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장군 곽재우의 재치와 벌 화상흉터침치료

in #kr5 years ago

벌의 호전적 본능이 치명적인 무기가 되다.
임진왜란 당시 홍의장군으로 이름을 날린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의 일화 중에는 벌을 전술무기로 활용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곽재우가 경상남도 창녕의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왜군과 맞섰을 때, 옻칠한 관속에 벌통을 넣고 이를 왜군이 주둔한 곳 근처에 두고 갔는데 이를 왜병들이 보물이 든 함인줄 알고 열었다가 벌에 쏘여 크게 당황하자 기습해 승전을 거뒀단 이야기다.

곽재우.jpg
이후 왜병들이 관을 발견하면 벌을 잡고자 일단 불에 태우기 시작했다는 정보를 듣고, 그 다음부터는 관속에 화약을 투입, 왜군 주둔지 여기저기서 폭발이 일어나자 재차 기습해 승리를 거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의병들 뿐만 아니라 관군들이 산성에서 벌이던 전투에서도 벌통은 자주 쓰였으며 특히 밀집보병 방진을 주로 펴서 다니던 왜군들에게는 상당히 치명적인 무기였다고 한다.
벌통은 서양에서도 고대부터 쓰였던 주요 전술 무기 중 하나였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부터 벌통을 투석기에 넣고 성안으로 쏴서 성내 혼란을 유도하는 작전이 잦았는데 특히 로마제국 시대에는 벌통이 남아나질 않을 정도로 로마군이 벌통수집에 혈안이 됐었다고 한다. 11~14세기 십자군 원정기는 물론 17세기 독일의 30년전쟁 때에도 벌통이 공성전에 쓰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미술관에서 만난 전쟁사, 이현우 지음, 어바웃어북, 페이지 34-35

곽재우장군이 다양한 전략전술로 승리를 거두었는데 말년에는 비참하게 선조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곡기를 끊고 신선 수행을 한다고 하면서 벼슬자리를 거부하면서 자세를 낮추고 산 비극적인 최후가 있다.
아무튼 위를 보니 벌통에 화약을 넣었는데 화약은 폭발사고로 치명적인 부상과 사망도 이를 수 있다. 화약 火藥은 아니지만 불은 그만큼 무시무시한 위력을 뽐내는데 화상흉터까지 이를수 있다. 처음에는 화상이 홍의장군 옷색처럼 붉지만 나중에는 화기가 빠지고 착색이 되거나 저색소침착으로 희게 보이기도 한다. 자향미한의원 www.imagediet.co.kr 에서는 BT침 화상흉터를 치료한다.

Coin Marketplace

STEEM 0.30
TRX 0.11
JST 0.033
BTC 64275.05
ETH 3147.49
USDT 1.00
SBD 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