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에세이 2. 가슴 아픈 이야기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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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잇의 응급의학과 전문의 @feelingofwine 입니다.

자꾸 암울한 이야기를 적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죽음을 대할 때마다 마음이 가라앉는 듯 하여 누군가와 이야기를 공유하지 않으면 마음이 더 우울해 질 것 같습니다.......

#. 37세 남자
오늘은 낮근무였는데 근무 시간에 멘탈이 흔들릴 정도로 환자가 많이 왔다. 119 및 사설 구급차로 내원한 환자를 보는 특성 상 환자 한 명 한 명의 중증도가 높아서 치료가 쉽지 않고 응급실 체류 시간도 길다. 그런데 이 날은 연휴가 끝나고 난 바로 다음날이라서인지 응급실에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드는 것 같았다. ㅠㅠ. EMR (Electronic Medical Record, 전자의무기록) 에 내 이름으로 등록된 환자만 20명을 넘었다. 응급실의 근무 경험이 있는 의료진들은 이해하겠지만 이 정도면 아수라장이라고 보면 된다. 내 담당 환자가 10명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처리해야 할 일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 진료 속도는 반비례하여 떨어지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몹시 위험한 시스템이다. 안전불감증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겠다. 이대목동병원 사건의 이면에서도 일어난 일이지만 의료사고가 안 나게 아슬아슬 넘어가는 것이다. (오늘 하고자 하는 주제와는 다르니 이만 넘어가겠다.)

신환으로 들어온 환자들의 얼굴을 1시간 째 못 보던 중 낯선 알파벳으로 쓰여진 환자가 등록되었다. 우리가 흔하게 들어보던 영문식 이름은 아니니 친숙한 나라 사람 (=언어가 통하는 사람) 은 아니겠다라는 느낌이 왔다. 더욱이 우리병원에 처음 온 신환이다. 순서대로 환자를 보던 중 이 외국인 환자의 차례가 되어 진료를 보았다. 보호자로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계셨다.

나 : 혹시 보호자이신가요 ??
여성 : 아니요. 그냥 아는 사람입니다.
나 : 그럼 어떤 관계이신가요 ??
여성 : 아 이 사람이 미얀마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인데 한 달 전에 한국에 와서 일하는데 몸 컨디션이 나빠져서 인근 병원가서 검사했더니 췌장암이 의심된다고 큰 병원 가보라고 해서 왔어요. 저는 미얀마 사람들 커뮤니티에서 자원봉사하는 사람이에요.
나 : ........

환자는 전신이 샛노랗고 수척해 보였다. 한눈에 봐도 간쪽에 이미 이상이 있는 것이다. 전신이 노랗게 보이는 황달 이라는 증상은 몸에 빌리루빈이라고 불리는 물질이 담즙의 형태로 위장관계로 배설이 안 되어 체내에 쌓일 때 발생하는 현상인데 전형적인 황달을 보이고 있었다. 더욱이 타병원 검사에서 췌장이 의심되었다고 하면 췌장에 생긴 암이 담도를 막아서 생겼을 것이다. 외부 병원에서 시행했다는 CT 를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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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친 곳이 췌장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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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이 담관 (담즙이 내려가는 길) 을 막아서 담관이 늘어나 있는 것이 보인다.(파란색 화살표). 또한 CT 에서 복강내 출혈이 의심되는 소견도 보인다. (빨간색 화살표)

더 상황을 나쁘게 만든 것은 환자에게서 38.5도의 발열이 관찰된다. 이는 췌장암으로 막힌 담도계에 감염이 생긴 것으로 담도계 패혈증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담도계 패혈증은 치료하지 않을 경우 전신 감염으로 금방 퍼져서 하루이틀만에 사망하게 될 수도 있다.

나 : 혹시 법적인 보호자는 안 계시나요 ?? 가족분들은 안 오셨나요 ??
여성 : 가족들은 다 미얀마에 있데요. 한국에는 들어온 지 한 달 밖에 안 됐나봐요.
나 : 지금 환자분 상태가 몹시 위독한데 다른 분은 안 계실까요 ??
여성 : 곧 미얀마 대사관에서 직원이 한 명 올 거에요.

다른 환자를 진료하던 사이 미얀마 대사관의 젊은 남성이 왔다.

나 : 혹시 가족분과 연락이 되었나요 ??
남성 : 연락은 되었는데 모두 미얀마에 있답니다.
나 : 이 환자분 곧 돌아가실 수도 있는데 빨리 가족들을 한국에 오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성 : 가족들은 환자가 미얀마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혹시 환자가 비행기 타고 미얀마로 돌아갈 수는 없을 까요 ??
나 : 지금 상태로는 비행기 타고 가시다가 돌아가실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항공사에서도 사망할 확률이 높은 환자들은 비행기 안 태워줄 것 같은데요.
남성 : 그래서 혹시 몰라 항공사에서 요구하는 의무기록을 가져왔는데 작성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
나 : 이런 서류는 응급실에서 진료한 의사가 작성하기는 어렵고 병실 입원 후 작성하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남성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나 : 보통 이런 환자의 경우는 항생제 치료를 하며 입원 후 PTBD (Percutaneous Transhepatic Biliary Drainage) 라고 불리는 시술로 담관에 길을 만들어서 담즙이 빠지게 해주고 원인이 되는 병소를 찾아서 수술적 치료 및 항암치료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환자는 간병해줄 가족도 없고 입원해서 간병인을 고용해야 하는데 간병인과 언어도 안 통하고 금전적인 문제도 있고 계획 세우기가 참으로 어렵네요.
남성 : .........
나 : 환자에게 적극적인 치료 (항암치료, 수술) 를 시행할 의사가 있으면 우리 병원 내과에 의뢰해서 입원을 상의해보겠지만 그럴 의향이 아니라면 여기서 치료를 더 해드리는 것이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남성 : 환자에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남성은 대사관 직원과 얘기하더니 이전에 있던 병원으로 가겠다고 하였다. (이전에 있던 병원은 국내에서 매우 드물게 외국인 노동자를 진료해주는 병원이다.)

해줄 말이 없었다. 상황이 몹시 난처하다. 한국으로 코리안 드림을 가지고 내원한 이 남성은 말도 안 통하는 머나먼 타국 땅에서 생을 마감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한 달 전에 한국에 입국한 것이라면 황달이나 복통 등의 증상은 그 이전부터 있었을 텐데 검사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췌장암 자체가 증상 유발이 적어 질병이 꽤 진행한 이후에 발견되는 것이 특징이긴 하지만 이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 (유명인 중 고 스티브 잡스도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아픈 것은 생의 마지막을 말도 안 통하는 이국땅에서 홀로 쓸쓸히 암으로 인해 고통을 받으며 마감하는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보다 피하고 싶은 죽음의 모습이 또 있을까...... 환자는 본인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 젊은 청년의 꺼져가는 불꽃을 아쉬워할 틈도 없이 다음 환자를 보다가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 멘탈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근무를 마쳤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늦은 저녁이나 먹으러 가려던 중 병원 계단에서 스마트폰을 떨어트려 액정이 박살난 것은 이 환자를 생각해보니 크게 슬퍼하고 화낼 일도 아니었다. ㅠㅠ

죽음이 이처럼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느껴지니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껴지는 장점도 있다.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가족이나 지인이나를 속상하게 해도 그저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주는 것이 감사하다. 돈이 부족하면 어떠하리. 죽을 때 가지고 갈 것도 아닌데.

우리 모두 나의 삶의 끝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내일도 평소와 같이 눈을 뜰 수 있으면 좋겠고 오늘 하루 눈 감기 전 아쉬움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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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정말 아무리 맞이해도 적응되지 않는 슬픈 일 같습니다..

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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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생생한 현장에서 근무하시는군요..
지금 건강하다는 것에 감사해야겠네요.
팔로우하고 보팅도하고 갑니다..

늘 활기찬 나날 되세요.

감사합니다. ^^ 인간의 희로애락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일하는 것도 사람 냄새 물씬 나서 축복인 것 같습니다.

외국에 나와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가끔은 내가 눈감을 곳은 어디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정말 가슴아픈 이야기 네요....

현재 건강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함과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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