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nonfiction-크맘마13.

in #kr6 years ago

크맘마13. @jjy

마당 한쪽 나무 밑에 파란 싹이 나오더니 보라색 꽃이 피었다.
그러고 보니 차를 타고 지나던 둔덕에 개나리가 피어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벌써 봄은 꽃을 떨구고 나날이 짙어가고 있다.

아침이 되어 그친 봄비에 하늘은 끝없이 파란 가을처럼 상쾌하다.
까맣게 타들어가던 나무들이 어디에 꽃을 숨기고 있었을지, 봄이
오기를 어떻게 참고 기다렸을지 새삼 고맙다. 라일락이 초록 잎을
틔우더니 뒤따라 꽃망울이 부풀고 있다.

스마트폰이 울리는 신호음을 확인하고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잠시 머뭇하다 다시 집으로 들어온다. 요즘 들어
부쩍 정신이 깜빡거린다. 다급하게 가스를 확인하고 소등을 했는지
방을 돌아본다. 간단하게 메모를 적어 신발장에 붙여놓고 다시
나간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버스 승차장으로 걷는 길에도 꽃을 가꾸는지
어린 꽃모종이 줄을 맞추어 심어져 있다. 멀리서 보면 나비가 앉은
모습으로 보이는 팬지가 예쁘다. 아직 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보나마나 꽃집에 들러 미니 장미 모종을 색깔별로 사고 마가렛도
몇 개 사서 낑낑 거리고 들고 오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언니는 꽃모종을 담은 봉지를 들고 힘들게 걸어오고
있다. 얼른 달려가서 짐을 받아들고 어릴 때처럼 손을 잡고 차로
왔다. 평년을 웃도는 날씨에 언니는 손부채를 하면서 땀을 식힌다.
어제 미리 얼려둔 오미자차를 단숨에 들이킨다.

차가 속도를 내면서 창문을 열자 거리는 연둣빛으로 흔들리고 꽃들은
얼굴만큼이나 아름다운 향기를 보내고 있다.

언제나처럼 산길로 접어들기 전 할머니가 하시는 구멍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는 작년하고는 다르게 물건도
없고한쪽에 희미한 막대 형광등도 하나만 들어와 어둡고 썰렁했다.
할머니를 부르니 한참 만에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고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문으로 하얀 머리가 먼저 나오고 허리가 기억자로 구부러진
할머니의 발이 가까스로 문지방을 넘는다.

겨우 한 해를 지났을 뿐인데 할머니는 몰라보게 수척하고 거동조차
어려울 정도로 늙었다. 그래도 우리를 기억하는 할머니가 먼저 반갑게
맞아 주신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적적하게 살다 작년에 수술을 두
차례나 하면서 몸이 망가졌다고 하시며 이제 어서 가야지 하시며
겨우 두어 개 남은 이로 쓸쓸하게 웃으신다.

크맘마 산소에 갈 때마다 할머니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물이며 필요한
것을 사가지고 올라갔다. 할머니는 요즘 세상에 그런 사람 없다며 손을
잡고 연신 고맙다고 하시며 복 받고 살 거라고 하셨다.

산소는 잔디가 제법 파란빛으로 살아나고 있었다. 주변에 진달래도
피고 제비꽃이며 할미꽃이 군데군데 피어 꽃 대궐처럼 보였다. 언니는
어느새 상석에 과일이며 제사음식을 차리고 보온병에 싸가지고 미역국을
올리고 술도 따라 올린 다음 절을 한 언니가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꽃모종을 꺼내 모종삽으로 땅을 파고 얇은 비닐 포토에서 모종을
분리해 묻고 손으로 토닥인다. 생수도 한 모금씩 먹이고 언니도 물을
마신다. 딸기 접시를 들고 언니 옆에 앉았다.

어린 시절 언니랑 다니던 시가지가 한 눈에 보인다. 그 때보다 건물도
많이 들어서고 차도 많아졌지만 우리가 다닌 학교는 점점 작아졌다.
크맘마는 우리를 친 딸로 입양하는 일은 아빠의 반대로 포기해야만
했다. 그 대신 우리를 어떤 엄마보다 더 사랑해주셨다.

도시락 반찬도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였다. 체육복도 제일 먼저 사
주시고 수학여행비도 제일 먼저 내 주셨다. 학교에서 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하게 하셨고 배우고 싶은 건 다 가르치셨다. 언니가 가슴이 봉긋해
지면서 여자가 되는 과정에서 알아야 할 말씀을 해 주셨고 초경을 시작한
언니를 데리고 엄마의 유해가 뿌려진 곳을 찾아갔다.

세상에 둘도 없는 천덕꾸러기들을 우리 복덩이 우리 천사라고 부르셨다.
언니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를 가라고 했지만 크맘마 힘들다고 우체국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형부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나를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오히려 언니가 낳은 조카를 키워주신다고 빨리 아기부터 낳으라고 하시며
살림 걱정 덜어준다며 사흘이 멀다고 반찬을 해 나르셨다.

내가 유아교육과를 지원한다고 했을 때 수학 잘 하니까 학비 걱정 하지
말고 수학선생님이나 아니면 의대나 법대 가라고 하셨다. 내가 아이들
보살피며 살고 싶다고 고집을 피우자 내 맘을 아셨는지 더 이상 말씀을
안 하시고 하고 싶은 일 하며 살라고 도와주셨다.

크맘마가 아니라 큰엄마라고 부르라고 하는 언니의 말에 우리 천사 지영이는
크맘마라고 부를 때가 제일 예쁘다고 하셨다. 아저씨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크맘마는 급속도로 건강을 잃으셨다. 나하고 같은 크맘마 생신에 내 생일선물
사러 다녀오시는 길에 의식을 잃고 쓰러지셨다.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가자
내 목소리를 들으시고 잠깐 정신이 돌아오신 크맘마가 내 손을 잡으셨다.
주르륵 눈물 한 줄기가 찝찔하게 내 입으로 흘러들었다.
“또 만나자 우리 천사...
사... 사...사라...앙해...”

크맘마는 입버릇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살면 다음 생에는 꼭 친엄마로
만날 수 있다고 하셨다. 언니는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했지만 나는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크맘마한테 엄마가 될 차례니까 그런
약속을 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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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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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인가요..!!?
마음이 시린글인데 궁금해지네요.^^
오늘 하루도 활기차고 잼나게 보내시길요.^^

비비아나님 감사드려요.
논픽션이 그동안 써 왔던 글과 달라
좀 어수선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끝까지 함께 해 주신 정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좋은 봄날
예쁜 꿈 꾸세요.

크맘마를 읽으면 행복해도 눈물나고
슬프면 대놓고 눈물...
어쩜 이리 먹먹해지는지 모르겠어요ㅜ

지영이에게 크맘마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요.
책임지지 않는 부모와
핏줄이 아닌 철부지를 거두는
사랑앞에 아이들은 모든 상처를 내려놓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크맘마가 있어서 너무나 다행입니다.
마지막까지 크맘마의 사랑에 너무 감사한 느낌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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