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 거꾸로 가는 계절

in #kr5 years ago

거꾸로 가는 계절@jjy

어머니께서 김치를 덜어 주시는 양이 점점 줄어든다.
이건 김치 할 때가 돌아온다는 무언의 신호다. 아니나 다를까
김치 냉장고를 열어보니 김치가 얼마 남지 않았다. 김치통에
반도 안 되게 남은 김치를 보니 마음이 바쁘다.

마트에 배추를 주문하고 그 사이에 어머니 모시고 치과를 간다.
치과에서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가급적이면 어머니 잘 보이는
위치에 앉아 있다.

진료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울린다. 사또의 호출이다.
부리나케 가게로 달려온다. 그리고 배추를 다듬기 시작하는데
바람이 온갖 비닐이며 나뭇잎을 몰고 온다.

오랜만에 하늘이 맑고 햇살이 좋아 마당에서 배추를 다듬기로 한
것이 착각이었다. 쓰레기에 먼지까지 나를 따라다닌다. 하는 수 없이
바람을 피해 안으로 끌고 들어갈까 하다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부지런히 다듬어 비닐로 대충 덮어 둔다. 절이는 건 어머니 진료
끝나면 모시고 와서 하면 되겠지 하며 치과로 향한다.

오늘따라 할 일도 많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다. 잠시 앉아 커피라도
한 잔씩 하며 얘기를 나누고 앉으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바람도 심한
날씨에 치과를 다녀오신 어머니께서 긴장하신 탓인지 자꾸 으스스
하니 춥다고 하신다.

냉장고에 흰떡 물에 담가 놓은 것이 있기에 떡국을 끓인다. 만두도
세 알 남은 것을 넣고 한 사람이 한 개씩 담는다. 이렇게 한 개씩
나누면 반드시 한 개는 다시 돌아온다. 매운 것 못 드시는 어머니께서
내 그릇으로 옮겨 주시면 못 이기는 척 맛있게 먹는다.

따뜻한 떡국 한 그릇에 커피까지 한 잔 하고 나니 몸이 풀리신다며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바람이 많이 부니 밖에 나가지 마시고 방에
계시라고 말씀드리고 잠시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갈 때도 안 보이던 비닐을 쓰고
있는 배추가 보인다. 이제 소금 뿌려서 언제 김치가 되나 생각하니
한심스럽다. 결국 김치는 밤중에 하자니 피곤하고 소금 슬쩍 뿌려
내일 아침 일찍 하는 것으로 했다.

하루 종일 동동거려도 정작 중요한 일은 빼먹고 내일로 미루게
되어 내일 아침도 허둥거리게 생겼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니
이제부터 시간대 별로 해야 할 일을 적어 어디 벽이나 냉장고에
붙이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기억은 점점 가물거리고 몸은 둔해지고 계절은 봄인데 정신은
이미 가을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블로그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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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아직 많이 춥네요~ 몸도 마음도~~

빛블루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감사드려요.

특별히 그런 날도 있는 거 겠지요^^

어쩌면 그렇게 까맣게 잊을 수가 있는지
어이가 없었습니다.
걱정도 되고

부럽다 부럽다 부러워...

이 기분은 뭘까...
쌤통으로 들리는 것 같은

노력하신것은 못보고 창고의 드는 재물에만 부러움을 가득 가진듯 합니다.
이렇게 속물이니 한 세상 잘 살았다 하기에 부족함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냉장고 벽에 붙일때는 볼때마다 기뻐지는 문구도 써 놓으시기 바랍니다.

창고의 풍요롭게 드는 재물을 보며 감축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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