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 나만의 명곡] 평화를 꿈꾸었던 자가 맞이한 최후의 꿈 - 핑크 플로이드 The Gunner's Dream

in #kr6 years ago (edited)

이 곡이 담긴 앨범 The Final Cut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당시는 딥퍼플의 Highway Star가 '과속 심리 조장'이라는 어이없는 검열의 딱지를 겨우 벗어던지기 시작한 어이없는 시절이었죠. 그러니 핑크 플로이드가 우리나라에서 라이센스로 발매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

부모님께서 주신 저녁값을 주중에 500원씩 아껴서, 주말이 되면 2500원짜리 '빽판'을 사모으는 것이 고된 수험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던 시절, The Final Cut은 허름한 단골 레코드 가게 뒤편, 절벽을 파서 만든 비밀 진열장에서 발견한 보물들 중 하나입니다.

당시 제 눈에 비친 이 앨범은 '군복을 입고 꽂꽂히 서 있는 사나이의 등에 칼이 꽂혀 있는' 뒷면의 흑백 사진(당시 빽판은 뒷면 커버가 흑백이었습니다)으로 기억되는데요. 이후 '전교조 파동'으로 험난했던 고교 시절, '분신정국'으로 분노와 슬픔의 파도에 휩싸였던 대학 1,2학년 시절, 그리고 군 복무 후 새로운 모색과 방황이 교차되었던 20대 중반을 함께 했습니다.

가슴이 돌덩이처럼 뻐근해져서 사실, 감히, 자주 듣지는 못하는데요. 마침 겨울학기 교양수업 마지막 순서로 다루게 되어, 오래 되었지만 항상 새롭게 솟아오르는 추억들을 아이들, 그리고 여러분들과 나누게 되었네요.

Pink-Floyd-The-Final-Cut.jpg

이 곡은...

이미 전설이 되어 버린 핑크 플로이드의 양대 축,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와 베이시스트 로저 워터스. The Gunner's Dream은 그 중 로저 워터스의 슬픈 가족사와 관련된 곡입니다.

로저 워터스의 아버지, 에릭 플레처 워터스 중위는 로저 워터스가 태어난지 다섯달 되던 1944년, 이탈리아에 있었던 안치오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부친 상실'의 아픔은 전작 The Wall에 이어 이 곡이 담긴 앨범 The Final Cut에서도 짙게 드러나는데요.

이 곡에서 로저 워터스는 아버지가 전사하던 순간을 회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내여 듣는 이의 공감을 드러내는 한편, 자신의 개인적 슬픔을 사회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을 잊지 않습니다.

(인용구로 표시한 내용은 제 나름의 가사 해석이니 '참고'만 해주세요. 예술작품의 해석은 무한히 열려 있어야 하니까...)

Floating down through the clouds
구름을 뚫고 흘러 내리는 기억들
memories come rushing up to meet me now
그 기억들이 지금 나를 맞으러 몰려드네요
in the space between the heavens
두 개의 천국 사이에 놓인 공간
and in the corner of some foreign field
낯선 나라의 어느 들판 한 켠에서...

I had a dream
나에겐 꿈이 있었죠
I had a dream
꿈이 있었어요.


최후: 안치오 전투에서 전사하던 순간, 독일 전폭기들이 토해낸 폭탄들이 구름을 뚫고 자신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보는 워터스 중위의 머릿속에는 31년 짧은 생애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몰려듭니다. 죽음 이후 자신을 맞이할 내세의 천국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현세의 천국 사이 이탈리아 안치오라는 낯선 땅에서 그는 자신이 꾸었던 꿈을 떠올립니다.


Good-bye Max
잘 있어, 맥스
Good-bye Ma
엄마, 저 이제 갈게요
After the service, when you’re walking slowly to the car
군 복무가 끝난 후, 당신이 차를 향해 천천히 걸어갈 때
And the silver in her hair shines in the cold November air
차가운 11월의 공기 속에서 그녀의 머리핀은 은빛으로 빛나겠죠
You hear the tolling bell
당신은 울리는 종소릴 들으며
And touch the silk in your lapel
제복 옷깃의 훈장을 쓰다듬겠죠
And as the tear drops rise to meet the comfort of the band
두 눈에서 솟아난 눈물 방울이 부대원들의 위로를 맞이할 때
You take her frail hand
당신은 그녀의 가녀린 손을 붙잡아 주시겠죠
And hold on to the dream!
그 꿈을 놓치지 말아주세요!


장례식: 군 복무가 끝났음은 죽음을, 차는 장례식 차를, 은빛으로 빛나는 머리핀은 아내 맥스가 미망인이 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워터스 중위가 자신의 죽음 이후를 상상하는 장면이자 아들인 로저 워터스가 아버지의 장례식을 묘사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A place to stay
편히 쉴 집이 있고
Enough to eat
먹을 것이 충분한 곳
Somewhere old heroes shuffle safely down the street
늙은 전쟁 영웅들이 느긋하게 거리를 거닐 수 있는 곳
Where you can speak out loud
의심스럽고 두려운 것들에 대해
About your doubts and fears
마음껏 드러내 말할 수 있는
And what’s more no-one ever disappears
그리고 나아가 그 누구도 결코 사라지지 않고
You never hear their standard issue kicking in your door
그들이 군홧발로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소리를 다시는 듣지 않아도 되는
You can relax on both sides of the tracks
어느 편에 서 있더라도 마음 놓을 수 있고
And maniacs don’t blow holes in bandsmen by remote control
그리고 리모콘을 든 미치광이들이 병사들 사이로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는
And everyone has recourse to the law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법에 호소할 수 있고
And no-one kills the children anymore
누구도 더이상 아이들을 죽이지 않는
And no one kills the children anymore
누구도 더이상 아이들을 죽이지 않는 그곳


포병의 꿈: 참전하기 전 에릭 플레처 워터스는 평화주의자로서 '양심적 병역거부자conscientious objector'로 인정받아 영국 대공습 때는 앰뷸런스 운전사로 복무했습니다. 그런 그가 군인으로서 참전한 지 5개월 만에 전사한 것이야 말로 참담한 비극이었습니다. 이 연에는 워터스 중위가 최후의 순간에 꾸었던 꿈들이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standard issue는 병사에게 지급되는 표준지급품을, both sides of the tracks는 맥락상 이념적 노선(좌와 우)을 의미합니다.


Night after night
매일 밤
Going round and round my brain
내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돌며
His dream is driving me insane
그의 꿈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해요


아들의 고통: 비극적으로 죽어간 아버지의 삶과 꿈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아들 로저에게 현실은 고통 그 자체였을 겁니다. 더구나 그때는 영국의 대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을 정점으로 전세계적으로 극우, 신자유주의, 전쟁, 민주주의 탄압의 회오리가 몰아치던 시점이니...


in the corner of some foreign field
낯선 나라 어느 들판 한켠에서
the gunner sleeps tonight
포병은 오늘밤도 잠들어 있고
whats done is done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만
we cannot just write off his final scene
그의 최후 광경을 그저 지워버릴 수는 없기에
take heed of his dream
그의 꿈은 잊지 말아요.
take heed
그의 꿈만은


...그리고 소망: 시신이 수습되지 않은 아버지는 여전히 낯선 이국의 전쟁터에 누워 있고 아들은 그저 그의 꿈이 잊혀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죽기 전 그가 꿈꾸었던 평화, 정의, 자유의 꿈이...


POSTSCRIPT

모든 꿈은 기억될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이 누구에겐가 사무치도록 소중한 것일 때는 더더욱...


오늘 제가 나눌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보팅, 댓글, 리스팀, 팔로우 등 여러분의 반응은 무엇이든 헤르메스의 날갯짓을 더 힘차게 만듭니다. 헤르메스의 보람은 더 많은 사람들과의 나눔이니까요.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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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eversloth 님의 스팀파워 지원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대역폭 제한으로 힘겨워 하는 뉴비에게 산타 할아버지처럼 몰래 스팀파워를 지원해 주고 가신@eversloth 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로 보답하고 얼른 돌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관련글: 오늘 산타 할아버지께서 찾아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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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ㅎㅎ 저도 참 좋아하는 곡입니다!
빽판을 사보았을 만한 세대는 아니지만, 저에겐 핑크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앨범이 비슷한 느낌으로, 그러니까 구하기 힘든 앨범을 냅스터와 소리바다에서 며칠밤 새워서 겨우 받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ㅎㅎ

네, 초기 명작 중 하나인 Wish you were here도 핑크 플로이드에 빠져 있던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과 겹치는 곡 중에 하나입니다. 험난한 고교시절이 시작되는 사건... 같은 반 친구의 죽음... 돌이켜보면 참 슬프고 화나고 힘들었던 시기였지요... 소중한 추억 함께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음악 추천 감사해요. 이런게 블로깅의 묘미죠. ^^

좋은 음악으로 느끼셨다니 저도 좋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핑크 플로이드, 딥퍼플 ㅎㅎㅎㅎ
열거하신 기억으로는 저하고 연식이 닮으신것 같습니다 ㅋㅋ(왠지 무턱대고 반가워하네요) 스팀잇에서는 오래된 티 안내려고 했는데 ㅋㅋ
음악 듣다 보니 가슴이 꽉 차오르는것 같아 좋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연식이 같다는 건 공유하는 기억이 많다는 뜻이니 반가운 건 당연한 일인 거 같습니다. 저도 거리낌없이 무턱대고 반갑습니다~~ㅎㅎ 느낌 함께 나누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간밤에 푹 잔게 에너자이저~님 덕분이었네요~

듣는데 마음이 아파요. 아직도 전쟁은 아이들을 죽이고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고통받고 있는데...
자주 듣기 힘들다는 말 공감합니다. 추천 감사해요.

전쟁은 인류 최대의 비극이자 죄악이지만 그보다 그 책임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더 견디기 힘든 일인 듯합니다. 따뜻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상대적으로 Darkside of the moon이나 The Wall 에 비해서 손이 잘 안가던 앨범이었는데 차분히 들어봐야겠네요

네... 사실상 로저 워터스의 솔로앨범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무게중심이 쏠린 앨범이라 핑크플로이드 팬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많이 갈리기도 하더라구요. 개인적으로는 데이비드 길모어와 로저 워터스 둘다 애정하는 사람이라 둘이 결별할 때는마음이 많이 아프기고 했었습니다. 이후에 나오는 로저워터스 솔로 앨범들의 예고편 정도로 들어도 괜찮으실 듯 합니다. 항상 관심 가져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힘내세요! 짱짱맨이 함께합니다

핑크 플로이드는 데이빗 길모어, 데이빗 길모어는 기타, 그리고 길모어는 저평가된 기타리스트라고 아는 체 합니다

데이빗 길모어는 기타리스트들이 존경하는 기타리스트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구요.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저평가라는 의미'시라면 격하게 공감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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