은 그 의지력에 있는 것이지 재능이나 이해력에 있는게 아니다.
아무리 재간이 있고 이해력이 풍부해도 실천력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의지력이 운명을 만든다.

-[자연론]의 작가, 랄프 월도 에머슨

문득 이 글이 떠올랐어요. 향기로운 꽃병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향해 노력하는 의지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내가 살고 싶은 모습대로 살려고 하는 의지력..

되고 싶은 모습대로 되려고 하는 의지력...

너무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거 아니면 안되니까... 숨 쉴 수 없으니까..

꽃을 심는, 꿈이 있는 똥통은 행복하다.
그의 과거의 모양과 미래에 될 모양과 상관 없이.

꽃병이 되지 못한다 해도 꽃병이 되려 하는 마음, 되고자 하는 과정이 꽃병만큼 그를 향기롭게 한다.

그걸로 됐다.
그는 향기롭고 싶었을 뿐이니..

문득 떠오른 생각을 적어보았는데 이렇게 주인공의 속마음을 담은 뒷이야기처럼 남겨주셔서 행복합니다. 요즘 제가 제일 많이 하고 있는 생각이거든요. 얼마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조금 헤맸나, 맞는 길인가,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지만 일단 나의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꿔나가고 있음에 행복을 느낍니다. 그 행복은 맛있는 걸 먹고, 좋은 물건을 샀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깊고, 충만한 행복이라는 걸 새삼 느끼고 있어요. 온몸으로 꿈을 품고, 에너지를 뿜어내는,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똥통의 역사는 수세식 화장실이 생기고 대 전환을 합니다.
그나마 역활이 없어지나 했는데 지금은 정말 귀한 대접 받는 꽃병이 아니라 그자체로 진귀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꽃을 꼿아 보겠다는것은 한껏 자기를 드러내 보이는 방편이지 이제는 통통에 꽃이 담기려면 사전에 양해가 없이는 안되는 세월이 되었습니다. 동화를 동화로 이해하려하나 슬픔이 가득한듯 하기에 확 까발렸습니다.

보물이 되어 버린 그것이 똥통입니다.

천운님 여기서 재능을 발휘하셨다... 감동.

천운님 말씀은 예전부터 감동...!!

동화네요!!!ㅎㅎ
똥통에 꽃을 심으면 거름끼가 있어서 오히려 더 잘 자랄 거 같은디용^^

20180820_143504.jpg

애초에 똥통은 자신이 똥통인걸 몰랐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태어나서 살았으니 그게 당연하게 여겼을지 모르는데..

누군가가 비난을 했던가 봅니다.
‘너는 냄새나고 더러운 똥통이야!!’ 라고..
그후 상처로 남았겠죠.. 큰 충격을 받았겠죠..

그래서 처음 맡아 본 꽃향기에 더욱 자신의 모습을 초라하게 여겼을지도 모를 똥통이 더욱 측은하게 다가왔네요.

그래도 마음의 꽃을 심겠다며 고쳐먹은 똥통의 마음이 대단하다 여겨지는건 그리 마음먹는다는게 결코 쉽지 않음을 알기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네요.

꽃을 피우기 위한 거름을 이미 가지고 있었으니 어쩌면 아무것도 없는 존재는 아니겠네요.ㅎ
이쁜 꽃병에 있는 한다발의 꽃보다는 자연스럽게 피어있는 꽃무더기가 더 이쁘게 다가올 때가 있죠. 똥통도 분명 알아주는 사람이 생길 거 같아요.ㅎ

똥통의 마음은 이미 꽃밭이네요
똥통 안에서만 머물지말고, 모양에 구애받지 말고 세상 곳곳에 뿌려지기를...^^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흩날리는 민들레씨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어여쁜 꽃을 찾아가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보다 자기 자신을 똥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날아가서 꽃이 되게 하고 싶어요 ㅎ

자신의 한계나 필요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아름답지요. 누구에게나 똥통이 갈망하는 꽃 향기 같은 지향점이 있지요.ㅎ 제가 지향하는 꽃향기를 생각해봅니다.

똥통도 거듭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멀쩡하게 태어나서 멀쩡하게 살면서 못 가진 것에 불평하고 가진 것들에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아가는 제가 그 똥을 담아야 하나 고민에 잠깁니다 ㅋ

옛다 똥~

*주의: 반사하지 마시오.

반사!!!!

ㅎㅎㅎ

'강아지 똥'이라는 동화가 생각나네요.
똥통이 있어야 똥이 모이고 그것이 거름이 되어 꽃도 나무도 자라나는 건데.
어쨌든 자기의 삶을 개척해 보겠다는 똥통의 각오로 거름이 충분한 좋은 꽃병으로 변하길 바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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