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63거부할수없는 제안

in #kr5 years ago

-조용한 고급술집
양 성대와 삼월회계법인대표 심 상이 마주 앉아있다.심 상은 양 성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학교선배님을 미처 몰라 뵈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끄응.. 내가 원래 이런 잔소리 잘 안하는데 이번 동화건설 건은 후배님이 신
경 좀 써 주세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회계서류 보니까 동화건설은 가망이 없더군요. 선배님
판단이 백번 옳습니다."
심 상의 아부에 신이난 양 성대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닌 말로 내가 파산부 부장판사잖아.내가 회사 재무제표도 제대로 못 보았
겠어? 법관복 입고 회계사한테 헛소리하겠냐고."
곽회계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가 말을 듣지 않자 회사대표인 심상을 조
지고 있는 양성대였다.조지나 건빵.
"죄송합니다.애가 어려서 아직 뭘몰라요.당장 서류 다시 작성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양 성대는 후배 심 상에게 술을 따라주며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앞으로 금오건설이 수차례의 M&A와 합병으로 재계 10위권으로 급부상할
걸세. 일반회계는 물론 각종 M&A회계까지 자네가 맡아 주길 바라네."
큰돈이 되는 제안이었다. 심 상은 두 무릎을 꿇고 술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삼월회계법인
삼월회계법인의 곽회계사는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한참 일할 시간임
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쩐일인지 넋을 놓고 있었다. 마주 앉아 있는 회계법인
의 대표 심 상이 심상치 않은 얼굴로 담배를 건넸다.
"이건 회사사활이 걸린 문제야."
곽회계사가 불편한듯 얼굴을 찡그리며 반박했다.
"여러 사람의 생목숨이 걸린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동화그룹 그거 영원히 없어지는거 아니야.다른
누군가가 사가면 또 열심히 장사해서 돈벌면 되는 거야!그러면 되는거지 왜
자네가 알지도 못하는 여러사람 밥걱정을 해주나?"
회계보고서야 심대표 지가 작성하고 도장 쾅찍어서 법원에 넘기면 그만이었
다. 굳이 곽회계사에게 보고서 작성을 맡긴다는 것은 이번일을 눈감아 달라
는 뜻이었다. 애초부터 곽에게 이번일을 노출시키지 않는게 최상책이었으나
그렇다고 회사대표인 자기가 실무를 다룰 수도 없는일이었다.또한 곽회계사
가 동화건설의 회계를 지금껏 맡아온터라 이번일을 모를 수는 없었다. 나중
에 뜻밖의 제보자가 되는것을 미연에 방지하면서 동시에 책임지고 조용히일
을 추진하여 어느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었다.결국은 공모자가 되어 달라는 뜻이었다. 죽을 때까지 어
디가서도 이번 동화건설 회계장부조작에 대해서 발설하지 말라는것이었다.
곽회계사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받아들인다면 양심을 칼로
쑤시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일로 인해 동화건설 회사임직원들은 물론
협력업체와 소액주주들은 깡통을 차게될게 불보듯 뻔했다.그러나 다른이들
이 겪는 고통은 추상적인 반면 이로 인해 얻는 자신의 이익은 현실적이었다.
고속승진과 고액의 성과급. 매력적인 떡밥이었다.붕어냐?
곽회계사는 마치 한숨인듯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작은 화분에 심어진
다알리아의 두꺼운 잎을 담배 연기가 휘감겼다. 마치 혼란스러운 곽회계사
의 마음인 듯 담배연기는 둥근 다알리아 잎을 휘감아 오래도록 머물며 좀처
럼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대표가 곽 수석회계사의 책상위에 있는 아들 사진
을 집어들었다.
"아따 고놈 참 잘생겼네. 심장이 안 좋다며? 이식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들었
는데 그말이 맞는가 모르겠네.참 안 됐어 아직 어린앤데.."
심대표는 교묘히 곽회계사의 약점을 파고 들고 있었다.선천적으로 심장기형
을 타고 난 회계사의 아들. 수술비는 어떻게 해서든 구할수가 있지만 문제는
심장이었다. 아들의 심장은 언제 멎을지 몰랐다. 당장 새로운 심장을 이식해
야했다.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떼어다가 붙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
고 몇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장기기증자를 기다릴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아들과 같이 심장기증을 받으려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수천명에 달했
다. 불가능이었다. 정상적으로 기증받는다는 것은. 불법이었다. 당장 기증을
받았다는 것은.그렇지만 아들은 꼭 살리고 싶었다.이대로라면 1년도 살기힘
들다는것이 의사소견이었다. 고민하는 마음을 대표에게 들킨것 같아 곽회계
사는 기분이 나빴다. 회계사가 아들 사진을 거칠게 도로 뺏았다.
"기증자가 곧 나타날 껍니다!"
"허허 이 사람. 왜 이렇게 무책임해.50년 후에나 올지말지 할 순번을 어떻게
기다리고만 있겠다는건가?"
대표는 달래기는 커녕 곽회계사를 아예 비난하고 나섰다.어설프게 설득시키
는것보단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재인식시켜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대표는 잘 알고 있었다. 독한 놈. 이런 일이 처음있는 일도 아니었다. 대한민
국에서 내로라하는 회계법인의 대표이사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치사하고 예상보다 더 파렴치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얼음보다 더 냉정하고
뱀보다 더 사악해야만 했다. 교회 댕겨라.
"내가 아는 후배가 을지문덕병원 원장으로 있네.."
을지문덕 병원이라하면 국내에서 심장이식술로 가장 유명한 곳이었다. 곽회
계사는 입을 다물었다. 불의에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따라서 할말이 없었다.
심대표의 설득은 더욱 교묘해지고 있었다.독사 같은 놈.
"어쩌면 적당한 기증자가 기적처럼 나타날지도 모르겠고.."
"정말이십니까?"
대표가 꺼낸 기적이란 말은 곽의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 잡고 말았다. 기적이
란 기습적인 반전은 마치 꿀을 바른듯 달콤했다.
(그래 까짓거 내가 정의롭게 산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는것도 아니고..그리고
무엇보다 내자식의 목숨이 걸린문제가 아닌가.)
곽회계사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막말로 내새끼 살리겠다는데 누가 나에
게 비난의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말이다.
(난 결코 나의 부귀영화를 위한게 아냐.. 난 그냥 죽어가고 있는 내아들을 기
적처럼 살리고 싶을 뿐이라고.그게 뭐 잘못된건가.)
회계사의 눈빛은 두려움에 떨고있었다.애써 위안삼아 아들을 떠올렸지만 반
대편에 서서 고통에 시달리게될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스스로도 설득력
이 떨어지는 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양심은 있네.
(그래도 난 명분이란게 있어.내아들을 살리고 싶다고.세상은 명분도 없이 오
만가지 악행을 저지르는 새끼들 천지잖아. 난 적어도 그들보단 나아.)
고민이라기 보다는 약간 더 숭고하고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더러운마음이
곽의 내면에 선과 악처럼 공존하고 있었다.
심대표는 이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갈등하고 있는 곽에게 스스로 판단을 내
리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령 하느님이 온다고 해도 그를 설득
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이럴땐 심리적인 트릭이 필요했다. 마치 곽이 스스로
결정을 내린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것이다.곽의 저항은 전보다 약해졌다.이
젠 저항하고 있기보단 갈등하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무뎌진 저항이 곧 수긍
임을 스스로 알아차리게 하고 이것이 수치스러운일이 아님을 일깨워주면 바
로 게임끝인 것이다. 심대표는 곽의 어깨를 토닥이며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될
그를 위로했다.
"다들 그렇게 살아. 자 이제부터는 자네 아들걱정만 하자고."
건물 1층 상가 편의점으로 담배를 사로 나온 곽은 계산대 앞에 섰다.벌써 새
벽 2시가 다 되어 가는데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알바생은 물건을 나르고 정
리하느랴 바빠보였다.저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들도 있는데 뒷거래나 하
고 있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이게 정말 잘하는 짓인지 아
들이 앞으로 살아가게 될 세상을 마치 자신의 손으로 더럽히고 있는것 같아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럼 손씻어 븅아.
비록 알바지만,하루 최저시급 6000원에 불과하지만 물건이나 쌓고 파는 단
순노동에 불과하지만 밝은 미래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저런 젊은이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작해야 하루 4~5만원 벌자고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뭐라도 하나 해주고 싶었다. 값싼 동정이 결코 아니었다. 대한민국
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노고에 대한 응원이자 격려였다. 곽은 똑
같은 음료 2병을 손에 쥐고 계산대에 다시 섰다. 담배사러 온거 아니였냐?
"여기 계산이요!"
"예, 잠시만요."
라면박스를 깔끔하게 접어 한쪽구석에 정리하고 있던 알바생이 급히 달려와
계산을 도왔다. 알바를 무슨 정규직처럼하네. 참 열심히 사네.아름다워.
"삑, 1200원 입니다."
곽은 음료수 1개를 손에 쥐고 나머지 음료수를 알바생앞으로 스윽밀며 말했
다.
"두개 인데요.2400원일걸요."
"아아 이상품은 1+1 행사중이에요."
곽은 왠지 공짜로 생긴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 않아도 2개 사서 하나
는 알바생 주려고 했던 것인데 역시 사람이 맘을 곱게쓰면 없던 복도 찾아오
게 되어 있는것이다. 역시 세상은 그렇게 암울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 잠시나
마 위로가 되었다. 그는 음료수 하나를 남겨두고 자리를 떠나며 알바생에게
기분좋게 말했다.졸래 멋있다.
"하나는 님이 드세요. 새벽까지 알바하느랴 고생하시는데."
"저 여기 사장인데요.그리고 저 이런 행사상품 잘 안먹어요."
-서운은행장실
장 도협은 숨겨둔 애인과 다정히 통화 중이었다. 송파에 있는 아파트를 팔아
마련한 돈을 가지고 앞으로 크게 성장할 금오건설 주식을 살 요량이었다.물
론 외부에 노출되지 않게 애인의 계좌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자기야 글쎄 암말 말고 입금해 준 돈으로 금오산업 주식 몽땅 다 사라고. 그
래 내가 팔라고 하면 그때 팔아. 이번 일만 잘 되면 나랑 자기랑 하와이에 가
서 아들 낳고 알콩달콩 살아보자. 응 나도 사랑해."
전화를 끊고 난 도협은 기지개를 폈다.
"내가 니놈들 똥꾸녕만 빠는 줄 알지?" 그럼뭐 앞구녕도 빨라고?


-동화건설그룹 전무실(하청의 사무실)
김 과장이 하청의 방으로 헐레벌떡 뛰어 달려들어왔다.뭔가 아주 더럽고 냄
새나는 것을 입안 가득 채우고 있기라도 한듯 오만상을 쓰며 거친숨을 내쉬
었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야심만만하게 사업구상을 하던 하청이 깜짝놀
라 쳐다보았다. 김 과장은 숨이 목까지 차올라 허리를 숙였다가 힘겹게 다시
호흡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왜이래 사람 불안하게.
"큰일 났습니다,전무님!"
"뭐가 또 큰일이야? 이 망할 놈의 회사는 어떻게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어!"
"헉..헉..그게.."
김 과장의 표정을 보고 하청은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뭐야 뭔데 그래?"
"임시실사결과가 나왔습니다."
"근데? 그게 뭐 어떻단 말이야?"
"계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더 높단 보고서가 나왔답니다."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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