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맞춤육아] 황급한 시기, 응원의 기억

in #kr6 years ago (edited)

아이들은 참 빨리 자란다. 아이들 잘 때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 시간을 더 오래 함께 보내고 싶다, 아쉬우니까 너무 빨리 자라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조금은 이기적인 생각을 한다. 어쩌면 아이들의 이 사랑스러운 유년기를 함께 보내기 위해 내가 태어난 게 아닐까하는 공상에도 잠긴 적이 있다. 물론 육아란 게, 고된 일도 많지만 정말 이전에 알지 못한 행복감을 준다. 나 역시 꿈도 많고 일 욕심도 많은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이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소중한 건 없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다.

이전에 쓴 육아기를 보면서 아이들의 급격한 성장을 새삼 다시 느꼈다. 지금은 기저귀를 떼고 스스로 응가하고 쉬야하는 것에 익숙한 첫 아이가 불과 올 초까지 변기에 응가를 하는 것을 힘겨워했다는 것을 육아기를 보며 알았다. 그 사실이 생경한 만큼 아이들은 빨리 자란다. 그 기록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어제 저녁 아이들 밥 먹이고 나서, 치카치카를 해주고, 그림책을 몇 권 읽어주며 같이 잠을 청하려다가 문득 설겆이를 안 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내가 일어나서 부엌으로 가니까, 자는 폼을 잡았던 아이들도 어느새 따라 나와서 어둑어둑한 거실에서 꼼지락거렸다.
설겆이를 하는데 큰 아이가 황급한 표정으로 나에게 달려왔다. 표정만 봐도 안다. "응가 마렵구나!" 아이는 고개 끄덕. "얼른 변기로 가자"
아이는 바로 뒤돌아서 뛰어갔다. 그런데 절반쯤 가다가 뒤돌아서 다시 내게로 뛰어오더니, 여전히 황급한 표정으로 내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같이 가~~"
"알았어!!"
얼른 손에 묻은 비눗기를 씻어내고서 변기로 내달렸다. 최근에 몇 번 팬티에 응가를 한 적이 있기에 나도 급한 마음으로 내달렸다.
아이는 아기변기에, 나는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서로 손을 잡고 같이 힘을 줬다. 나는 입으로만 힘을 주는 척. 3초나 지났을까, 아이가 "다 했어"라고 말했다.
"벌써?"
아이가 일어섰고, 변기엔 진짜 따끈하고 건강해 보이는 응가가 "I'm here~"하고 있었다. 꽤 컸다.
아이는 "나 아빠응가했어"라고 말했다. 아이는 좀 큰 응가를 하면, "아빠응가"라고 부른다. 너 내 응가 본 적 없잖아.
응가를 치우고, 설겆이를 마무리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응가가 곧 나올지 모르는 그 급한 상황에서, 그것도 이미 목적지를 향해 가던 도중에 돌아와서 자신을 응원해줄 사람을 찾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때 내가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 너무나 뿌듯했다. 아이가 나중에 커서 내가 이런 얘길 해줘봤자, 이해 못 하겠지. 하지만 나에겐 너무나 뿌듯하고 행복한 기억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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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리 모두 응가만 해도 칭찬받고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시절이 있었지 말입니다...ㅎㅎ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ㅋㅋ 아마도 있었겠죠 ㅎㅎ

마음이 훈훈해지네요. 아이들 크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부모들의 낙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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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다만 글에도 썼듯 빨리는 안 컸으면 하는 이중적인 마음도 있어요 ㅋ

이 글 읽으니까 도담이가 생각나요. ㅠ

도담이 잘 있죠? 우리 아기도 페파피그 좋아해요. 펩시님의 날카로운 눈으로 아이들 콘텐츠는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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